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1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어느 것이 필요한가?
설교 본문 : 마태복음 14장 22-33절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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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둘째 주일입니다. 그리고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우리 기독교는 십계명중 제 오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경하라’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무게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지금까지 살아온 각자의 삶의 무게들을 다 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부모 세대가 살아온 삶의 무게를 공경해 줄 수 있는 믿음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흐름은 예수님이 빈들에서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기적 후에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 하려하자 제자들도 동조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아신 예수님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제자들은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22절). 무리를 보내신 후에 주님은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23절). 주님은 세상에서 아무리 높아지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기도함으로 물리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날은 저물고 제자들이 탄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풍랑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였습니다(24절).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25절). 베드로도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졌습니다(29,30절).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사건으로 인하여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그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어느 것이 먼저인가?
제자들이 풍랑으로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들은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 소리를 질렀습니다(26절). 그러나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28절)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면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소리 질렀습니다(30절). 그가 소리 지를 때 예수님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하셨습니다(31절). 여기서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예수님은 어떤 일보다도 물에 빠진 베드로의 손을 즉시 붙잡아주었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어느 것이 먼저인지를 잃어버린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대책 회의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가장 필요한 생명 살리는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어느 것이 먼저인가를 알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실수를 범합니다. 예수님이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아 주신 사랑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중에 베드로를 책망했던 내용을 열심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 분석의 결과로 작은 믿음과 의심에 대하여 이유를 설명하면서 물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열심히 교훈합니다. 사실 물 위를 걸을 수 없는 우리들에게는 공허한 내용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정작 먼저인 것은 물에 빠진 영혼에게 즉시 손을 내밀어 사랑을 베푸시는 주님의 행동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고난당하는 이웃들에게 어떤 이유를 찾기보다도 즉시 손을 내밀어 사랑을 베풀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의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수님도 물 위를 걸었습니다. 또한 베드로도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물 위를 걸었습니다. 여기서 “물 위를 걷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밤 사경에 물 위를 걷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습니까?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으로 위기에 있는 제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필요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는 최소한 생명을 살리는 것과는 상관없었습니다. 이처럼 분명한 의미도 없이 흉내를 내는 신앙은 어느 순간에 바람처럼 의심이 밀려와서 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는 신앙의 행위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영혼들이 의미도 없이 흉내만 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살리는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들의 생명을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흉내를 내는 신앙은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희생하며 섬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거할 때 겸손히 희생하며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하는 일이 섬김의 헌신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선한 도구로 쓰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들이 흉내 내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거함으로 희생하며 섬기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어느 것이 필요한가?
제자들이 고난을 만난 바다의 풍랑 사건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까? 어찌 보면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일 때문에 고난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에게 바다에서 닥친 고난의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람의 문제입니다. 제자들은 바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풍랑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제자들이 건너편에 배를 타고 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바람입니다. 지금 제자들에게 영적 싸움의 대상은 바람으로 인한 풍랑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물위를 어떻게 걸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람이 어떻게 멈추었느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람을 멈추어야 생명을 살릴 수 있는데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것은 어떤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람은 어떻게 멈추었습니까? 예수님이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고 합니다(32절).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것이 바람을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의 배에 함께 하였을 때 바람이 멈추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믿음이 대단해 보입니다. 저도 청년 시절 베드로를 흉내 내서 물 위를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그 일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실제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흉내 내는 것보다 함께함으로 바람을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세월호 침몰 속에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처럼 함께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국민들이 분노하는 바람이 잠잠해졌을 것입니다.
에녹은 65세에 자녀를 낳은 후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죽음을 보지 않고 그를 데려가셨습니다(창5:24). 그에게는 어떤 대단한 기적이 없었고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일이 어떤 대단한 기적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히브리서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에 대하여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합니다(히11:5). 우리들이 주님과 동행하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족이란 이름도 함게하는 것이 소중한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세월호 유족처럼 고통당하는 이웃과도 함게하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성도님들이 함께 해주는 것이 가장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매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나라와 가정과 교회의 풍랑이 잠잠해지는 은혜가 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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