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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가운데서 강하라/ 디모데 후서 2장 1-6절/ 1월 3일 신년 주일 설교
조영식 2010-01-05 추천 0 댓글 0 조회 910

2010년도 1월 3일 신년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은혜 가운데서 강하라

말 씀 : 디모데 후서 2장 1-6절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0. 들어가는 글

2010년 경인년을 시작하는 새해 첫 주일입니다. 2009년을 마무리하면서 가장 감사한 소식은 아랍에미르트 원전 47조의 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감사한 일은 용사 참사가 345일 만에 극적으로 해결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철거민과 경찰관 등 여섯 명의 생명을 앗아간 용산 참사가 해결되어서 이제는 장례를 치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용산 참사가 극적으로 해결되는 모습 속에 우리 민족이 어떻게 화합을 해야 하는지 답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번 해결은 유족과 조합이 그 동안 자신들이 요구했던 일들에 대하여 한발씩 양보함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서로 양보함 없이는 어떤 해결도 이루기 힘들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종교계의 역할입니다. 이번 용사 참사 해결에 종교계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종교계가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아니하고 중재자의 역할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종교계가 중재자가 되다보니 서로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종교계가 피해자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는 것입니다. 유족들과 철거민 자녀들에게 기독교 단체에서 장학금을 주면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한국 기독교가 해야 할 참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성도님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떠오르는 말씀이 “은혜 가운데 강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새해가 되어도 우리 모습은 여전히 연약함입니다. 연약한 우리들이 새해에도 영적인 삶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은혜 가운데서 강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새해에 어떻게 은혜 안에서 강해질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은혜 안에서 강한 새해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썰렁한 지하 감옥에서 순교의 날을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쓴 편지입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낸 사람은 디모데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부를 때마다 “내 아들아”라고 불렀습니다. 디모데는 말하자면 바울이 복음 안에서 낳은 영적 아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향한 마음이 이 호칭 속에 깊이 녹아져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순교를 눈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 속에 얼마나 큰 애정이 담겨져 있겠습니까! 큰 애정을 담은 사도 바울은 첫 번째 부탁은 “예수 안에 있는 은혜속에 강하라”는 것입니다(1절). 디모데는 참으로 성실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약한 성품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약한 성품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강해지는 것입니다. 강해지는 방법이 자신의 힘과 의지가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서 강해져라는 것입니다. 새해에도 우리는 디모데처럼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받아서 강해질 수 있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목회자로 부족함이 참으로 많은 종입니다. 저에게 하나님이 특별한 은사나 능력을 주신 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없습니다. 성격도 다정다감하고 친근감이 넘치는 것도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 강해보이지만 속으로 상처도 잘 받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저보고 은근히 뒤끝도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 많은 기적이 있지만 제가 생각해도 저 같은 사람이 목회자로 쓰임 받는 다는 것이 큰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부족함을 하나님의 은혜로 덮어주시지 않으면 여기에 설 수가 없는 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청지기로 임명받습니다. 모두다 자격이 있고 감당할 능력이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강해짐으로 주어진 청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할 줄 믿습니다.


