우리가 감사하며 깨어있을 때 어떤 복을 받나요?
누가복음 12장 35 - 40절 / 감사하는 성도여(587장)
35.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38.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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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로 지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세상에서 바쁘게 살아가지만, 영적으로 졸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깨어서 준비하라고 합니다. 오늘 추소 감사 주일에 깨어서 기다릴 때 어떤 복을 받는지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우리가 감사할 때 어떻게 기다릴 수 있습니까?
첫째로 우리가 감사할 때 허리에 띠를 띠고 깨어 있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허리에 띠를 띠라고” 합니다(35절). 당시에는 통으로 된 옷을 입었기 때문에 일을 하려면 허리를 띠로 묶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허리에 띠를 띠고”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깨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주님을 위해 일하도록 깨어 있습니까? 주님께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주님께 불평하는 사람과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먼저 불평하는 사람은 왜 내가 주님의 일을 해야 하느냐고 따지게 됩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게 됩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허리에 띠를 띠고 깨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감사할 때 등불을 켜고 서 있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합니다(35절). 당시에는 등잔에 기름을 넣어서 등불을 켜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등잔에 감사의 기름을 채워야만 깨어서 등불을 켜고 서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망하면 등잔의 기름이 말라서 등불이 꺼지게 됩니다. 만약 감사의 기름이 말라서 등불이 꺼지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하나는 신앙의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감사의 등불이 없는 불평의 어둠에서는 신앙의 방향을 찾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주인이 와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한밤중에 주인이 올지라도 감사의 등불이 꺼져있으면 어둠속에서 알아볼 수 없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정죄하면서 감사의 등불이 꺼져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감사의 기름으로 등불을 켜고 서서 기다림으로 한밤중에 오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가 감사하면서 깨어 기다릴 때 어떤 복을 받습니까?
첫째로 주님을 기다리면서 믿음이 강해지는 복을 받습니다. 종들이 깨어서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언제 올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들이 이경에나 혹은 삼경까지 깨어서 기다린다고 합니다(38절). 여기서 종들이 언제 올 줄 모르는 주인을 기다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인이 올 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을 기다리는 시간이 종들의 믿음을 더 강해지게 만듭니다. 또한 종들이 주인을 기다리면서 지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인께 은혜를 받은 감사의 마음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인의 은혜에 감사가 없다면 기다리다가 지쳐서 졸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은혜를 받은 감사의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기다리면서 믿음이 더 강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주님께서 종을 섬기시는 복을 받습니다. 주인이 오는 것을 감사함으로 깨어서 기다렸던 종들이 어떤 복을 누렸습니까? 누가는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고 합니다(37절). 당시에 세상의 질서가 뒤집히는 사건입니다. 그 이유는 종이 주인을 수종 드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역으로 주인이 종을 수종 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장면과 겹치고 있습니다(요13:4,5). 그러므로 주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함으로 기다리는 복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도 감사함으로 기다려서 주님을 맞이하고 하늘의 크신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종과 준비하지 않는 종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하나는 주님께서 재림할 때 도둑의 방문과 신랑의 방문으로 차이납니다. 주님의 오심을 깨어서 준비하지 않는 종에게는 주인이 도둑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39절). 그러므로 그 종은 주님께서 도둑처럼 예고하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에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깨어서 준비하는 종은 생각지 않는 때에 인자가 올지라도 맞이할 수 있습니다(40절).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이 도둑의 방문이 아니라 신랑 되신 주님의 방문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깨어서 준비함으로 도둑의 방문이 아니라 신랑의 방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은 주님께서 재림할 때 두려운 날과 소망의 날로 차이납니다. 주님의 재림을 깨어서 준비하지 않는 종은 그날을 머리로만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머리로만 계산하기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어서 준비하는 종은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36절).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감사할 때는 그 날이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기대하는 소망의 날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깨어서 준비함으로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소망의 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은 주님께서 재림할 때 심판의 날과 복을 받는 날로 차이납니다. 주님의 오심을 깨어서 준비하지 않는 종은 어떻게 됩니까? 주님을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을 깨어서 기다린 종은 어떻게 됩니까? 주님을 맞이했기 때문에 하늘의 복을 받게 됩니다(37,38절).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깨어서 준비함으로 심판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으로 세상적인 감사와 성경적인 감사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세상적인 감사는 내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서 좌우되지만 성경적인 감사는 내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느냐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종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좌우되면 기다리다가 지쳐서 불평하게 되지만 그들의 마음이 주님께로 향하면 깨어서 기다림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종들이 깨어서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주인께로 마음이 향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40절). 오늘날도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주님께로 향하면서 감사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주님께 불평하는 사람과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35절)
2. 주인이 오는 것을 감사함으로 깨어서 기다렸던 종들이 어떤 복을 누렸나요?(37절)
3.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종과 준비하지 않는 종의 세가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39,40절)
4. 세상적인 감사와 성경적인 감사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요?(40절)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주님을 위하여 찾아서 했던 일은
무엇이 있나요?
2. 우리는 언제부터 주님의 재림을 확신하면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나요?
3.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나요?
4.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 마음이 향하여 감사했던 일은
무엇이 있나요?
□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우리는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감사함으로 허리에 띠를 띠고 깨어 있고, 감사의 기름으로 등불을 켜고 서서 기다림으로 한밤중에 오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맞이하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께 은혜를 받은 감사의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깨어서 기다림으로 믿음이 더 강해지고, 감사함으로 기다려서 주님을 맞이하고 하늘의 크신 복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깨어서 준비함으로 도둑의 방문이 아니라 신랑의 방문이 되고, 주님의 재림을 깨어서 준비함으로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소망의 날이 되고, 주님의 재림을 깨어서 준비함으로 심판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주님께로 향하면서 감사가 넘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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