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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받은 이후의 삶/ 사도행전 2장 42-47절/ 6월 13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0-06-13 추천 0 댓글 0 조회 751

2010년 6월 13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성령 받은 이후의 삶

말 씀 : 사도행전 2장 42-47절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0. 들어가는 글

초여름에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나로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어서 무더위를 시켜주기를 바랬지만 실패함으로 국민들이 더 열을 받았습니다. 5025억원을 들인 나로호가 대기권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70㎞ 상공 지점의 제주도 남단 공해상에 떨어진 결과를 놓고 봤을 때 잘 서지도 못했는데 왜 무리하게 서둘렀는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나로호 발사 전 실패를 예측한 이상 징후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강행만을 고집하였습니다. 지난해 나로호 1차 실패의 원인 이었던 페어링 분리 실패 때보다 기술력이 더 후퇴하였습니다.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실패하여 오히려 나로호 3차 발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서둘러서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가라”고 하는 속담처럼 철저히 준비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나로호 발사가 급하게 서둘러서 실패한 것처럼 우리들도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급하게 서둘러서 진행하는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함으로 초대 교회가 시작되었던 사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성령이 임함으로 시작된 초대교회를 모델삼아 우리 교회가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급하게 서두르는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초대 교회를 본받아 철저히 준비하면서 건강한 교회를 세워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영화관 교회와 지체의식을 지닌 가족과 교회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한국교회가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성령을 받아야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이후에 성도들의 삶은 어떠했는지에 대하여 한국교회가 소홀이 다루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성령 받은 이후의 삶입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성령 받은 과정에 대하여서는 다양한 체험들을 간증합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이후의 변화된 삶에 대하여서는 할 말이 많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성령을 받는 과정이 바울처럼 극적인 체험이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처럼 극적인 체험은 없지만 내 안에 성령이 계심을 확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극적인 체험이 있을 수도 있고 또한 없을 수도 있지만 언제나 삶으로 나타나는 열매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체험은 많은데 삶의 열매가 부족하기에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 받은 이후의 초대 교회 삶의 모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받은 이후에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기사와 표적도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말씀에 놀랐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다”고 합니다(44-45절). 성령 받은 이후에 개인의 소유권이 사라졌으며, 서로간의 모든 장벽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교인들이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숫자가 많아질수록 가족과 같은 교회가 아니라 영화관 같은 교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듯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영화관에서 재미있어서 웃기도 합니다. 감동을 받아서 눈물도 흘립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함께 영화를 보는 사람과 어떤 나눔도 없이 자신의 만족만을 채우고 돌아옵니다. 이와 동일하게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들으면서 웃기도 합니다. 설교에 은혜를 받아서 감동도 받고 눈물도 흘립니다. 그러나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과 어떤 나눔도 없이 자신의 만족만 채우고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교회 주차장에서 서로 얼굴을 모르기 때문에 차를 빼면서 다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영화관 같은 교회라는 풍자가 영화관의 모습이나 지금의 교회의 모습이 다를 바가 없다고 해서 생겨났습니다. 극단적인 비약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전혀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초대교회처럼 가족과 같은 지체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족과 같은 지체의식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교회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다보니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다니고 싶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보다도 더 강하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족과 같은 지체의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분열된 고린도 교회에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합니다(고전12장12절). 이번 교직자 교육대회에 가서 김포한신교회가 주일날 점심 식사로 밥을 먹는다는 말에 놀라는 것입니다. 저는 너무 당연한 것인데 말입니다. 초대교회가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듯이” 우리 교회도 함께 식사를 하면서 가족과 같은 지체의식이 생겨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보험회사 기능 교회와 삶을 변화 시키는 교회

저는 가끔 제가 목사가 아니라 보험회사 직원이 아닌가라는 자괴감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현대 교회가 세상에서 보험을 드는 일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보험은 현세에 보장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의 보험은 사후에 보장을 받는 것입니다. 현세에 재난이 닥치면은 도움을 받기위해 보험을 잘 들어 놓듯이 죽은 후에 우리 영혼이 갈 수 있는 곳 하나 만들어 놓기 위하여 교회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험을 들을 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드는 것이 아닙니다. 보장을 받기 잘 받기 위한 목적으로 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에 대한 사랑없이 죽은 다음에 천국 보장을 받을 목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없이 교회를 다니다 보면은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 헌금하는 것이 보험료 납부하는 것처럼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보험회사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천국 가는 목적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없이 천국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 결과로 천국 가는 것이 바른 믿음이며 놀라운 은혜입니다.


또한 보험을 든 사람은 보상을 크게 받는 것이 목적이지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변화시키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이처럼 요사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죽어서 천국만 가면 되지 자신의 삶의 변화를 위해 회개를 한다든지 헌신하는 것을 귀찮아합니다. 세상에서 할 것 다하면서 죽은 이후에 천국가기 위하여 보험용으로 교회 나오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위하여 세상 것을 절제하며 구별된 삶을 살고자 하면은 보험용 교인들에게 분위기 깬다고 핀잔듣기가 일쑤입니다. 보험회사 직원이 보험 든 사람의 삶에 간섭할 수가 없습니다. 그랬다가 오히려 해약당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의 처지가 보험사 직원과 다르지 않습니다. 목사가 성도들의 삶의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축복이 되는 말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도들의 사생활은 알면서도 모른척 해주어야 합니다. 괜히 끼어들었다간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기가 십상입니다. 지금의 교회들이 천국을 보장하는 보험회사가 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부족하고 삶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다보니 초대교회처럼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라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47절). 한신교회와 우리 성도님들이 지역사회에서 비난받는 소리들보다 칭송받는 소리가 더 많은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교회와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

현대 교회 중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교회는 괜찮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교회에 많은 성도님들이 몰려와서 성장이 잘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21세기 성장하는 교회 모델 중의 하나가 사회복지를 함께하는 교회입니다. 교회 성장 세미나를 하면은 사회복지를 통하여 성장한 교회 사례가 약방의 감초처럼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교회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주님이 더 기뻐하는 교회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교회의 모습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 45절에서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라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어려운 이웃을 도울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과 진심으로 함께하는 교회였습니다.


어려운 교회를 돕는 교회는 많이 있습니다. 한신교회보다 어려운 이웃을 더 많이 돕는 교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교회는 재정이 많으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는 재정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는 재정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는 헌금을 하여도 어려운 이웃과 함께 예배드리는 일에는 체면이 손상되어서 교회 생활을 함께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가난한자를 돕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자와 함께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였습니다. 당시에 자칭 거룩한 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은 그들과 식사를 하지 안했지만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어울려서 식사를 함께 하였습니다.


교회를 향한 안티는 항상 존재합니다. 그러나 어떤 안티인지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진리의 문제라면 예수님 당시부터 이천년 교회 역사 속에서 항상 안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성도들의 삶의 문제로 안티가 나타난다면 이것은 우리의 슬픔입니다. 먼저 믿는 우리들이 할 일은 진리를 이해할 수 없어도 교회의 삶을 보니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소리를 듣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초대 교회를 본받아 영화관 같은 교회가 아니라 지체의식을 지닌 가족과 같은 교회, 천국을 보장하는 보험회사와 같은 교회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며 삶이 변화되는 교회, 어려운 이웃을 도울 뿐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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