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9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어느 정도 믿고 있는가?
설교 본문 : 사사기 1장 16-21절
16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17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18 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0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0. 들어가는 글
3월 둘째주일입니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들이 예수님을 더욱더 닮아가는 시간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한 후에 이스라엘은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산지와 골짜기에는 가나안 족속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 유다와 시므온 지파를 시작으로 각 지파들도 산지와 골짜기에 남아있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기 위해 전투를 하였습니다(1,2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지역에서 치룬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오히려 전쟁에서는 패배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사건에 대한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한 것 같으나 전반적인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 원인을 깨닫고 우리의 믿음을 바로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어느 정도까지 함께하는 믿음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과 각 지역의 전투에서는 이겼으나 가나안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나안 족속을 모두 다 쫓아내지 못하고 일부를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좇아내지 못한 가나안 족속을 따라서 우상을 섬기는 일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었지만 여호와를 알던 세대가 남아있을 때까지는 그런대로 믿음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세대 사람도 죽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삿2:10,11).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믿음의 3대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자녀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한 것은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사람들의 달콤한 문화에 흡수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세대도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세상의 문화에 흡수되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몸의 사욕을 쫓게 만드는 세상 문화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영적 싸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못하고 일부를 남겨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산지 주민까지는 쫓아냈지만 골짜기 주민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19절).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짜기 주민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철 병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산지 주민을 쫓아낼 때는 여호와께서 함께 계셨다고 합니다. 이 두 사실을 연결하여 그들이 골짜기 주민을 좇아내지 못한 이유가 철 병거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지 못한 것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들은 산지까지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골짜기의 철 병거 앞에서는 함께하심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인생의 산지까지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지만 인생의 골짜기에서는 함께하심을 믿지 못하는 어느 정도까지의 믿음일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느 정도까지만 함께하시고 그 이상은 함께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어느 정도까지로 제한하는 믿음이 아니라 인생의 아무리 어려운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어느 정도까지 신뢰하는 믿음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끝까지 믿지 못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는 이스라엘 노예들을 해방시켜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그분의 언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라고 합니다(출6:4).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언약은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기로 언약한 것은 평지만 준다고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의 산지와 골짜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평지에서 산지까지는 순종했으나 골짜기까지는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출24:7). 하나님의 언약은 어느 정도까지만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스왈드 챔버스는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모르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이성적인 상식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만 주님을 신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그는 우리가 가능한 것들만 신뢰하려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의 신뢰로 멈춘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의 신뢰는 믿음으로 포장만 하고 있지 자신의 판단과 결정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씀만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없는 모든 말씀을 신뢰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느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스왈드 챔버스는 “성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도의 두뇌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두뇌가 할 수 있는 말씀만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에 따라 움직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어느 정도까지 쫓아내는 믿음인가?
오늘 본문에서 유다 백성들은 골짜기 주민들을 쫓아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쫓아내지 못한 것입니다(19절).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쫓아내지 못하였으며”을 원어로 보면은 능력이 없어서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으면서도 쫓아내지 아니하고 핑계를 대며 고의적으로 회피한 것입니다. 또한 문자 그대로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로 해석하여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골짜기의 철 병거를 쫓아낼 수 있는 능력보다도 훨씬 크신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는 자신들보다 더 능력이 크신 하나님을 전혀 의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지 못함으로 온전히 좇아내지 못한 것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어느 정도 쫓아내고 조금 남겨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남겨둔 것이 옆구리에 가시가 되어 결국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으면서 세상의 것들을 어느 정도 쫓아내고 조금 남겨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세상 것을 쫓아냈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조금 남겨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쫓아내고 조금 남겨둔 것이 우리들의 신앙을 넘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하나님과 약속한 것에서 어느 정도를 드리고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행5:2). 그들 부부는 어느 정도 드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에 해당하는 조금을 감춘 것이 문제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 어느 정도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죄악을 감추고 있느냐가 문제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추어둔 죄악이 조금일지라도 우리들의 믿음 전체를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번 사순절 기간 동안 다 좇아내지 못하고 조금 남겨둔 죄악은 없든지 돌아보아 제거할 수 있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