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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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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둘째주 목장교재 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역대하 24장 15-22절
조영식 2025.11.9 조회 410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역대하 2415 - 22 / 넓은 들에 익은 곡식(589)

 

 

15.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 16.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17.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19.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20.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21.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22.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11월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그녀의 아들 아하시야 왕이 북이스라엘 요람 왕을 도와주러 갔다가 반란의 주동자 에후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남유다 왕가의 모든 씨를 진멸하고 스스로 여왕이 되었습니다(대하22:10). 그러나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막내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서 양육하다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아달랴를 몰아내고 왕으로 세웠습니다(1). 그리고 여호야다는 요아스 왕과 함께 남유다의 모든 우상을 몰아내고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아스를 왕으로 세웠던 여호야다 제사장이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었습니다(15). 그리고 여호야다 제사장이 죽은 후에 요아스 왕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변질되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지를 깨닫고 각자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우리가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합니까?

첫째로 믿음은 시작만큼 끝맺음을 잘해야 합니다. 요아스가 남유다의 왕이 되어서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종교개혁을 하면서 성전을 보수했던 그의 시작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요아스 왕은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하나님의 성전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겼습니다(18). 이처럼 믿음은 시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떻게 끝을 맺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신앙의 시작이 대단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의 끝맺음이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목회의 끝맺음을 얼마나 아름답게 하느냐가 최고의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요하스 왕이 믿음의 시작만큼 끝맺음을 아름답게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17). 오늘날 우리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의 끝맺음을 아름답게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는 요아스 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2). 그러므로 요하스 왕이 여호야다와 함께 종교개혁을 할 때는 주님께서 형통함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요아스 왕이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에게만 의존하는 신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야다 제사장을 의존했기 때문에 그가 죽은 후에 신앙의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17). 이처럼 요아스 왕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세우지 못하고 사람에게만 의존하다가 무너지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신앙의 도움을 주는 멘토가 필요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믿음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세상의 환경이 변하고 사람들이 떠날지라도 오직 주님을 의존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는 것입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요아스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합니다(20). 그들이 불순종으로 형통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주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고 합니다(20). 여기서 버렸다는 의미가 주님과의 언약을 파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약을 파기하여 주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람은 믿음이 약해질수록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는 성향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요하스 왕이 믿음이 약해질 때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강해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순종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져서 눈에 보이는 우상이 아니라 믿음이 강해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가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어떻게 기억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하나님도 나를 기억합니다. 요아스 왕이 스가랴 선지자를 죽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라고 합니다(22). 여기서 단순히 은혜만을 망각한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까지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면 요아스 왕처럼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스가랴의 피를 기억하고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고 합니다(11:51). 여기서 사가랴(스가랴)의 뜻이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당시에 아벨과 스가랴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지라도 주님께서 그들의 피를 기억하기 때문에 천국 소망으로 위로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슴 아픈 죽음이 있을지라도 주님이 기억하심을 믿고 천국 소망으로 위로받기를 원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말하는 것에 무엇을 기억하는지가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억하다의 히브리어 자카르에는 말하다’(증언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22). 우리가 말하는 것에 무엇을 기억하는지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말하면서 기억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찬미하는 믿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에 관해서만 기억하고 말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것에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는지와 않는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무엇을 말하면서 기억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말하면서 기억함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하나님의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난주 수요일 저녁 선교 보고 시간에 동티모르 선교사님이 주님의 크신 은혜를 말하면서 기억하는 고백에 감동을 받아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동티모르에서 초등학교 2학년 어린아이가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을 때 선교사님이 교회 옆에 움막을 지어서 살도록 했습니다(소녀 사진). 그리고 교회에서 선교사님이 소녀와 함께 지내면서 학교를 보내주었는데 금년에 의대를 진학했습니다. 최근에 그 소녀는 의사가 된 후에 선교사님처럼 신대원에 가서 목사 안수를 받고 동티모르 영혼들을 구원하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합니다. 만약 고아가 되었을 때 친척 집으로 보내졌다면 아무런 꿈도 없이 살다가 중학생 나이가 되면 조혼하여 아이를 낳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선교사님과 함께 자라난 아이는 주님의 은혜를 말하고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비전을 품은 청년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주님의 은혜를 말하고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비전을 품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요하스 왕이 믿음의 시작만큼 끝맺음을 아름답게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요?(17

 

2.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요아스 왕이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이유가 무엇인가요?(17)

 

3.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선지자를 죽인 이유가 무엇입니까?(22)

 

4. 오늘 본문에서 기억하다의 히브리어 자카르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요?(22)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

1.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지키지 못했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2. 우리의 믿음이 약해져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의지했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3. 우리가 금년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중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있나요?

4.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어떤 비전을 품고 있나요?

 

 

기도하기​ ​

사랑의 주님! 우리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의 끝맺음을 아름답게 하며, 세상의 환경이 변하고 사람들이 떠날지라도 오직 주님을 의존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세우게 하소서. 우리의 믿음이 약해져서 눈에 보이는 우상이 아니라 믿음이 강해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며, 가슴 아픈 죽음이 있을지라도 주님이 기억하심을 믿고 천국 소망으로 위로받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말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또한 주님의 은혜를 말하고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비전을 품은 성도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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