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7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사람의 눈이냐?, 하나님의 눈이냐?
설교 본문 : 사무엘 상 13장 8-14절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0. 들어가는 글
벌써 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겨울 기온이 롤러코스터처럼 움직입니다. 지난주 교회를 다니다가 쉬고 있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교회를 다닐 때보다 지금 교회를 쉬고 있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다 알고 있다며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루터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종교개혁을 하려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죄와 자아를 가지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씨름했던 사람입니다. 수도원장은 고해성사를 위해 자주 찾아오는 루터가 부담스러워서 “루터여, 살인이나 간음죄가 아니면 내게 오지 말라”고 소리쳤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괴로워서 빌라도 계단을 무릎으로 수없이 기어오르는 몸부림의 과정이 있었기에 결국은 로마서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의 삶속에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 깨닫고 적용할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사울이 왕이 되어서 가장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서 당시 탱크와 같은 병거가 삼 만이요, 기병대가 육천 명이요, 보병들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진을 쳤습니다(5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서워 부들부들 떨었고 사울 왕은 급히 사무엘에게 전갈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도착이 지연되고 백성들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8절). 다급해진 사울은 번제를 드렸고 그 직후 사무엘이 도착했습니다(10절). 당시는 왕권과 신권이 분리되어 왕이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다급해진 마음에 자신이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습니다. 이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실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안에 감추어진 영적싸움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울 왕이 삶에서 부딪치는 고민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입니다. 그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블레셋 군대의 침략으로 외부의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그는 위기의 순간 무엇보다도 왕의 자리를 지키고 싶어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번제를 드리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처음 왕이 될 때에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이후로 초심을 잃어버리고 자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사울 왕처럼 마음 지키는 것을 잃어버리고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매달릴수록 더 추해지는 것입니다. 예전에 ‘내면세계 질서와 영적 성장’에서 읽었던 내용입니다. 잠수함이 지중해 바다 속을 지날 때 위로 많은 배들이 지나가면서 갑작스럽게 여러 번 요동쳤습니다. 함장이 급히 내려가서 조종실 책임 장교에게 “이상 없나?” 물었습니다. 조종실 장교는 “이상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함장은 조정실을 둘러보더니 “괜찮아 보이는군” 하면서 떠났습니다. 모든 위험은 잠수함 바깥에 있었지만 배의 운명을 결정짓는 곳은 조종실입니다. 그래서 함장은 조정실을 찾아서 공포의 기색이 없는 차분한 상황을 확인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도 외부 상황의 심각성보다 “마음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외부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건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2.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조급히 서두르지 말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칠일 동안 기다리기로 약속하였습니다(8절). 그는 사무엘을 칠일동안 잘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칠일 중의 마지막 조금을 기다리지 못하여 실수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서두른다고 결코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개입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더 귀한 믿음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힘든 일입니까? 실제로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이 사울입니다. 그는 위기가 닥치자 현실의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런 방법은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한 꼼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당장의 위기에서만 벗어나게 해달라는 번제는 무당이 굿하는 것처럼 무속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무엘이 올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신뢰가 없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꼼수를 부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기다리는 신뢰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꼼수를 부리는 사람은 다분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사울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인지 사무엘에게 말하는 어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1절에서 12절까지 ‘내가’라는 표현이 다섯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기중심적인 사람일수록 사람들의 눈을 더 의식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합니다. 사울 왕은 이런 일을 위해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이런 번제가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번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사울 왕이 사람보다도 하나님을 더 의식하였다면 믿음의 족보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또한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얻고자 하였다면 성경의 역사도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사울처럼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하나님이 수단이나 도구로 전락되고 맙니다. 우리는 교회 건축을 하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단지 교회를 지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지어진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3.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가?
우리도 사울처럼 신앙생활을 하면서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다윗도 잘못이 없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사울과 다윗은 모두다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잘못을 한 이후에 “어떤 반응을 하느냐?”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울은 잘못한 이후에 어떤 반응을 하였습니까? 그는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라고 변명을 하며 책임을 전가합니다(12절). 사울처럼 변명하는 마음은 사람의 눈으로 주변 상황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회개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의 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몸에 베인 냄새를 잘 맞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자신의 몸에 베인 냄새를 잘 맞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눈으로 보면 자신의 죄는 보이지 않고 온통 주변 탓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자신의 죄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반응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가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지난주 토요일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마가복음 5장을 읽고 은혜를 나눈 내용입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주님께 찾아와서 자신의 딸이 죽어가니 자기 집에 오셔서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열 두해 혈루증 걸린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바람에 지체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혈루증 걸린 여인을 고치고 나니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다시 연락이 와서 딸이 죽었으니 올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죽어가는 사람에게 급하게 가서 먼저 살려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혈루증 걸린 여인을 고쳐주면 됩니다. 주님이 무엇이 더 급한지를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죽을병이나 혈루증이 거기서 거기입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고칠 수 있기에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사람의 눈과 하나님의 눈이 다르다는 것을 깊이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사람의 눈으로 보면 마음이 무너지고, 조급해져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변명만 하게 됩니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마음을 지킬 수 있고,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회개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부디 사울처럼 모든 것을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다윗처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아 승리할 수 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