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지대에 머물고 있나요?
에스더 4장 7 - 17절 / 어려운 일 당할 때(543장)
7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9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6월 네 번째 주일이며, 우리 교단은 6.25 민족화해주일로 지킵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대 민족의 후손 모르드개와 그가 어려서부터 양육했던 에스더와 아말렉의 후손 하만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배경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데 아말렉의 후손 하만이 유대민족을 다 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유대민족을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어떻게 유대민족을 구했는지를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아말렉의 후손 하만이 유대민족을 다 멸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아말렉과 유대인의 민족적인 감정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아말렉은 누구입니까? 에서의 손자로 나옵니다(창36:12). 그들이 이스라엘과 원수가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한 후에 르비딤 광야를 지날 때 기습하여 뒤처진 약자들을 공격했습니다(출17:8). 그래서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기도의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고, 기도의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출17:11). 그 사건 이후로 이스라엘에게 아말렉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약자들을 괴롭히는 절대 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년의 세월이 흘러 바벨론에서 아말렉과 유대민족이 포로 생활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출세한 아말렉의 후손 하만이 유대민족을 다 멸하려고 합니다. 출애굽 시대와 바벨론 포로 시대에 동일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유대 민족과 아말렉의 영적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유대 민족이 아말렉을 이기는 방법은 기도 외에는 다른 유가 없다는 것입니다(16절). 이처럼 에스더가 유대민족을 아말렉으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기도보다 앞서지 않는 것을 보여줍니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도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기도보다 앞서지 않는 믿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하만과 모르드개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아말렉의 후손 하만이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에3:1). 그러나 유대 민족의 후손 모르드개는 아말렉의 후손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안했습니다(에3:5).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믿음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말렉의 후손 하만은 매우 노하여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유대 민족을 모두 멸하려고 했습니다(에3:6). 여기서 하만은 모르드개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확대되어서 유대 민족을 다 멸하려는 감정으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부풀어 오르면 부매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래서 하만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자신이 매달려서 죽었습니다(에7:10).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잘 조절하여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모르드개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첫째로 모르드개는 현실의 위기를 정확하게 직시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왕궁에 있는 에스더에게 하만이 유대민족을 멸하기 위해 왕에게 바치는 은 일만 달란트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줍니다(7절). 여기서 은 일만 달란트를 오늘날의 가치로 계산하면 삼천오백억이 넘는 금액입니다. 모르드개는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에스더에게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증거로 정확하게 제시합니다(8절). 성경적인 신앙은 주님께 맡긴다는 핑계를 대면서 현실의 위기를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현실의 위기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8절). 여기서 ‘간절히’는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의 위기를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면 간절히 구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현실의 위기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주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구하는 믿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주님의 때를 위하여 사용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모르드개는 현실의 위기에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14절).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여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일에 선한 도구로 쓰임 받으라고 합니다. 또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하나님의 때를 놓치지 말라고 합니다. 그는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고 합니다(14절).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후로 만든 이유가 이 때에 사용되기 위함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가진 것이 하나님의 때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셨다는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들이 주님의 때에 선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에스더는 어떻게 유대 민족을 구할 수 있었습니까?
첫째로 에스더에게도 근심과 두려움이 찾아왔지만 갇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에스더를 유대 민족을 구한 신앙의 영웅처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려고” 했습니다(4절). 이처럼 그녀는 매우 근심하여 현실의 위기를 외면하고 싶어서 덮으려고 했습니다. 또한 에스더는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고 합니다(16절). 여기서도 두 가지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는 왕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두려움입니다. 또 하나는 왕궁의 규칙을 어기면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이처럼 그녀에게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은 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에 갇혀서 하나님의 때를 놓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찾아왔지만, 그 두려움에 갇히지 않고 하나님의 때에 구원의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도 두려움이 찾아올 수 있지만, 그 두려움에 갇히지 말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에스더는 안전지대를 떠나서 주님을 위하여 모험을 선택했습니다. 그녀에게 두려움이 찾아왔지만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에스더는 삼일 동안 금식기도를 한 후에 자신의 민족을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11절). 그녀는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까지 포함하여 주님께 전부를 드렸습니다. 그녀가 보여준 믿음은 왕궁에서 왕후라는 안전지대를 떠나 하나님을 위하여 모험을 선택한 것입니다. 선교적인 믿음은 안전지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모험을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지난주 차명렬 선교사님이 2000년에 라오스에서 선교를 시작한 일은 안전지대를 떠나 모험하는 것입니다. 또한 선교사님이 라오스 수도에서 안주하지 않고 국경지대에까지 가서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도 안전지대를 떠나 새롭게 모험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안전지대를 계속 떠나서 모험하는데, 저는 편한 안전지대에만 머물며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 찔림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에게 기도하며 후원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성도들이 편한 안전지대에만 머물면 주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안전지대를 떠나서 하나님을 위하여 불편한 모험을 선택할 때 주님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편한 안전지대에만 머물면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불편한 모험을 선택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아말렉이 이스라엘과 원수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출17:8)
2. 유대민족의 후손 모르드개가 아말렉의 후손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에3:5)
3. 에스더에게 찾아온 근심과 두려움은 무엇이 있었나요?(4,16절)
4. 에스더에게 두려움이 찾아왔지만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요?(11절)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부딪쳤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2. 우리가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주님의 때에 사용되었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3. 우리에게 두려움이 찾아왔지만 주님을 의지하여 그 두려움을 이겨냈던 경험을
무엇이 있나요?
4. 우리의 편한 안전지대를 떠나 주님을 위하여 불편한 모험을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 있나요?
□ 기도하기
사랑의 주님!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도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기도보다 앞서지 않는 믿음이 되고, 어떠한 상황에도 자신의 감정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잘 조절하여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우리가 현실의 위기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주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구하는 믿음이 되며,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들이 주님의 때에 선한 도구로 사용되게 하소서. 우리에게도 두려움이 찾아올 수 있지만, 그 두려움에 갇히지 말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으며, 우리가 편한 안전지대에만 머물며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불편한 모험을 선택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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