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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체질로 변화/ 요한복음 6장 3-13절/ 11월 15일 추수감사주일
조영식 2009-11-16 추천 0 댓글 0 조회 386

2009년 11월 15일 추수감사주일

설교제목 : 감사 체질로 변화

말 씀 : 요한복음 6장 3-13절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깊어져 가는 가을에 시를 한편 들려주면서 하나님 말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설탕을 조금 가지고도 음식 맛이 달게 되네. 비누를 조금 가지고도 내 몸이 깨끗이 되네. 조금의 햇볕으로도 새 싹이 자라네. 조금 남은 몽땅 연필로 책 한 권을 다 쓰네. 조금 남은 양초 하늘하늘 춤추는 불빛 아무리 작더라도 불빛은 귀하지.” <나는 작지만>이라는 시의 내용입니다. 작은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시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아주 작은 것이 위대한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작은 분량이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은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는 겨자씨가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만드는 겨자씨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의 유형을 살펴보면서 어떤 사람들이 감사의 체질인지를 깨닫고 우리도 감사의 체질로 변화될 수 있는 은혜로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계산이 빠른 사람은 감사 할 줄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빌립은 감사하기 어려운 체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계산이 빠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사람이 빵을 먹을 때 적어도 200데나리온의 돈이 들 것을 재빨리 계산했습니다. 머릿속에 계산기가 빨리 돌아갔습니다(7절). 계산이 너무 밝으면 감사가 생기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사흘 동안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금으로 비유하면 사흘 동안 집중적인 부흥회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현실적인 문제가 생기자 하나님의 말씀과는 아무 상관없는 방향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계산적인 신앙은 말씀과 현실이 따로 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은혜를 받는데 세상에 살아갈 때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내 자신이 혹시 현실의 이익이 앞서는 계산산적인 신앙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계산적인 신앙은 감사의 관계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의 비유를 보면은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나옵니다. 집안에 있는 첫째 아들이 계산적인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계산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계산을 넘어선 사랑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집에 있었던 큰 아들은 일을 하면서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온 동생에게 소를 잡아주자 자신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리도 잡아주지 않았다고 하면서 계산적인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다”고 말하지만 첫째 아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계산적이다 보니 품삯을 주고받아야 하는 종의 관계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 가장 위대한 감사의 표현을 하였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자신이 한평생 벌어서 모았던 시집갈 자금인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의 발아래 부었습니다. 계산적인 마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계산을 초월한 조건 없는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조건 없이 보여준 사랑은 한 영혼의 가치가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돼지 이천 마리보다도 한 영혼의 가치가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우리의 생명을 살릴 만큼 가치가 있는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2. 머리가 앞서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계산적인 사람보다 한수 위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머리가 앞서는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머리가 앞서는 사람은 감사 할 줄을 모릅니다. 머리가 앞서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어 놓은 신념을 믿고 살아갑니다. 유다의 신념은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독립시키기 위하여 로마 사람을 암살하는 제롯당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3년 동안 따라다닌 이유도 그분의 능력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이룰 수 없게 되자 배반하고 팔아버렸습니다. 이처럼 신념이 강한 사람은 그것이 무너질 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향한 감사를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처럼 자신의 신념에 예수님을 맞추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지식이나 신념이 틀릴 수 있다는 열린 사고가 있어야 합니다. 열린 사고가 유연성이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성숙시키는 것입니다. 유다처럼 지식이나 신념이 강한 사람이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머리가 앞섰던 또 한명의 제자가 의심 많은 도마입니다. 머리가 앞서기 때문에 의심이 많은 것입니다. 의심 많은 도마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논리에 설득당하여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통하여 변화된 것입니다. 제가 가장 감사한 것은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는 체험없이 신학을 공부하였다면 머리가 앞서는 신앙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만나는 체험을 하였기에 신학을 하면서도 열정을 간직할 수 있었고 마친 이후에는 오히려 더 견고해졌습니다. 머리가 앞서는 신앙으로는 감사보다 의심이 앞서는 신앙이 되고 맙니다. 도마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뜨거운 체험이 있을 때 우리 안에서 마르지 않는 감사가 샘솟는 것입니다.


3. 작은 것을 감사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리 덕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안드레가 예수님께 가져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안드레가 누구입니까? 베드로의 형제입니다. 제자들 속에서 베드로는 튀는 형이라면 안드레는 그림자 형입니다. 안드레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 역할을 하였지만 수제자로로 활동하는 동생 베드로에게 불평이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잘 감당하였습니다. 안드레의 은사는 잘 연결시켜 줌으로 감사의 열매가 나타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안드레는 딱 세 번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형제인 베드로를 예수님께 연결시킵니다. 오늘 말씀에서 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로 연결시켜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문밖에 있는 헬라인을 예수님께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안드레는 성경에 등장하는 세 번 모두다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베드로를 내세우고, 한 소년을 내세우고, 헬라인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로 잘 연결시켜서 감사의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안드레는 빌립처럼 계산이 앞서지 아니하고, 유다처럼 머리가 앞서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것을 예수님께로 가져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것을 통하여 오천 명이 음식을 먹는 위대한 감사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안드레처럼 저를 감사의 길로 연결시켜주신 분이 있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이중표 목사님에게 목회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몇 날 며칠을 간절히 기도한 이후에 토요일 오후 무작정 서울한신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교회 사무장님이 토요일은 목사님이 설교를 준비하시는 날이기 때문에 아무도 만나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사무실에 서 있는 저에게 교역자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왜 여기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을 뵙고 싶다고 하면은 모두 들 다음에 오라고 하면서 그냥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었겠지만 많은 수치와 무안감이 밀려 왔습니다. 그러면서 몇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행정목사님이 와서 이중표 목사님이 저를 보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목사님 테이프와 설교를 정리하는 여직원이 목사님에게 찾아가서 이야기를 전해줌으로 연결이 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여직원이 저의 장점을 이중표 목사님에게 전에 줌으로 인하여 제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작은 연결이 지금의 김포한신교회를 개척하여 많은 영혼을 추수하는 감사의 열매가 되었습니다. 저를 연결시켜준 여직원의 얼굴이 지금은 잘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얼마나 감사한지요!


빌립처럼 계산이 빠르면 감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유다처럼 머리가 앞서도 감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안드레처럼 모든 것을 주님께로 잘 연결시킬 때 감사의 열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로 연결시키는 감사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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