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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시원케 하는 믿음/ 고린도전서 16장 15-18절/ 11월 8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4-02-19 추천 0 댓글 0 조회 1087

2009년 11월 8일 주일 설교

제 목 : 마음을 시원케 하는 믿음

말 씀 : 고린도전서 16장 15-18절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0. 들어가는 글

온 세상이 신종플루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깨닫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해봅니다. 제가 최근에 재미는 이야기를 얽었습니다. 한 경건한 교인이 몇 년 동안 무인도에서 혼자 살다가 간신히 구출되었습니다. 그때 선장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곳에서 오래 동안 혼자 산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혼자 지냈어요.” 선장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 오두막집 3개는 뭔가요?” 그가 말했습니다. “첫째 오두막은 제 집이고, 둘째 오두막은 제가 현재 다니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셋째 오두막은 제가 전에 다녔던 교회입니다.” 요새 교인 중에 ‘전에 다녔던 교회’가 없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현대인들이 교회 내에서 갈등을 경험한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고린도 교회도 내부의 갈등이 많았던 교회입니다.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고 예수님 직속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분열이 심한 교회입니다(고전1:12). 사도 바울은 분파가 많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결론에서 가장 믿음이 아름다운 한 가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가정이 바로 스데바나 가정입니다. 교회내의 분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파에도 동요되지 아니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한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18절). 마음을 시원케 하였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스데바나 가정이 어떤 믿음을 통하여 서로의 마음을 시원케 할 수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섬기기로 작정한 믿음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합니다.

스데바나 가정은 아가야 지역의 고린도라는 항구도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개념으로 해석을 해 보면은 경상도 지역의 부산이라는 항구도시에 살고 있는 것과 동일합니다. 아가야는 경상도 지역이라면 고린도는 부산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스데바나 가정은 고린도 도시를 포함한 아가야라는 넒은 지역에서 예수님을 제일 처음 믿는 가정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부산을 포함한 경상도 지역에서 제일 처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오늘 15절 전반부 말씀에서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가야 지역의 첫 열매인 스데바나가 사도바울에게 얼마나 소중한 영혼이었겠습니까! 그 증거로 사도 바울이 스데바나 가정에게는 직접 세례를 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고전1:16).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에 베푼 세례는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스데바나 가정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아가야 지역의 첫 열매인 스데바나가 어떤 믿음의 신앙생활을 하였느냐? 는 것입니다. 15절 후반부 말씀에서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 열매인 스데바나 가정이 먼저 믿는다고 텃새를 부리면서 목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고린도 교회가 내부 분열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스데바나 가정처럼 먼저 믿는 사람들이 섬기기로 작정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본 절에서 “섬기기로 작정했다.”는 말의 원 뜻은 “섬기는데 중독되었다.”는 뜻입니다. 스데바나 가정이 섬기는데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우리들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섬기는데 중독이 된 스데바나 가정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친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은 성공해서 많은 대접을 받으려는 작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스데바나 가정처럼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 받은 사람들은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은사우월주의 문제였습니다. 자신들이 받은 은사를 성도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하다 보니 교회 내에서 시기와 다툼이 생긴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은사를 받았더라도 섬기기로 작정한 마음이 없다면 교회에 덕을 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한신 교회 성향도 섬기기로 작정을 하면은 쉽게 교회에 적응을 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아하고 고상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은 조금은 어려움도 따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신교회 목회 비전중의 하나가 지역사회와 열방을 섬기기로 작정한 교회입니다. 한신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스데바나 가정처럼 섬기기로 작정하여 서로의 마음을 시원케 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주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마음을 시원케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서로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16절 말씀에서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섬김도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면서 친히 본을 보여주었지만 순종도 예수님이 친히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준 순종의 최고의 정점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눈앞에 두고 이 잔이 지나가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마26:39절). 저는 최근에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하여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앞에서 순종하기 위해 드리는 기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의 기도와 포기하는 기도가 정비례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내 자신에 대하여 많이 포기를 하면 할수록 주님 앞에서 많은 순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포기하는 기도보다도 더 얻고자 하는 기도를 많이 하기에 순종이 잘 안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포기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순종하며 떠났습니다. 또한 백세에 낳은 이삭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받쳤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순종 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의 순종하는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까! 처녀가 아이를 가짐으로 인하여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모든 것을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포기하고 순종할 때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는 더 아름다운 축복이 찾아왔습니다. 우리들이 주님 앞에서 너무 가지려는 기도를 드림으로 순종도 잘 안되고 오히려 갈등과 번민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였을 때 모든 갈등과 번민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때로는 포기하는 기도를 통하여 순종할 때 모든 갈등과 번민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새로운 것으로 채워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사람이 마음을 시원케 합니다.

스데바나 가정은 부족한 것을 보충해주는 가정이었습니다. 오늘 17절 후반부 말씀에서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라고 합니다. 스데바나와 동역자들이 고린도 교회의 사랑이 부족한 것을 보충해줌으로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함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은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부족한 점을 들추어내는 부류입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이 사람의 관계 속에서도 장점보다는 단점을 보면서 부족한 점을 들추어냅니다. 우리 교회의 부족한 점을 들추어내면 어디 한두 가지이겠습니까? 또한 여기에 서 있는 저의 부족한 점을 들추어내면 아마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스데바나 가정처럼 부족한 점을 보충해주는 가정입니다. 긍정적인 사람들이 부족한 점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보충해줄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와에게 아담의 돕는 배필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이라는 뜻은 부족한 점을 보충해준다는 의미와 동일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는 관계가 아니라 부족한 점을 보충해주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하게 만드시지 아니하고 서로 부족한 점을 보충해주면서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나님의 종이 되기로 결정하였을 때 시골 교회 성도님들 중에 제가 부족한 점이 많다고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지적한 부족한 점들은 모두 다 맞는 이야기였습니다. 불신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기도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목회의 길이 힘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경력이 짧아서 교회 질서를 잘 몰라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양의 은사가 없어서 성도들이 은혜를 잘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파서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점을 채워 달라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기도해주는 부모가 없으면 제 자신이 직접 기도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여주소서!”, “교회 질서를 잘 모르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하여 주소서!”, “찬양을 잘 못하는 것은 찬양을 잘 할 수 있는 동역자를 붙여주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전도를 가장 잘했던 무디에게 찬양을 잘하는 생키를 붙여주신 것처럼 저에게도 항상 찬양을 잘하는 동역자를 붙여주셨습니다. 그때는 저의 부족함 때문에 아파서 기도 중에 많이 울었지만 지금 돌아 보면은 그 부족함 때문에 겸손히 목회를 길을 가게 만드셨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의 부족함으로 받은 상처가 지금은 큰 은혜가 되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마음을 시원케 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자들을 알아주라고 합니다. 그 속뜻은 스데바나 가정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본을 받아서 성공하기로 작정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기로 작정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순종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족함을 들추어내는 삶이 아니라 부족한 점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돕는 배필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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