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1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머리로만 아는 믿음
말 씀 : 열왕기 하 2장 1-11절
1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7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0. 들어가는 글
오늘 말씀은 엘리야의 승천 사건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말씀을 승천한 엘리야 선지자가 아니라 남겨진 제자 엘리사에게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삶속에서는 하늘로 승천한 문제보다는 이 땅에서 남겨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을 남겨두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보다도 남겨진 제자들이 어떻게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가 더 중요한 문제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승천 앞에서 남겨진 엘리사는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통하여 우리들도 이 땅에 남겨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거절당하는 상처를 극복하는 믿음
엘리야는 하나님의 때를 알고 승천을 준비하였습니다(1절). 승천을 준비하는 마지막 과정은 자신이 사역하였던 장소를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에 있는 제자들을 돌아본 이후에 요단강을 건넌 후에 승천을 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사역을 결산하여보면 가장 의미있는 사역은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들로 세우는 사역이라는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도 성전을 웅장하게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일에 마음을 다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엘리야가 승천을 준비하면서 마지막으로 사역지를 돌아보는 동안 엘리사가 동행을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하기까지 엘리사가 동행하는 문제가 순조롭지는 않았습니다. 길갈에서부터 벧엘과 여리고에 이르기까지 엘리야로부터 매번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거절감의 상처를 극복하고 결국은 엘리야로부터 축복을 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엘리야의 거절은 진실 된 마음이 아니었고 엘리사의 인내를 시험하였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9절 전반 부 말씀에서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고 합니다. 엘리사가 여러번의 거절당함에도 불구하고 인내함으로 엘리야를 붙잡고 따라갔을 때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주인공을 보면은 거절감의 상처를 극복하고 끝까지 주님을 붙잡는 믿음의 자녀들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나오미에게 혼자된 며느리 오르바와 룻이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베들레헴에 가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시어머니를 붙잡고 따라갔던 룻은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신약에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에게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거절하였습니다(마15:26). 이런 심한 거절감의 상처를 받은 이후에도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고 하면서 주님을 붙들었던 가나안 여인은 딸이 고침을 받고 믿음이 크다고 칭찬을 받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기 전에 많은 거절감의 상처가 밀려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절감을 상처을 극복하고 인내함으로 떠나지 아니하고 주님을 붙잡는 자가 결국은 축복의 주인공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의미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구할 것을 허락받은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구하였습니다. 오늘 말씀 9절 후반을 보면은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엘리야의 기적의 횟수가 7번이었는데 엘리사가 이것을 구함으로 인하여 14번의 기적을 행함으로 정확히 응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저는 비교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야의 기적은 엘리사에 비하여 용량이 매우 큽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 혼자 850명의 우상 숭배자의 대결을 보아도 그 스케일이 웅장합니다. 3년 6개월동안 가물었던 이스라엘 전 지역에 엘리야가 기도를 통하여 비가 내리게 하는 사건도 대단한 스케일입니다. 단지 기적을 일으켰던 횟수로만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횟수만 단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뜻이 무엇이냐? 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보다 두 배의 기적을 베풀겠다는 의욕이 아닙니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에 비하여 자신의 모든 면이 부족하다는 인정하는 겸손의 고백입니다. 스승인 엘리야가 했던 사역만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배의 성령의 역사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두 배의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만 스승인 엘리야만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신은 하나님 앞에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동일한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 다른 사람은 한 시간 기도를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 자신은 두 시간을 기도해야만 겨우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배의 일을 하기 위해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스승만큼 사역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두 배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기도를 통하여 엘리사처럼 갑절의 성령 충만을 받아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전교인 한세기 운동 전개>
3. 머리로만 믿는 믿음
오늘 말씀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여리고에 있는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5절에서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고 합니다. 이들은 엘리야가 겉옷자락으로 요단강을 가르면서 엘리사와 함께 건너는 것을 보았습니다(7,8). 그리고 물려받은 겉옷자락으로 엘리사가 다시 요단강을 가르면서 건너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16절과 17절을 보면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라고 합니다.
머리로만 믿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인들이 말했던 하나님의 말씀조차 믿지 못하고 엘리야의 시체를 사흘 동안이나 찾고 있습니다. 이들은 엘리야의 승천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그 시체를 찾는 일에 열심내고 있습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어도 그대로 믿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는 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는 것을 믿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순종으로 날 때 진정 믿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섬김을 위한 헌신예배가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믿는 사람이면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모두가 순종하지 않습니다. 여리고 제자들처럼 엘리야가 승천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믿지 못함으로 불순종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섬김을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떤 믿음이 되어야 하는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나누면서 말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홉킨스 목사님이 파선한 배의 비유를 들어 믿음의 세 가지 단계의 믿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다에 빠져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도움이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이것은 씨름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다 이제 그들은 모두 보트를 굳게 붙잡습니다. 어느 정도는 안전해졌지만 아직 남을 도울 수는 없습니다. 양손 다 보트를 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매달리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보트에 올라앉습니다. 이제 양손이 자유로와져서 남을 도울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하는 단계입니다.
허우적거리며 씨름하는 단계를 지나서, 보트를 붙잡는 단계를 지나서, 보트 안에서 안식하는 단계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보트 안에서 안식할 때 머리로만 아는 신앙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섬길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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