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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 로마서 8장 26-27절/ 5월 23일 성령 강림 주일 설교
조영식 2010-05-24 추천 0 댓글 0 조회 436

2010년 5월 23일 성령 강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

말 씀 : 로마서 8장 26-27절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0. 들어가는 글

지난주 화요일 5.18 민주화 운동 30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보훈처에서 30년 동안 5.18민주화 운동 추모곡으로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지 못하게 하고 ‘방아 타령’ 부르려고 한 것 때문에 유족들이 정부 추모행사에 참여 하지 않고 따로 추모행사를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정부가 천안함 유족들을 큰마음으로 품었듯이, 상처받은 5.18 유족들도 큰마음으로 품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 중에 일어났던 일화를 통하여 목회를 가르쳐준 목사님 한분이 계십니다. 광주역 근처에 있는 한빛 교회 목사님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계신다고 합니다. 시민 항쟁을 하다가 부상을 당한 대학생 한명이 특전사 대원들에게 추격을 받아서 한빛 교회 안으로 피신을 하였습니다. 특전사 대원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부상당한 대학생을 체포하려고 하자 목사님이 교회 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자 특전사 대원들이 목사님을 총으로 위협을 하면서 교회 안으로 진입하려하자 자신을 죽이기 전에는 대학생을 데려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상처받은 짐승도 집으로 피신하였을 때 잡아먹지 않고 보호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하면서 차라리 젊은 대학생은 살려주고 자신을 대신 체포해 가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리의 상처받은 어린양을 보호하려는 목사님의 모습에 특전사 대원들이 감동을 받아서 대학생을 체포하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후에 이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서 목사님이 시무하는 한빛 교회에 등록을 하여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자신이 살겠다고 상처받은 영혼을 버리지 아니하고, 설사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가지 상처받은 영혼을 보호해주는 것이 목자 되신 주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도 상처 받은 영혼들을 위로하며 보호해주시기 위해 오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임재하신 성령님이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는지 살펴볼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사람이 평생을 살다보면 많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인생은 상처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나 외적인 상처는 물론이고, 내적인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강한 것은 상처가 나지를 않습니다. 강한 쇠 덩어리를 나무로 때린다고 상처가 나겠습니까? 나무만 부서져 버릴 것입니다. 상처는 연약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외부의 충격을 이기지못하고 상처가나는 것입니다. 인생이 상처가 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상처를 세상은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비판하고 서로 정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은 연약하여 상처받은 우리들을 도우러 오셨습니다. 오늘 26절의 전반부 말씀을 보면은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라고 합니다.


여기서 성령님이 ‘도운다’는 의미는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이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해 할 수 없는 문제를 번쩍 들어서 옮겨 주신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는 어느 날 큰 통나무가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것을 치우지 않고는 우리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어서 쩔쩔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에 어떤 힘 있는 분이 그 문제를 번쩍 들어서 옮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도운다는 시제가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은 과거에도 도와주셨습니다. 미래에도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성령님은 연약한 우리들을 도와주십니다. 언제나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매 순간 순간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도와주십니다.


2. 죄와 연약함의 차이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연약함이라고 변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연약해서 어쩔 수 없이 죄악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는 우리의 마음의 자세와 더 크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자세를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의 의지입니다. 마음의 ‘의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잘못한 점을 살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오십보백보 차이 인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려는 마음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연약하여 실수하거나 두려움으로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배신하고자하는 마음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으니 자살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였지만 주님을 향한 마음의 의지가 흔들린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6:41). 이 말씀을 통하여 베드로가 비록 육신은 연약했지만 마음의 의지는 주님을 향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마음의 의지로 넘어진 것이 아니라 연약함으로 인한 두려움과 실수로 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키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 때 위대한 전도가가 되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연약함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 마음의 자세가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지만 마음의 의지가 주님께로 향하면 반드시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의 의지가 세상이나 사람에게 향하면은 죄악가운데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 내 자신의 소원에서 하나님의 소원으로의 성숙

하나님은 인간이 연약함으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를 하나 지적하고 있습니다. 26절 말씀을 보면은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라고 합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하나님께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첫째로 자기의 진정한 마음의 소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원하는 것이 없으면 절망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왜곡되어 나타나면 중독의 상태입니다. 중독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타락시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회복시켜서 하나님께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신의 힘으로만 기도하면은 어느 정도는 기도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고 막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내 힘으로만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기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소원을 회복한 우리들의 마음의 상태는 어떤 상태로 변화됩니까? 에스겔 36장 26절을 보면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라고 합니다. 성령 받기 이전의 굳은 마음이 새 영인 성령을 받아서 부드러운 새 마음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까? 정확한 구별은 힘들지만 대체적인 공통점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한 사람은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한 사람은 얼굴이 부드럽고, 언행이 부드럽고, 성품이 부드럽습니다. 목도 부드러워서 고개를 잘 숙이고, 얼굴 근육도 부드러워서 잘 웃습니다. 목회자로 살아가는 제가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힘을 빼서 부드러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할 때도 힘이 들어가면 실수를 하게 됩니다. 힘이 들어간다는 말은 욕심이 들어있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욕심이 들어가지 않도록 성령 안에서 끓임없이 부드러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서 부드러워지지 않고 굳은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갈등하고 충돌하여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제 연약한 우리들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져야 하는 마음의 소원은 어떤 소원입니까? 최근에 읽은 책 내용입니다. 은퇴한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전원도시에 이상하게도 가로등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시골의 전원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밤하늘의 별빛인데, 가로등을 켜면 별빛의 선명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마을에서 가로등을 없애기로 결정하였다고 합니다. 가로등이 없으면 밤길에 차가 다니기 어렵고 길을 걷기에도 겁이 나고 위험하지만 밤하늘의 별빛을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것을 과감히 포기한 것입니다. 즉, 낮은 가치를 포기하고 더 높은 가치를 붙잡은 것입니다. 이것을 ‘가치 이동’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낮은 가치와 높은 가치를 동시에 붙잡고 살 수가 없습니다. 낮은 가치를 포기해야만 높은 가치를 붙들 수 있습니다. 낮은 가치를 자신의 소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높은 가치를 하나님이 주신 소원이라고 합니다. 결국 내 소원을 포기해야만 하나님나라의 소원을 붙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령님이 주시는 소원은 하나님의 뜻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27절 말씀을 보면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를 통하여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성령님이 주시는 소원을 붙잡는 사람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꿈을 붙잡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는 믿음입니다. 오늘도 기도합니다. “연약한 제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까지 선한 싸움하며 달려갈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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