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7일 송년주일 설교
하나님 말씀 : 신명기 8:1-10절
설교제목 :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09년도 마지막 송년 주일로 지킵니다. 어떤 목사님이 아라비안나이트에 실려 있는 이야기를 비유로 올해를 표현하였습니다. 페르시아에 카심과 알리바바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 카심은 부유했고 동생 알리바바는 가난했습니다. 어느 날 나무하러 산에 간 알리바바가 놀라운 일을 겪습니다. 40명이 되는 도둑들이 오는데 언덕 위 큰 바위 앞에 서더니 두목인 듯한 자가 큰소리로 “열려라, 참깨!” 외치자 큰 바위가 스르르 열리면서 동굴이 나타났습니다. 보물을 동굴 속으로 나르고 두목이 다시 “닫혀라, 참깨!” 외치며 도둑들이 사라졌습니다. 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알리바바가 내려와 큰 바위 앞에 서서 “열려라, 참깨!”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동생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카심도 동굴로 가서 “열려라, 참깨!” 하고 들어가서 너무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추며 이것저것 끌어 담느라 정신이 없어서 동굴 문을 여닫는 암호를 잊어버렸습니다.
카심은 동굴 안에서 문을 열려고 허둥대다가 밖에서 도둑이 외치는 암호를 듣고 놀래서 죽었습니다. 카심이 죽은 까닭은 비밀 코드를 잊어버려서 닫힌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 우리 사회의 모습이 닫힌 문이 열리지 않는 그림과 같습니다. 정치를 비롯하여 사회와 경제가 둥굴 안에 갇혀서 동굴밖에 있는 국민들과 소통을 전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한해였습니다. 새해에는 정치와 사회와 경제가 갇힌 동굴 안에서 비밀암호를 떠올려 밖에 있는 국민들과 소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그 비밀 암호는 성경 말씀 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마지막 송년 주일에 하나님이 우리를 왜 광야로 인도하는 지를 깨닫고 새해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감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해방을 시키시고 그들을 광야 40년동안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광야에서 40년 동안 인도를 하였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3절 말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노예생활을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배고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리게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여기서 의도하신 바는 육신의 배고픔만큼 말씀의 주림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게 하자는 의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육적인 양식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오늘 수확한 만나를 내일까지 남겨두면 벌레가 먹어 썩는다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의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먹어야만 영생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앙서적 중에 저에게 가장 감동을 준 책 중 한권은 범브란트 목사님의 <하나님의 지하운동>이라는 책입니다. 공산치하의 루마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 14년 동안 옥중 생활을 하였던 목사님입니다. 옥중에서의 고문은 불이 달아 오른 다리미로 몸을 지지거나, 거꾸로 매달아 놓고 피멍이 들도록 때리는 등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에게 똥과 오줌을 주면서 성만찬을 강요했으며, 최악의 시련은 지하 9미터에 위치한 감방에서 홀로 3년을 보내야 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지하 9미터에 사람을 홀로 가두어 놓으면 정신 이상자가 되거나 사람이 죽어서 나온다고 합니다. 지금도 지하 9미터 감방에서 3년 동안 사람이 온전한 정신과 건강한 몸으로 살아나 온 일에 대해서는 불가사의한 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지하9미터의 감방에 홀로 있는 목사님에게도 매일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의 말씀을 공급해 주었기 때문에 이 불가사의한 일이 가능했다고 믿습니다.
2. 광야로 인도하며 징계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은혜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시며 징계하신 이유에 대하여 5절에서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의 초점이 징계에 맞추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는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노예들을 아들로 바꾸시기 위하여 징계를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신분으로 변화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놀라운 축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에서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의 노예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가 되어야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출애굽은 순식간에 이루졌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노예의식을 버리는데 40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겉 사람의 변화는 쉽습니다. 그러나 속사람의 변화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사람의 변화를 위하여 안식해야 한다고 합니다. 안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노예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노예는 일에 매어 있어서 휴식이 없습니다. 억지로 일하고 일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러나 자유인은 쉴 줄 알고, 일할 줄 압니다. 안식할 줄 모르는 노예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식할 수 없지만 은혜로 산다는 사람은 안식이 가능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속사람의 변화를 위해서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노예의 특징은 자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항상 받는 것에 익숙하며 드림도 없고 주는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노예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주는 것을 훈련시킴으로 노예근성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없는 사람은 한번 생기면 그 애착이 대단합니다. 절대로 놓지 않습니다. 손에 쥔 것을 줄 줄 알 때,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집착의 노예가 되지 말고, 풀어 놓을 줄 아는 자유인이 되라는 뜻이다.
3.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는 순종의 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신 전체적인 이유는 순종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2절 말씀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제가 나누고 싶은 것은 순종의 여부를 시험하시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낮춘다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한 백성들이 얼마나 기가 죽어있겠습니까! 자존감이 아마도 바닥을 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무엇을 더 낮추시겠다는 것입니까? 노예들을 칭찬하고 격려해서 세워주어도 부족할 처지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노예의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낮추시는 가장 큰 이유는 400년 동안의 노예 생활이라는 익숙함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손에 익고, 눈에 익고, 귀에 익은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익숙함에 함정이 있습니다. 익숙함은 소중함을 망각하고 소홀함에 빠질 수 있습니다. 광야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소홀함에 빠져서 원망하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넘어 교만함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광야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는 익숙함이 교만이 되어서 새로운 출발의 순종을 거부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춤을 추었습니다. 익숙함은 이타심에서 출발하여 이기심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광야의 백성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이타심이 아니라 이기심에 빠져서 고라와 다단의 무리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익숙함은 성장을 멈추고 안일함을 취합니다. 광야의 백성들이 믿음의 성장을 멈추고 안일함에 빠져서 미디안의 음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습니다. 익숙함은 미래가 아닌 과거에 매달리게 됩니다. 광야의 백성들이 미래의 가나안 땅이 아니라 과거의 애굽으로 끓임없이 돌아가자고 합니다.
우리들이 신앙의 익숙함에 빠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움의 순종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사역을 거부하고, 새로운 만남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두려워서 익숙함에 젖어서 그대로 안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익숙함의 함정에 빠져 있다면 소중한 것들이 질식되지 않도록 빨리 빠져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올 한해의 모든 익숙함을 깨드리고 새로운 출발을 통하여 순종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우리는 어찌보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광야와 같은 한해를 보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육신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인생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하늘의 양식을 먹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세상의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안식할 줄 알며 손에 쥔 것을 나눌 수 있는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익숙함을 버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인도하심에 순종할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