2. 충성된 한해

사도 바울이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두 번째로 부탁한 것은 충성된 자를 세우라는 것입니다(2절).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에 직면합니다. 무엇을 위한 충성이냐는 것입니다. 2절 말씀에서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이 주신 복음의 증인으로서 충성이어야 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라 구원선이 되어야 합니다. 어두움의 영들을 결박시키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이 교회 존재의 목적입니다. 저는 늘 고백합니다. 성도들의 충성이 목사를 향한 충성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목사도 주님이 주신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충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청지기로 임명받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교사 등 모든 성도님들이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릴 수 있는 복음의 증인으로서 충성을 다짐하는 시간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청지기로서 충성된 모습에 대하여 세 가지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모델은 예수님의 좋은 병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3절). 병사라는 용어 속에 그리스도인은 마귀와의 영적싸움을 통하여 고난과 핍박을 이기고 승리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병사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먼저 완수하기 위해서 사적이고 세상적인 일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4절에서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는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새해에 하나님의 청지기로 임명받은 우리들은 주일만큼은 자신의 생활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주님의 병사되어 충성을 다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성경적으로 안식한다는 의미를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의 의미는 주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간으로 사용하는 것은 성경적인 안식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서 영원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분이 없지만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봉사했기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싸우나 가서 좀 쉬어야 겠다는 것입니다. 예배 속에서 주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서 주님을 만나는 참된 안식의 체험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로렌스 신부처럼 설거지하면서 주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서 주님과 동행하는 체험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나 섬김 속에서 주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서 주님을 만나면는 피곤해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새 힘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배를 들이고 섬기는 일들이 모두 주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 주님을 만나는 임재의 체험 속에서 영적인 새 힘을 얻는 은혜의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충성된 자의 두 번째 모델은 법대로 경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경기 규칙을 위반 하면은 실격 처리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88올림픽 때 캐나다의 밴 존슨 선수가 100미터 달리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도핑테스트로 인하여 약물 복용이 밝혀지면서 실격 처리를 당했습니다. 그 기록은 무효가 되고 금메달은 당시에 2등을 했던 칼 루이스에게 돌아갔습니다. 칼 루이스는 올림픽에서만 9개의 금메달을 딴 육상의 전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가 최고의 육상 선수가 되는데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도둑이 그의 모터사이클을 훔쳐갑니다. 며칠 후 이번에는 자전거를 샀지만 그것마저 도둑맞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번 자전거를 잃어버리자 화가 난 그는 매일 왕복 24km를 뛰어서 출퇴근합니다. 매일 그렇게 달린 결과 그는 세계 제일의 달리기 선수가 됩니다. 훗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인터뷰에서 "어떤 도둑도 달리기만은 훔쳐갈 수 없었다." 고 말합니다. 머리로 익힌 것은 도둑맞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몸으로 익힌 것은 결코 도둑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영적 싸움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말씀의 법대로 경기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밴 존슨처럼 유혹을 받아서 실격처리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칼 루이스가 법대로 달리는 습관을 익혀서 승리의 면류관을 받는 것처럼 청지기로 임몀받는 우리들도 말씀의 법대로 살아가는 것을 몸에 익힌다면 승리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교회가 말씀의 법대로 하지 않고도 세상의 성공방법들을 동원하여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서서는 실격처리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크게 교회를 성장 시키지 못하였어도 말씀의 법대로 목회를 마지막까지 하면은 주님 앞에 서서는 승리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한신교회는 교회 성장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말씀의 법대로 한걸음씩 주님이 오실 때가지 나아갈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충성된 자의 세 번째 모습은 수고하는 농부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며 수고하지 아니하고는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여겨집니다. 저절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몽골의 차탕 마을이 있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뿔을 가진 순록을 좇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삶의 리듬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해 뜨면 일어나 순록을 몰고 나가 일하다가, 해 지면 누워 잠을 잡니다. 풀과 이끼류를 따라 순록이 이동하면 그들도 게르를 걷어 뒤를 따릅니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는 더 이상 순록을 따라 이동하지 않습니다. 관광객들에게 자기들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순록의 등에 관광객들을 태워주면서 살아갑니다. 순록은 이제 가족이 아니라 돈벌이의 수단일 뿐입니다. 차강노루 호숫가의 순록들은 달리지 못합니다. 엉금엉금 걸을 뿐입니다. 하늘을 보거나 질주하지 못하도록 뿔과 앞다리를 끈으로 묶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수고하며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 아니라 쉽게 살려는 유혹이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초원을 달려야 하는 순록이 돈벌이 수단으로 뿔과 앞다리를 묶어 놓아서 하늘도 보지 못하고 달리지도 못합니다. 세상에서 편하게 살려고 하는 우리들의 욕망이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하고 천성을 향하여 달리지 못하게 하는 올무는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농부의 심정이 되어서
복음의 씨를 뿌리고 수고하며 기도로 가꿀 때 주님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청지기로 임명받는 우리들이 은혜 안에서 강해지며, 충성된 청지기가 되어서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예수님의 좋은 병사가 되고, 말씀의 법대로 경기하는 자가 되고, 농부의 심정이 되어서 말씀의 씨를 뿌리고 수고하는 일꾼으로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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