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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 탄생을 준비한 사람들(목자들)/ 누가복음 2장 8-20절/ 12월 13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09-12-14 추천 0 댓글 0 조회 374

2009년 12월 13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메시야 탄생을 준비한 사람들(목자들)

말 씀 : 누가복음 2장 8-20절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0. 들어가는 글

지리산에 두 갈래 길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케이블카를 통하여 노고단 정상까지 오르는 길입니다. 또 하나는 총 300㎞의 국내 최장 도보 여행 길로서 다 걸으려면 26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타고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현대적이며 빠르고 편합니다. 도보로 걸어가는 둘레길은 오래된 길로서 느리고 불편합니다. 케이블카는 빠른 관광이며, 보고 떠나는 관광이며, 한번 보고 다시 안 오는 관광입니다. 둘레길은 느린 관광이며, 체험하고 머무는 관광이며, 한 번 오면 또 오는 관광입니다. 케이블카가 산 정상을 밟고자 하는 인간 욕망을 인정하고 충족을 시켜 줍니다. 둘레길은 산 정상으로 오르려는 인간의 욕망을 단념시키고 산 밑으로 인도합니다. 지리산의 미래를 놓고 벌이는 케이블카와 둘레길의 대결은 단순히 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가치 전쟁입니다. 이 가치전쟁이 강에서, 산에서, 댐에서, 도로에서, 전국 어디서나 벌어지는 대결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느 길로 지리산을 만나겠습니까?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간입니다. 길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을 시작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심을 고백합니다. 메시야 탄생을 준비한 사람들 세 번째 시간으로서 요셉과 세례 요한에 이어서 오늘은 목자들이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목자들이 예수님 탄생의 첫 번째 목격자들이 되었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예수님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14절 말씀에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고 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주님이 지극히 낮은 곳인 땅에 내려와서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높은 지위에 있었던 왕과 제사장들이나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자신들의 높은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서 예수님을 배척하고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하고 낮은 신분이었던 목자들은 예수님을 맞이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지금도 높은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지극히 낮은 마음이 될 때에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이 한국보다 복음이 100년 이상 더 빨리 들어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복음화 율은 20%이상인데 일본은 단지 1%에 머물고 있습니까? 한국은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 중심으로 전파되었습니다. 한국의 낮은 사람들은 머리로 믿지 아니하고 몸으로 순종하며 믿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신분이 높은 사람은 지식적인 머리로 믿는 신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의 차이가 지금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한 밤 중 들판에서 양을 지키는 목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을 보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목자들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부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사회였습니다. 율법사회란 세상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하여 보는 가치체계입니다. 율법은 직업에 따라서도 정결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으로 구분했습니다. 율법이 부정한 직업으로 본 것은 크게 세 부류의 직업이었습니다. 첫째 돈과 관련된 직업입니다. 투전꾼, 고리대금업자, 세금징수원이 그들입니다. 대표적인 직업이 세리입니다. 둘째 몸을 상대한 직업입니다. 예를 들면 이발사, 목욕탕 관리인, 의사등입니다. 의사가 부정하다는 것은 오늘날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율법적으로 보면 의사는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의 몸을 칼로 찟기도 하고 피를 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정합니다. 셋째는 동물을 상대한 직업입니다. 당나귀 몰이꾼, 낙타 몰이꾼, 피장이가 그 예입니다. 피장이는 동물 가죽으로 구두나 가죽옷을 만드는 사람인데 동물을 죽이고 그 피를 만지기 때문에 부정했습니다. 목자들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으로 정결 하느냐? 부정하느냐? 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말씀에 반응을 보일 수 있느냐? 보이지 않느냐? 가 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당시에 율법을 연구하며 가장 잘 지킨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고 정죄를 받았던 목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을 보이고 순종을 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처럼 율법과 같은 틀에 고정되었으면 예수님이 들어 올수가 없습니다. 목자들처럼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목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움직였습니까? 제일먼저 천사들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16절 말씀을 보면은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라고 합니다. 그것도 지체하지 아니하고 빨리 가서 찾았습니다.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의 반응입니다. 오늘 20절 말씀을 보면은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고 합니다. 목자들은 자기들이 본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도 돌리고 찬송도 드리면서 돌아갔습니다. 목자들은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있는 그대로 순종을 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자라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지 못하고 무덤덤하기 때문입니다.

신학하기 전인 청년시절에 예수님이 공중에 구름타고 재림을 하면은 믿는 우리들이 들림 받아서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다가 너무 큰 은혜를 받아서 동네를 몇 바뀌씩 돌면서 주님이 재림하시면 내가 휴거한다는 것을 외치며 감격했던 기억이 선합니다. 지금도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 때처럼 말씀에 반응하면서 살아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 이유로는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목자들은 부정하게 취급받을 뿐만 아니라 죄인취급까지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 죄인 취급을 받았느냐 하면은 목자들은 법정에 증인으로 설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목자들은 사기꾼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주인의 감독을 받지 않다보니 양을 몰래 훔쳐 남의 땅에 방목시키는 일도 자주 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하도 속여 먹다 보니 양이나 양털, 우유를 사고파는 행위까지 금지 당했습니다. 정통 유대교인들은 목자들을 세리나 창기처럼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목자들은 일찌감치 인생을 포기하고 술과 노름과 음담패설에 찌들어 살기가 일쑤였습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5장 32절에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였습니다. 목자들이나 세리처럼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목자들처럼 낮은 마음과 말씀에 반응하는 마음과 죄인 됨을 인정하는 마음을 가질 때 모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120년 한국 땅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 처음 이 땅을 밟은 선교사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선교의 주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서울에 학교를 세우고 이 민족을 변화시키리라 꿈꾸고 있던 모삼열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모 선교사는 서울에 학교를 세우고 가난한 상놈들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백정을 하는 박씨의 아들이 입학했습니다. 백정은 가장 천히 여기는 직업으로 소 잡고 돼지 잡은 지금으로 말하면 도살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백정의 아들이 학교에 입학했는데 장티푸스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모삼열 선교사는 집을 방문해서 위로하고 기도하고 약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낫지 않자 고종황제의 시의였던 자기 친구 애비슨에게 연락합니다. 그랬더니 애비슨이 와서 그를 치료했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관점으로 한 나라 임금의 시의가 백정의 아들을 그나마 집에까지 와서 고쳐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결국 백정 박씨 일가가 다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정 박씨가 1895년에 세례를 받고 교회 나오자 그가 백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반들이 백정과 함께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반 이상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을 모삼열 선교사가 “예수의 사랑 앞에는 사람의 차별이 없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러자 양반들이 “그러면 양반과 백정의 자리를 구분하여 양반들에게 앞자리를 달라”고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이 타협안을 받아들여 백정도 교회 나와서 뒷자리에서나마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훗날 치유 받은 백정 박씨가 주님 말씀대로 반응하기 위해서 백정에 대한 정부의 차별대우를 철폐할 것을 탄원하는 청원서를 제출합니다. 교회가 이를 적극 도왔습니다. 정부가 그 청원을 받아들여 백정도 평민들과 같이 초립과 망건을 착용해도 좋다는 허락했고 인구조사에서도 빠져있던 백정을 일반 백성과 똑같이 취급하는 상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훗날 치유 받은 백정 박씨는 장로가 되고 그 아들 박동열은 1907년 최초로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가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하여 백정의 자식이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가 되는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합니다.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마음은 낮은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찾아옵니다. 또한 말씀에 반응하는 자들을 통하여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죄인 됨을 고백하는 자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용서받은 의인으로 신분을 변화시켜 주는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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