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2일 주일 설교
설교제목 : 편애로 인한 성격 형성
말 씀 : 창세기 25장 24-34절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0. 들어가는 글
세상에서 가장 힘든 농사가 자식농사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잘 되어도 자식 농사만큼은 원하는 대로 잘 되지 않는다고 탄식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 농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부모라는 것을 부인하기가 힘이 듭니다. 같은 자식이라도 부모가 좋아하는 자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 자녀가 아버지와 밀착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자녀는 어머니와 밀착됩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잘난 아들을 사랑하고 어머니는 못난 아들을 불쌍히 여긴다” 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가 그대로 적용되는 가정이 오늘 말씀에 등장합니다. 그 가정이 바로 이삭의 가정입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하여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문제는 아버지 이삭은 건장한 아들 에서를 좋아했고 어머니는 딸 같은 아들 야곱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편애적인 사랑이 자녀들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대접받는 대로 성격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부모의 편애적인 사랑이 자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편애하는 가정
아버지 이삭은 쌍둥이 아들 중에서 첫째인 에서를 편애하였습니다. 이삭이 첫째 아들 에서를 편애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 28절의 보면은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합니다. 이삭이 에서를 편애한 이유가 사람 됨됨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이 좋아하는 고기를 사냥 잘하는 건장한 에서가 자주 공급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편애한 이유는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두 아이가 태중에 일을 때 하나님의 계획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네 복중에 두 민족이 있구나.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는 약속의 말씀을 리브가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에서를 편애한 이유는 리브가처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큰 아들 에서가 사냥을 잘해서 자신의 만족을 채워준다는 육신적이인 이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누구나 부모가 자신을 대했던 방식으로 자신을 대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를 소중히 여기는 가정에서 성장을 하면은 그 자녀도 자신을 소중한 사람이라고 믿으며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녀를 무시하는 가정에서 성장을 하면은 자녀도 자신을 무시하며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을 대하는 대로 자신의 성격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2. 편애로 인한 에서의 성격 형성
에서는 아버지를 통하여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였을까요? 아버지는 자신이 사냥을 해온 고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통하여 에서는 사냥해온 고기가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에서가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증거를 보여준 결정적인 사건이 무엇입니까?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하였습니다. 그 날 따라 짐승을 잡지 못하고 헛수고를 하였습니다. 허탕을 치고 돌아온 에서가 무척 배가 고팠습니다. 어디서 팥죽을 쓰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습니다. 이 때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리고 맙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육신의 만족이 최고라는 가치관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한평생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만족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전혀 영적인 일에 대하여는 고려하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의 육신적인 만족을 위하여 애굽의 여인들을 택하였습니다.
지금도 에서처럼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영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은 팥죽처럼 눈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권의 축복처럼 영적인 것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눈에 보이는 팥죽과 눈이 보이지 않는 장자권의 축복사이에서 영적인 싸움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돌을 떡덩이로 만드는 팥죽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장자권의 축복에 대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영적인 사람은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팥죽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장자권의 축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처럼 육적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장자권의 축복이 아니라 당장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팥죽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3. 편애로 야곱의 성격 형성
에서가 아버지의 편애로 육신적인 가치관을 형성하고 살아갔습니다. 이에 반하여 야곱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습니까?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를 이겨야 한다는 지나친 경쟁의식을 한 평생 가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형 에서를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이는 방법까지 동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생겨난 심리학적 용어가 야곱 콤플렉스입니다. 형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그를 이겨야 한다는 경쟁의식이 야곱의 한평생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야곱처럼 경쟁의식이 강한 사람은 성공 지향적인 사고를 추구합니다. 한평생 오직 성공만을 위하여 좌우를 살피지 아니하고 질주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경에도 형제들간의 경쟁의식으로 성공 지향적인 인생을 추구한 대표적인 두 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와 솔로몬입니다. 모세도 애굽의 왕자들 사이에서 차기 대권을 위해 얼마나 경쟁의식속에서 성공을 추구하며 살았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동족인 히브리인들간의 분쟁에 휘말리게 됨으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도피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세상에서 추구하던 세속적인 성공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순종하는 영적인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됩니다. 솔로몬도 형제들 사이에서 왕권에 오르기 위하여 얼마나 경쟁의식 속에서 살았습니까? 그리고 왕권에 오른 솔로몬은 자신의 왕국을 성공적으로 세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공사를 하였습니까? 심지어는 자신의 아버지 다윗이 이루었던 왕국보다 더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자 하는 성공지향적인 추구가 그를 오히려 타락과 실패로 몰아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처럼 자신이 추구하던 성공이 브레이크가 걸렸으면 오히려 좋았을 텐데 솔로몬은 브레이크가 걸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거침없이 질주하였던 것이 마지막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죄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에서처럼 스스로 강함을 의지하며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처럼 경쟁의식이 강하고 성공 지향적인 인물입니다. 저 같은 성향을 가진 인물은 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야곱의 입장에서 사냥을 잘하는 쌍둥이 형 에서는 늘 인정을 받고 자신은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겠습니까! 한신대 신학과를 입학하였는데도 아무도 인정해주는 사람없이 저 혼자 입학식 날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신학대학교을 다니면서도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다보니 장학금을 받을 수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부모에게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저를 참으로 공허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 한신교회에서 부교역자로 보낸 십년의 세월도 어찌보면 하나님보다도 이중표 목사님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지치도록 열심내어 일한 느낌이 납니다. 제가 그렇게 성공을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서 일할 때 우리 집사람은 하루 종일 지하 단칸방에서 어린 아이 둘을 키우면서 힘들어서 눈물지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저는 애기들은 낳아놓기만 하면은 알아서 저절로 커주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기에 성공지향적인 삶을 꺾으셨습니다. 가장 경쟁의 상대였던 에서를 통하여 야곱의 성공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게 만들었습니다. 열두 아들을 데리고 거부가 되어서 돌아오는 야곱에게 형 에서가 400여명의 군사를 몰고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성공이 한 순간에 무너질 위기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이루어 놓은 모든 성공을 먼저 떠나보내고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밤새 내내 기도 가운데 씨름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축복을 구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축복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을 구하였습니다. 그 영적인 축복의 징표로 환도 뼈가 부러져서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저는 다리 때문에 더 이상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더 이상 성공을 이룰 수가 업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도 야곱처럼 성공지향적인 저를 꺾으셨습니다. 당시에는 목사 임직 전에 준목고시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보는 준목고시를 떨어졌습니다.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였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준목고시도 떨어졌습니다. 성공으로 계속 질주하던 저에게 한번도 아니라 두 번씩 준목고시에 떨어짐으로 인하여 많은 것을 꺾으셨습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은 그 때 하나님이 두 번씩이나 저를 준목고시에서 떨어지게 한 것이 은혜였습니다. 성공을 추구하며 달리던 저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서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며 겸손케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에서처럼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성격을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야곱처럼 경쟁적이며 성공을 추구하여 인정받고 싶은 성격을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것이 꺽여져야만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자신의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꺽여짐 없이 이루어진 성공은 아무리 위대할 찌라도 주님과 무관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성격이 하나님 안에서 껵여짐으로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성격으로 형성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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