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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 창세기 26장 22-33절/ 3월 7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0-03-08 추천 0 댓글 0 조회 503

2010년 3월 7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

말 씀 : 창세기 26장 22-33절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0. 들어가는 글

지난주에 3.1절이 있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 치하의 총칼 앞에서 맨몸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선조들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후손들의 마음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기독교 신앙은 독립운동의 애국정신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나라를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저희 부부는 첫째 아이 하민이가 백일쯤 되었을 때 속리산에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속리산은 정상에 올라가면 또 다른 정상으로 종주를 할 수가 있는 산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또 다른 정상으로 종주를 하자고 앞장서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서 입산 금지 구역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바위를 뛰어서 건너고 암벽에 매달린 밧줄을 탔습니다. 그렇게 참 스릴이 넘친다고 하면서 한참 가는데 길이 끓어지고 말았습니다. 길을 찾으면서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하늘에 쌔 가만 구름이 몰려왔습니다. 산이 어두워지면서 비가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아무준비 없이 산속에서 조난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우리 아내와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집에 백일밖에 안된 우리 아들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처음에 올랐던 산 정상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헤맸는데 처음에 올랐던 산 정상으로 돌아오는 길은 짧은 시간에 찾아서 다시 정상에 오를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산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야만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도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돌아와야만 살수 있다는 은혜가 가슴속에 새겨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축복 속에 담겨진 유혹

어느 해에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삭은 불레셋 땅 그랄로 피난을 갔습니다(창 26:1). 그리고 그랄 땅에서 농사를 지어 하나님의 축복으로 백배의 결실을 얻어서 엄청난 거부가 되었습니다(13절). 그러자 불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족장 시대의 가장 큰 재산이자 삶의 원천인 우물을 흙으로 메웠고 아비멜렉 왕도 이삭에게 떠나라고 했습니다(16절). 이삭은 그랄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들어가 장막을 치고 우물을 파자 물이 터졌습니다(18-19절). 그 소식을 듣고 그랄 목자들이 와서 그 우물이 자기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그 ‘에섹’이란 우물을 내어주고 다른 우물을 파자 또 물이 터졌습니다. 그러자 그랄 사람들이 다시 와서 그 우물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할 수 없이 이삭은 그 ‘싯나’란 우물도 내어주고 다른 우물을 파자 또 다시 우물물이 터졌습니다. 그때 그랄 사람들도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곳 이름을 ‘넓은 공간’이란 뜻을 가진 르호봇이라 부르고 이제는 번성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22절).


이삭은 고난도 있었지만 가는데 마다 물이 나오고 결국은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 르호봇이라는 축복을 무척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투지 아니하고 양보를 하니까 하나님이 계속 물이 나오는 축복을 주고 결국은 지경까지 넓어지는 번성의 축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줄 알고 이런 설교를 여러번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23절 말씀을 보면은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라고 나옵니다. 이삭이 르호봇의 축복이 있은 후에 그것을 버리고 브엘세바로 올라가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삭이 르호봇에서 받은 축복은 하나님이 원하는 장소에서 받은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르호봇은 약속의 땅이 아닌 이방의 블레셋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르호봇에서 얻는 모든 축복을 뒤로한 채 하나님의 약속 땅인 브엘세바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장소에서 받는 축복이 우리에게 오히려 유혹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삭은 세상에서 받는 축복보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로 올라가는 것이 더 중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로호봇에서 받는 모든 축복을 버리고 약속의 땅인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에서 함께하는 축복

르호봇에서 받은 축복을 버리고 약속의 땅인 브엘세바로 올라가는 이삭에 대하여 하나님이 어떤 응답을 해 주셨습니까? 24절 말씀을 보면은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고 합니다. 브엘세바로 올라가는 이삭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축복보다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더 중요시 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세상에서 받는 어떠한 부유함보다도 모든 것을 포기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는 장소에서 함께하는 것을 더 큰 축복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르호봇의 축복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가장 위험스러운 유혹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브엘세바로 올라감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함께하는 축복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의문을 하나 제기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와서 28절에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미 이전에도 이삭과 하나님이 함께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24절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전에도 함께했던 것처럼 계속 함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분명히 하나님이 함께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쪽자리로 함께하신 것입니다. 브엘세바로 올라오면서 이삭과 하나님과의 양쪽이 함께하는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를 떠난 이삭을 보호해주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에서 이삭과 서로 주고받으며 함께하는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3. 어느 장소의 우물이 진정한 축복의 우물인가?

그 이유로 이삭이 브엘세바로 올라와서 제일먼저 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25절 말씀을 보면은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고 합니다. 이삭이 브엘세바로 올라와서 제일먼저 한 일은 예배의 제단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이삭이 브엘세바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주고받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삭이 그랄 지역에서 여러 번 우물이 터지고 지경이 넓어져서 많은 축복을 받았지만 먼저 예배의 제단을 쌓고 일어난 결과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브엘세바에 올라와서 장막을 치는 일보다 우물을 파는 일보다 먼저 예배의 제단을 쌓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삭은 브엘세바에서 제일먼저 영적인 우선순위를 바로 세움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랄에서는 끓임없이 경쟁하면서 다투었던 아비멜렉과 브엘세바에는 화해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30-31절).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블레셋 땅에서 얻었던 것을 모두 포기하고 약속의 땅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더 이상 충돌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혹자는 이미 르호봇에서 다투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잠시 휴전한 것인지 진정한 화해를 이룬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르호봇에서 얻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브엘세바에 올라옴으로 진정한 화해와 평안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도 이삭처럼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최근에 사람들이 모인 곳을 가보면은 다툼이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화목케 하며, 하나되게 하는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집착하며 욕심을 부리고 다투는 모습을 보면 그 성령이 진짜 성령인지 회의감이 밀려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를 떠나을 때는 끓임 없는 경쟁과 다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로 돌아오면 평안과 화목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 브엘세바에서도 우물물이 나왔습니다(32절). 이전의 우물도 하나님이 주신 우물이지만 예배의 제단을 쌓지 않고, 주변사람들과 다투면서 얻은 우물과는 다른 차원의 우물인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예배와 화목을 통하여 이룬 우물이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축복의 우물인 것입니다. 예배의 제단도 쌓고, 다툼의 대상과 화해를 이루고, 우물물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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