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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역할은?/ 유다서 1장 17-23절/ 5월 24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4-05-25 추천 4 댓글 0 조회 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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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4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성도의 역할은?

설교 본문 : 유다서 1장 17-23절

 

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0. 들어가는 글

5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여름이 우리 눈앞에 버티고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다가 야고보의 형제인 것을 보면 예수님의 동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1절). 유다는 예수님이 살아생전에는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서 형 야고보와 함께 성령을 받은 후에 메시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유다는 자신을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고백합니다(1절). 오늘 분문은 유다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훈계와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유다가 성도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했는지 깨닫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유다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합니다(17절). 유다서의 배경은 거짓 교사들이 성도들을 유혹하여 흔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한 말씀을 기억해야만 그들의 실체를 파악하고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말 한 거짓 교사들은 어떤 모습입니까? 첫 번째는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고 합니다(18절). 여기서 “조롱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믿음의 공동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고 합니다(19절). 여기서 “분열을 일으키는 자”는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들보다 자신들이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구별된 그룹을 형성하였습니다. 자칭 영적인 존재라고 주장할지라도 교회에서 분열을 일으킨다면 성령이 없는 육에 속한 자입니다. 그들은 장소만 교회로 옮겼을 뿐이지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이 단지 자신들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유다가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미리’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17절). 우리들이 유혹에 넘어지는 이유는 말씀을 미리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유혹에 넘어간 후에 말씀을 떠올리는 것은 악순환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말씀을 기억함으로서 유혹을 물리치는 선순환이 되라는 것입니다.

 

2. 어떻게 해야 미리 기억할 수 있는가?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 기억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입니다(20절).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만 강조하다보니 구원 이후의 삶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앞에 거룩히 붙어있습니다. 우리들이 믿음으로 구원받고 거룩한 존재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령으로 기도하며”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영적인 존재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성령으로 기도하며”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입니다(21절). 여기서 자신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서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얼마만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느냐가 사랑의 깊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현재도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을 믿음으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 때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생은 우리들의 행위가 아니라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다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성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 성신은 성령의 기도로 연합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또한 유다는 믿음, 소망, 사랑으로 하모니가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거룩한 믿음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와 영생에 이르는 소망으로 우리들을 경건하게 세우는 것을 교훈합니다.

 

3. 구원을 받은 성도의 역할은?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첫째로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22절). 본문에서 “의심하는 자들”은 거짓 교사들의 유혹으로 진리의 복음에 굳게 서지 못하고 흔들리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들은 잘못된 가르침으로 흔들리는 영혼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먼저 주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고 합니다(23절). 여기서 불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심판의 불입니다. 죄악 가운데 있는 영혼이 불 심판을 받지 않도록 구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절박한 마음입니다. 불 가운데 있는 사람을 절박한 마음으로 끌어내야 하듯이 죄에 빠진 영혼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들이 만연되다 보니 물에 빠진 학생들을 건져내야 한다는 절박함을 사라지게 만든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셋째로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23절). 유다는 더러운 죄는 미워하되 영혼은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옷이 더러워졌다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육체로 더럽힌 옷은 교회를 다녀도 회개가 없어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지 못한 영혼들입니다(롬13:14). 그러나 회개가 없는 영혼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냥 “긍휼히 여기라”가 아니라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포기함으로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우리들이 변화되지 못한 영혼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회개할 기회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긍휼히 여기라”가 세 차례나 반복됩니다(21,22,23절). “긍휼”을 KJV 성경에는 “compassion”이라고 합니다. “compassion”은 com(함께)와 passion(열정)의 합성어입니다. 상대방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열정이 있어야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긍휼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긍휼은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까? 몇 주 전 몸이 어지러워서 두 곳의 병원을 방문했는데 대조적이었습니다. 첫 번째 병원은 몸이 힘들어서 앉아있기도 힘든데 여기 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검사를 하는 것입니다. 정말 검사를 받다가 쓰러질 뻔 했습니다. 두 번째 병원에서는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응급실에 눕혀놓고 의사들이 오가면서 검사를 하였습니다. 작게나마 공감이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공감의 능력이 있을 때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죄의 결과는 관계의 단절입니다. 관계의 단절로 인한 치명적인 현상은 공감의 부재입니다. 사람이 함께 있어도 외로울 때는 공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공감으로 긍휼을 보여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의 고통을 공감하여 긍휼로 나타난 곳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저도 우리 성도님들의 아픔에 얼마나 공감하며 목회하는지 돌아보았습니다. 혹시 공감의 부재로 성도님들을 향한 긍휼히 식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두려웠습니다. 부디 힘들고 지친 영혼들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닮아서 공감함으로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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