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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38장 1-13절/ 7월 4일 맥추절 주일 설교
조영식 2010-07-05 추천 0 댓글 0 조회 784

2010년 7월 4일 맥추절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설교 말씀 : 예레미야 38장 1-13절


1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 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4 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5 시드기야 왕이 이르되 보라 그가 너희 손 안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를 수 없느니라 하는지라/ 6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 7 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 들으니라 그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8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아뢰어 이르되/ 9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하니/ 10 왕이 구스 사람 에벳멜렉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11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헝겊과 낡은 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밧줄로 내리며/ 12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에 대시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13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맥추절입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로서 하나님 앞에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였습니다. 시대는 변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처음 열매를 드리듯이 처음 마음을 드리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맥추절은 7월 첫 주에 지키고 있습니다. 상반기를 결산하고 하반기를 새롭게 출발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나머지 기간 동안도 주님의 선한 인도하심이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상반기를 결산하여 보면은 월드컵 열기가 단연 최고였습니다. 월드컵의 함성 속에서 사회적으로 묻힌 심각한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너무나 급증하고 있는 미성년자 성폭행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연예인들의 자살이었습니다.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사람들의 심리는 공통적으로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양심이라는 자아가 발달하지 못하여서 전혀 죄책감이 없습니다. 반사회적인 인격 장애는 혼란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생겨납니다. 부모가 사랑을 주더라도 일관성이 없고 변덕스러운 경우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습관적인 거짓말 통해서 자리 잡는다고 합니다.


또한 지난주 연예인 박용하 자살의 원인은 인기를 등에 업고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다가 실패함으로 생긴 스트레스였다고 합니다. 연예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하여 1인 기획사를 세웁니다. 그리고 1인 기획사를 운영하다가 경험 부족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상반기에 사회적으로 가장 어둡게 만들었던 미성년자 성폭력과 연예인 자살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의 단절이라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단절의 결과는 결국 사람을 파괴합니다. 내적으로 자살을 통해서 자신을 파괴하던지, 외적으로 성폭행을 통해서 타인을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만큼 하나님을 실망시킨 죄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유대 사람이 아닌 이방 사람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유대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상태입니다. 당시 세계의 최대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에 의하여 유다가 멸망직전에 있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는 다급한 마음으로 예레미야에게 기도 요청을 합니다. 시드기야 왕의 기도 요청을 듣고 예례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유다 백성들에게 전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죄악 가운데 있는 유다 백성들은 갈대아 사람인 바벨론에게 멸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3절). 말씀을 들은 유대 고관들은 왕에게 요청하여 평안을 선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선포한 예례미야를 죽이라고 합니다(4절). 시드기야왕은 고관들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예례미야를 죽이기 위하여 감옥 뜰에 있는 진흙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6절). 시드기야 왕과 유다 백성들을 보면서 자신들 안에 있는 죄를 보지 못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을 보지 못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주님이 받지 않는 가증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처럼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는 영혼은 하나님과 단절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흙 구덩이에 던져진 예례미야를 구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을 사용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7절). 에벳멜렉은 유대인이 아닌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출신의 이방인으로 멸시를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에벳멜렉이 구덩이에 빠진 예레미야를 건질 때 사용된 물건이 “헝겊과 낡은 옷” 이라고 합니다(12절). 구원의 도구로 사용되는 “헝겊과 낡은 옷”이 바로 검은 피부의 구스인 에벳멜렉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헝겊과 낡은 옷”처럼 쓸모없는 존재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사용되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귀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떠한 모습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설사 단점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주님 앞에 붙들려 사용 되면은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다 주님의 손에 붙들려 생명을 살리는 귀한 구원의 도구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 자신의 생명이 귀히 여김을 받는다.

하나님은 피부색은 검지만 에벳멜렉의 중심을 보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에벳멜렉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그의 중심에는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9절). 예례미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시드기야 왕에게 담대히 구하고 있습니다.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서 주려 죽으리이다”고 합니다(9절). 예례미야를 향하여 모두가 죽어 마땅하다며 지하 구덩이에 던져진 선지자 예례미야 편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에벳멜렉이 예례미야 편을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편을 들었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유대 고관들의 요청을 허락하여 ‘매국노’ 예례미야의 처형을 왕이 직접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에벳멜렉이 그 소위가 ‘악하니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붙들림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왕이 기분이라도 상하면, 만일 고관들이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한다면 분명 구스인 에벳멜렉 자신도 죽음의 지하 구덩이에 같이 던져질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례미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생명을 건 구스인 에벳멜렉의 요청이 시드기야 왕에게 받아들여져 구덩이에 밧줄을 던져 살릴 수 있었습니다(13절).


이처럼 예례미야의 생명을 귀히 여겼던 에벳멜렉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멸망당함으로 모두가 죽거나 포로로 잡혀갈 때 예례미야와 함께 생명도 건짐을 받고 자유를 얻습니다. 하나님이 예례미야를 통해서 에벳멜렉에게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고 합니다(39:18). 에벳멜렛의 생명이 보존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예례미야의 생명을 살려주었던 에벳멜렛과 연결하여 보면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에벳멜렉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길 때 주님이 우리의 생명도 귀히 여겨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3.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는 충성되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고난과 핍박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구원의 밧줄을 통하여 피할 길을 주시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례미야에게는 유대인들이 가장 멸시하는 검은 피부의 구스인 에벳멜렉을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지만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칠배나 뜨거운 불구덩이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불구덩이에 천사를 보내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직접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구덩이에서 건져주신 사건은 동일한데 천사를 통하여 건져주신 기적의 사건에 대해서는 대단한 일로 기억하지만 사람을 통해서 건져주신 사건은 동등 된 기적의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천사를 통하여 건져주는 기적도 대단하지만 검은 피부의 이방사람을 통하여 건져 주시는 것도 더 위대한 기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는 희망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기적을 베풀기도 하지만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서 “헝겊과 낡은 옷” 을 보면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였을 때 제 자신이 걸레 같은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없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걸레처럼 쓸모없는 존재를 붙들어서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도구로 사용해 주심을 감사해서 지금도 가슴이 울컥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 예례미야처럼 구덩이에 빠져있는 고난가운데 있는 삶이 있다면 주님은 에벳멜렉같은 사람을 보내어서 반드시 건져 주실 것입니다. 또한 내가 연약하여 쓸모없는 존재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서 구덩이에 빠진 인생들을 구원하여 주는 생명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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