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4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에베소서 4:17-24절 / 314쪽
설교 본문 : “심령이 새롭게 되자”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0. 들어가는 글
5월 첫째 주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주 세월호 침몰 사건을 다 수습하지 못하여 실종자들을 찾고 있는데 서울에서 지하철 추돌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생명의 피해는 없었지만 온 국민의 가슴을 다시 한 번 철렁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안전 부실을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모르는 총제적인 난국에 빠져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가정의 행복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다시 한 번 환골탈퇴하기 위해서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이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고 새롭게 변화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오늘 말씀은 ‘예수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느냐?’로 나누어집니다(21절). 예수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면 새 사람을 입어가는 것이고,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다면 옛 사람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18절).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첫 번째 증상은 ’그의 마음에 허망한 것으로 행한다‘는 것입니다(17절). 허망하다는 것은 쓸모없는 생각을 의미합니다. 쓸모없는 생각은 헛된 것으로 영적인 삶에 유익을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한 예배를 들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쓸모없는 생각들을 끊임없이 걸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증상은 무지함으로 마음이 굳어지는 것입니다(18절). 여기서 무지함은 총명이 어두워짐으로 오는 것입니다. 어두움 속에서 무엇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무지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말씀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증상은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합니다(19절). 그 이유는 감각 없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졌기 때문에 더러운 것을 욕심까지 부리면서 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성숙이 되지 않는 것은 감각이 없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반응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옛 사람을 벗어버리자.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22절). 그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24절). 여기서 옛 사람이라는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라는 새 옷을 입는 비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옷을 입느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옷을 입고 벗는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십니까?
첫째로 옷을 입는 것이 유행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지금 세대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격은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의 썩어져 가는 구습의 영향을 받으면 우리의 영혼도 병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듣고 가르침을 받으면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21절). 예수 안에 진정한 생명이 있고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옷만큼은 유행을 타지 않고 변함이 없는 말씀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옷을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골라 입는 것처럼 우리의 의지가 어떤 스타일을 따라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분문 22절과 24절에서도 “따라”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모습도 어떤 스타일을 따라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를 통하여 유혹의 욕심을 따라가는 것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의 옷을 따라 입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옷을 따라 입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로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서 그 일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교복을 입으면 학생으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군복을 입으면 군인으로 훈련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거룩한 옷을 입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합니다(20절). 여기서 배우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에 관하여 배우는 것을 넘어서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대하여 단순한 학습이 아니라 종이나 제자가 되어 철저한 훈련으로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3. 심령이 새롭게 되자.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이 입기 위하여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22절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와 24절의 새 사람을 입으라 사이에 어떤 말씀이 있습니까?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고 말씀합니다(23절), 우리들이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지 아니하면 새 사람을 입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심령이 새롭게 되어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는 '새롭게 되어'가 현재 부정사 수동태로 날마다 계속적으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되는 것은 일회성이 아닙니다. 한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매일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심령’과 ‘성령’을 같은 단어로 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수동태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셋째는 “새롭게 되어”에는 혁신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노베이션’이라는 혁신에 담겨 있는 뜻이 있는 그대로 무엇입니까? 일차적으로는 낡은 기술, 설비, 방법 따위를 버리는 것입니다. 이차적으로는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삼차적으로는 근본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노베이션 즉 혁신으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와 있는 마음의 허망한 것,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짐, 감각 없는 자, 방탕에 방임, 모든 더러운 것, 유혹의 욕심, 썩어져 가는 구습의 낡은 것을 파괴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안에서 말씀으로 사는 것을 새롭게 도입해서 근본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까?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합니다(빌1:8).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식해야 합니다. 심장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카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식할 때 새롭게 되어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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