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6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라
설교 본문 : 열왕기상 18장 30-40절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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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첫째 주일입니다. 요즈음 날씨가 롤러코스트입니다. 봄을 건너뛰고 초여름이 온듯하더니 지난주 다시 쌀쌀해져서 몸을 움츠려들게 만들었습니다. 최근 날씨가 갈피를 잡기 힘든 것처럼 우리들도 갈피 잡기 힘든 신앙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모든 세대가 가진 공통 임무가 있는데 그것은 구속자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알아내 그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로 하나님은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어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17:1)고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라졌던 엘리야가 3년 6개월 만에 나타나서 아합에게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갈멜산으로 모아서 오라고 합니다(19절). 조나단 에드워즈 말처럼 엘리야는 하나님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알아내 그 방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기 위해 순종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엘리야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방향으로 인도하는지 깨닫고 우리들도 하나님의 방향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여호와의 제단이 무너진 이유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송아지를 잡아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들의 신에게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하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29절). 그 후에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내게로 가까이 오라”고 합니다(30절). 그리고 그가 첫 번째 한 일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엘리야처럼 무너진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제단이 무너진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아합왕 시대에 여호와의 제단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숭배로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알 신앙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아니하면 물의 부족함을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물이 부족한 자연환경은 비와 구름을 주관하여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바알신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생활의 풍요를 누리고 싶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을 선택하는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바알 신앙은 물질의 풍요를 조장하는 기복 신앙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한국 교회가 무너져 내린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무너지는 이유에 바알 신앙은 없습니까?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단지 물질의 풍요라면 바알 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수축하되’는 전혀 새로운 것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부서졌던 것을 고쳐 세우는 것입니다(30절). 우리들이 물질의 풍요만을 구하는 바알 신앙이라면 믿음의 제단은 부서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믿음을 구할 때 무너진 제단을 고칠 수 있습니다. 지난주 다리가 골절되어 깁스를 하고 계신 연세 많으신 권사님 심방을 갔습니다. 남편 집사님은 요양원에 계시는데 집에 오고 싶어도 돌봐줄 수 없어서 함께 지내지 못하고 계십니다. 제가 권사님 댁에 들어갔는데 병문안을 오신 두 분이 나갔습니다. 권사님이 다급히 나가는 분이 친척 언니 되는데 이야기 좀 해달라는 것입니다. 권사님이 처녀 시절부터 예수님을 믿었는데 “지금까지 잘 된 것이 무엇이 있냐?”고 싫은 소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보아도 그 권사님에게 생활의 풍요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권사님이 물질의 풍요만을 구하는 바알 신앙이었다면 하나님을 진작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하며 하늘에 소망을 둔 믿음이었기에 힘들고 아픈 세월을 견디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물질의 풍요만을 구하는 바알 신앙이 아니라 어떤 고난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함으로 믿음의 제단을 든든히 세워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여호와의 제단을 쌓는 기초는?
엘리야는 여호와의 제단을 어떻게 수축하고 있습니까?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32절).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는 어떤 의미입니까? 첫째로 믿음의 대상을 바로 세우는 의미입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가 송아지를 잡고 아침부터 바알의 이름을 부르면서,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몸을 상하게 하며 미친 듯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떠들었습니다(28절). 그러나 응답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대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면 믿음의 제단이 무너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여 섬김으로 믿음의 대상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는 의미입니다. 바알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신을 움직여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을 공감적 마법이라고 합니다. 우리들도 무엇을 하여 응답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공감적 마법에 걸려있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그는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36절). 여기서 주의 종과 여호와의 이름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은 종의 자세로 섬기는 관계입니다. 그는 철저히 주의 종이 되어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종의 자세로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관계가 되어 믿음의 제단을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우리는 무너진 제단을 회복하였는가?
엘리야는 비를 내린다고 생각하는 바알의 제사장들에게 불을 내리게 하는 짓궂은 방법으로 진짜 하나님을 결정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24절). 먼저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 850명이 인해전술로 기도하였지만 불을 내리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엘리야는 혼자의 기도로 제단에 불이 내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많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한 영혼이 더 큰일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엘리야는 기도하기 전에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찰 정도로 물을 부었습니다(35절). 그는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가능함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조건이나 환경이 문제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엘리야의 기도로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38절). 불이 내려오는 기적을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는 고백을 반복적으로 합니다(39절).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의 기도로 여호와가 진짜 하나님 되심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불이 내려오기 전에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를 고백해야 진짜 믿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짜 믿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 기회는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고 선포합니다(21절). 백성들은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침묵함으로 진짜 믿음의 고백을 놓쳤고 양다리를 걸친 혼합주의 신앙을 나타냈습니다. 지금의 교회도 혼합주의 신앙으로 진짜 믿음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기회는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에게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나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신 그가 하나님이라”고 제안합니다. 백성들은 “그 말이 옳도다”고 대답합니다(24절). 그들의 대답에는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기회주의 신앙을 나타냅니다. 결과를 보기 전에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기회주의 신앙은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기회주의 신앙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하나님을 떠나고 있습니다.
믿음의 제단을 무너지게 하는 혼합주의는 양쪽으로, 기회주의는 앞뒤로 저울질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짜 믿음은 무엇입니까? 이사야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고 합니다(사26:3). 심지가 견고한 자는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 흔들리지 않는 진짜 믿음입니다. 여기서 평강은 위험한 일이 없는 평강이 아니라 주님만을 신뢰함으로 이루어지는 평강입니다. 우리는 저울질하는 혼합주의와 기회주의 신앙을 물리치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심지가 견고한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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