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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해 심는 믿음/ 사무엘 상 26장 1-12절/ 8월 29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0-08-30 추천 0 댓글 0 조회 931

2010년 8월 29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미래를 위해 심는 믿음

말 씀 : 사무엘 상 26장 1-12절


1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2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3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4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5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6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12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0. 들어가는 글

지난주 필리핀에서 12년 동안 열심히 선교를 하던 조태환 선교사님이 괴환들의 총에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조선교사님은 필리핀 어린이들과 빈민들의 친구로서 다음 주에 완성되는 사랑의 집짓기 9채를 미쳐 보지 못하고 순교하였습니다. 저와 년 배가 비슷해서 그런지 선교사님의 죽음이 더욱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남겨진 사모님과 어린 두 딸이 아버지 없이 살아야 하는 세상을 생각해보니 가슴이 더 무거웠습니다. 순교한 조선교사님의 삶의 흔적을 찾아보니 “외유내강형의 조 선교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일을 성실히 감당한 충성된 종이었다.” 고 합니다. 또한 20년 동안 우정을 쌓아온 동기 목사님은 “조 선교사는 결코 무리하게 선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었고 그들을 위해 살았을 뿐입니다. 그는 즐겁게 봉사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을 보면서 저도 이렇게 목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감동이 크게 밀려왔습니다. 어린이들과 빈민들을 위해 주님의 마음으로 헌신한 조 선교사의 값진 순교의 피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 선교사님처럼 어린이들이나 빈민들을 향하여 주님의 사랑을 심는 사역은 당장 눈앞에 열매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먼 미래를 바라보며 주님의 사랑을 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열매를 기대하지 아니하고 먼 미래의 열매를 위하여 믿음의 씨앗을 심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눈앞에 나타나는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의 풍성한 열매를 위하여 믿음의 씨앗을 심는 영적 원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말씀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26장 말씀은 사울이 또 다시 다윗을 추적하는 장면입니다. 사울은 이미 24장에서 다윗이 엔게디 요새에 숨었을 때에 추적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추적해온 사울을 동굴 안에서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살려서 놓아 주었습니다. 그런 사울이 은혜도 모르고 또 다시 삼천명을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추격해 온 것입니다(2절). 다시 사울이 다윗을 추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십 사람들이 정보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입니다(1절). 십 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유다 지파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숨겨줄 것이라고 생각한 유다 지파의 십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샘입니다. 십 사람들은 희생을 각오 하고 의인 편에 서기보다는 자신들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권력을 붙잡고 있는 실세 편에 서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울은 이번이야말로 눈에 가시 같은 다윗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갑니다. 첫 번째 추격하였던 엔게디 동굴처럼 다윗이 또 다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8절).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한 번 살려준 것도 대단한 호의를 베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모르고 다시 죽이려고 찾아온 사울을 죽일 수 있음에도 다시 살려 보낸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번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용서하고 살려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다시 죽이려고 찾아온 사람을 또 다시 용서하며 살려 보낸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넘어선 것입니다.


다윗이 지금 누구 때문에 도피 생활을 하고 있으며 생사의 고비를 넘는 고난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 대상인 사울만 죽이면은 고난이 끝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를 두 번씩이나 살펴주면서 다윗은 더 힘든 고난의 길을 계속 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힘든 고난의 삶을 이어가면서도 다윗의 지키고 심었던 것이 무엇이냐? 는 것입니다. 다윗은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아니 그 이상 동일한 일을 만나더라도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다윗의 중심된 원칙이 9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가 10절에 나옵니다. 사울의 심판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변할 수 없는 중요한 말씀의 원칙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위기와 고난 속에서도 말씀의 원칙을 끝가지 지키는 다윗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자신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서 달라지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말씀의 원칙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주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구별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더 깊은 묵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사울과 그 일행을 모두 깊이 잠들게 하였다는 것입니다(7절).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하나님의 원수를 제거할 수 있도록 다시한번 기회를 주신 것으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최고의 응답으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쫓는 자들이 잠들어 있는 상황을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기회이자 응답으로 덥석 물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다윗은 지금의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윗과 우리들의 모습을 비교해보면은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신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들의 뜻일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신학교에 다닐 때부터 기성 교회에 가서 목회하는 것보다 개척하여 건강한 교회를 세우겠다는 비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해주셔서 김포에 교회를 개척하고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김포에서 교회를 개척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제 가족들을 많이 힘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며 개척을 시작하려다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 생각을 하나님의 듯인 냥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조급함이었습니다. 조급해서 서두르다 보면은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인 냥 착각하는 것입니다.


적군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상황은 분명 다윗이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급하게 서두르다 보면은 오히려 큰 시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시험이 될 수 있다고 파악할 수 있는 영적인 통찰력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영적 통찰력이 가능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때를 조급하게 서둘러서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고난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이 때를 주실 때까지 준비하며 기다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혼동하지 않았습니다.


3. 지금 당장 효과가 없을지라도 미래를 위해 믿음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다윗이 지금 당장 사울을 살려주더라도 어떤 혜택이 돌아오는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도피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조금도 망설임없이 사울을 살려서 보냈습니다. 좀 더 깊이 묵상을 해보면은 다윗은 당장 효과가 없었을지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믿음의 씨앗을 심은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더라도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일먼저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사울을 정당방위로 죽였기 때문에 법으로는 자유로울 수 있지만 기름부어 세운 종을 죽였다는 양심까지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가장 소중한 우정을 나누었던 요나단의 아버지의 죽였다는 양심의 가책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당장 효과가 없더라도 양심만큼은 자유로웠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의 대결이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사이가 어떤 사이입니까? 형제보다도 더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입니다. 친구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로서 다윗과 요나단은 대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다윗에게 가장 큰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다윗이 요나단과의 우정 때문에라도 그의 아버지를 살려준 이유가 있다고 생각입니다. 자신의 복수보다도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는 다윗의 마음이 더 귀한 가치를 붙잡는 마음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민심의 절반은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였다면 둘의 차별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두 번식이나 살려줌으로 구별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구별된 점이 표적으로 나타나야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 TV와 영화 속에서 잔인한 복수에 관련된 내용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열광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대의 흐름에 편승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세상과 구별된 말씀의 법칙을 보여줄 수 있어야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울을 두 번씩이나 살려준 것이 당장은 효과가 없이 계속 고난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윗은 미래를 위해 더 소중한 믿음의 씨앗을 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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