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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자라남/ 에베소서 4장 13-16절/ 2월 28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0-03-02 추천 0 댓글 0 조회 358

2010년 2월 28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사랑으로 자라남

말 씀 : 에베소서 4장 13-16절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0. 들어가는 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온 국민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 만 미터에서 네델란드의 1등한 선수가 실격이 되어서 우리나라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반대로 쇼트트랙 삼천미터 여자 계주에서 우리나라가 1등으로 들어왔지만 실격처리가 되어서 메달을 따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아쉬움에 온 국민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김연아가 세계 신기록으로 피겨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자 온 국민이 자신이 금메달을 딴 것처럼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팔과 다리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돌며 희망을 전하는 28세의 닉 부이치치 청년이 지금 한국에 들어와서 간증하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팔과 다리가 없이 작은 왼발에 발가락 2개를 가지고 태어난 그는 응석받이 아이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할 여덟 살 즈음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가지면서 수영 줄넘기 골프 농구 등 스포츠를 해냈고 호주 그리피스대에서 회계학과 재무학을 복수 전공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수족 없는 삶’이란 장애인 비영리단체를 만든 후부터는 29개국을 다니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는 간증을 통해서 “저는 팔다리가 없지만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피조물이니까요. 여러분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장애는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라며 “하나님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장애를 극복한 인물 뒤에는 대부분 함께 고난을 이겨낸 부모가 있습니다. 닉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양육태도 때문이었습니다. 닉의 부모는 팔다리가 없는 닉을 다른 자녀와 동등하게 대우했습니다. 아들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길 때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 없단다. 나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고 가치 있게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단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을 지탱해준 힘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말씀이었습니다. 팔과 다리가 없지만 닉처럼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가치있는 존재가 되기 위에서는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야 합니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닉의 신앙이 자라났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포하는 바이러스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는 영적인 원리를 깨달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향까지 자라나시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믿음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13절).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삶속에서 행동으로 옮길 때 믿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은 많아도 믿는 것을 아주 적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웨버는 “종교는 삶 속에서만 성숙된다”고 했습니다.


창세기에 믿음의 족장이 4대에 걸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는 것을 삶속에서 실천함으로 믿음의 조상들이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족장들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출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출발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는 삶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떠나는 것 없이는 믿음의 출발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삭은 믿음의 거듭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중생의 거듭남을 체험한 것입니다. 우리도 십자가에서 모든 것이 죽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거듭남의 체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야곱은 영과 육의 싸움으로 인한 고난을 통하여 영적인 사람으로 성화되어 감을 보여 주는 것 입니다. 야곱은 육신의 욕망과 영적인 소망이 늘 충돌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하여 육적인 삶을 버리고 영적인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네 번로 요셉은 어는 곳에 있는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죄수로, 총리로 어느 곳에 있는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섬기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세상으로부터 떠나고, 이삭처럼 십자가에서 모든 것이 죽음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야곱처럼 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고, 요셉처럼 어느 곳에 있는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섬김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라나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 성장이후에 성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장했다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성장 후에는 성숙이 따라야 합니다. 벼를 심어 놓으면 한 여름 동안 햇볕을 받으며 잘 자랍니다. 다 자란 후에는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알곡을 키우고 여물게 만드는 성숙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그래야 양질의 좋은 쌀을 만들어 냅니다. 성장과 함께 성숙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외적인 성장을 통하여 숫자가 많은 큰 교회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속한 교인들의 성숙이 없으면 반드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외적인 성장은 있었는데 내적인 성숙이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에 갈등과 어려움이 많았던 것입니다.


지난주 목요일 집사람은 아동센터 일로 교회에서 집에 늦게 들어와서 제가 먼저 집에 들어가 학원에 간 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방안에 굴러다니는 책이 한권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들에게 읽으라고 권했던 책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어느 집사님이 선물을 해주었는데 이절환 씨가 쓴 곰보빵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딸을 기다리면서 책장을 넘기는데 예전에 읽을 때보다도 더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낮고 어두운 곳에 살고 있지만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제가 곰보빵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지금 하고 있는 목회와 비교에 보니 그래도 덜 부끄러웠습니다. 교회가 외적으로 성장하여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목회가 아니라 그래도 낮은 자리로 내려와서 어려운 영혼들과 함께 살고자 하는 목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감사함으로 밀려왔습니다. 성장에만 치우는 것이 아니라 성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지금의 마음이 변치 않기를 그 자리에서 기도 드렸습니다.


3. 사랑으로 자라나고 세워집니다.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그 원동력을 오늘 말씀에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15절에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합니다. 사랑이 사람을 성장시키며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사랑이 사람을 자라나게 하며 세운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던 지난 시절을 저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참으로 율법적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예수님을 알고 난 이후에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넘처났습니다. 주님을 향한 열심에는 두 번째가 되기 싫었고 항상 첫 번째가 되고 싶었습니다. 내 열심히 그러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많이 정죄하였습니다. 또한 나중에는 내 자신을 향하여서도 정죄를 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내 자신을 많이 자책하면서 괴롭히기도 하였습니다. 주님이 주신 사랑만이 한 영혼을 자라나게 하며 세운다는 사실을 모른체 참으로 평안함이 없이 신앙생활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랑만이 한 영혼을 자라나게 하며 사람을 세운다는 이야기를 지난주에 다시 읽었던 곰보빵 한 대목을 소개하면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저녁 무렵에 음식점에 초라한 옷을 입은 누나와 남동생 두명이 들어왔습니다. 짜장면 두 개를 시켰습니다. 일곱 살 된 동생이 ‘누나는 왜 안 먹느냐?’ 고 물어보았습니다. 누나는 ‘배가 아파서 먹지 않는다’ 고 하면서 동생에게 ‘네 생일이니 많이 먹으라’ 고 하였습니다. 동생들은 옆 테이블에 앉아서 부모와 함께 음식을 먹는 자기 또래의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우리도 엄마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때 주방 안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나와서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서 아는 척을 하였습니다. 너희들의 엄마 친구라고 하면서 한동네에서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너희가 아주 어릴 때라서 기억이 안나나 보구나 하면서 얼굴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리고 짜장면 세 그릇과 탕수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배가 아파서 먹지 않겠다고 시키지 않았던 누나까지 모두가 함께 신나게 먹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문밖까지 배웅을 나와서 언제든지 짜장면을 먹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나와서 ‘아는 아이들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내는 모르는 아이들인데 엄마 아빠가 없는 애들이라고 음식을 그냥주면 상처받을지 몰라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남동생 생일이라고 자기는 먹고 싶어도 동생들만 시켜주는 모습이 너무나 아파서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엄마 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또 올수고 있다는 생각에 그랬다고 합니다.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소리없이 아픔을 감싸 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제 생각인데요 엄마 아빠가 없는 어린 누나와 동생 둘은 엄마 친구가 되어준 아주머니 사랑 때문에 세상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마음이 세상에 지치고 힘든 영혼들을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삶속에서 실천이 될 때 믿는 것이 되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또한 외적인 성장만큼 중요한 것이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벼가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숙해져야만 알곡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을 자라나게 하는 영적인 원리가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우리의 영혼을 자라나게 하며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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