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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의 파워/ 히브리서 10장 19-25절/ 10월 10일 주일설교
조영식 2010-10-11 추천 0 댓글 0 조회 964

2010년 10월 10일 주일설교

설교 제목 : 격려의 파워

설교 본문 : 히브리서 10장 19-25절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0. 들어가는 글

몇 년 전 널리 회자되던 이야기입니다. 태어난지 며칠 안 된 쌍둥이 중 한 아이가 심장에 큰 결함을 안고 태어났는데, 의사들은 하나같이 그 아이가 곧 죽게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며칠 동안 그 아이는 병세가 계속 악화되어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때 한 간호사가 쌍둥이를 하나의 인큐베이터에 함께 넣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것은 병원 방침에 어긋나는 일이었기에 담당의사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엄마 자궁에서처럼 두 아이를 한 인큐베이터 안에 나란히 눕히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건강한 아이가 팔을 뻗어 아픈 동생을 감싸 안았던 것입니다. 이 쌍둥이의 사진에 ‘생명을 구하는 포옹’이라는 제목이 붙여졌습니다.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동생의 심장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체온이 제자리로 돌아왔고, 동생은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그때로부터 십 여 년이 흐른 지금, 두 아이는 간호사와 수의사를 꿈꾸는 소녀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포옹해주며 격려하는 곳에는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지치고 힘든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 합니까? 그것은 바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사랑과 선행을 통하여 격려하는 힘이 무엇인지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오늘 말씀의 배경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통하여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결국에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믿음을 버릴 정도로 크게 유혹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의 흥미로운 점은 세상 유혹으로 흔들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을 회복하라고 경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근본 진리로 돌아가 첫째는 “예수님은 누구신가?”, 둘째는 “예수님은 무엇을 행하셨는가?”를 전달함으로 예수님이야말로 최고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핍박과 유혹으로 흔들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새로운 살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말고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핍박과 유혹으로 흔들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힘쓰라고 합니다(24절). 히브리서를 기록할 때는 무엇보다도 서로 돌아보는 격려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히브리서를 기록할 때처럼 지금도 서로 돌아보는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칭찬과 격려에 대하여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칭찬은 무언가 잘했거나 성공하였을 때 주어지는 것이라면, 격려는 무언가 실패하거나 넘어졌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칭찬은 상대방이 이룬 일에 대한 보상을 심어주는 것이라면, 격려는 쓰러진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에 칭찬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누가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격려를 해줄 수 있습니까? 상대방의 약점을 내 약점으로, 상대방의 부족함을 내 부족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격려해 줄 있습니다. 상대방을 약점을 알고 수용할 때 사랑하는 관계가 오래갈 수 있습니다. 40대 싱글녀가 결혼문제로 교회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눈치 채고 재혼남이지 말하자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말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또다시 애가 달린 재혼남이지 말하자 자녀가 두 명이나 있다고 대답합니다. 목사님은 자녀가 있는 재혼남하고 결혼하면 “어떤 문제가 있겠느냐?” 대해 물어봅니다. 싱글녀는 자녀나 시댁등과 여려운 관계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비교를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결혼을 허락해주었습니다. 싱글녀는 목사님 앞에서 흐느꼈습니다. 결혼을 찬성하는 분은 목사님이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싱글녀는 결혼한지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는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받아들이고 결혼했기에 그것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인 저도 약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감기 걸린 성도 보면 “빨리 약 먹으라”고 합니다. 얼마나 능력이 없는 목사처럼 보입니까? 말이라도 “주님께 기도하면 낫습니다” 라고 말해야 되는데... 그러나 능력도 없고 약점 투성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는 어떤 능력보다도 주님을 닮아가는 신앙이 가장 귀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신교회가 부족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건물구조가 이상한 교회입니다. 교회 진입로도 찾기 힘들지만 본당 출입구도 찾기 힘이 듭니다. 교회 들어오는 것이 미로 찾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족한 점을 알고도 다니면은 그것을 덮을 수 있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오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미움이 있기에 사랑이 소중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키울 때 미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의 미움까지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이 있기에 끝가지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12살 때 그분의 부모가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지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주님이 없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3일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았습니다. 부모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한 말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마리아는 마음속에 간직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자리까지 함께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부사이에도 사랑만 있습니까? 미움도 있습니다. 저는 시간 노이로제가 있나봅니다. 아내가 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미워죽겠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지나면 다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서 아내 없이는 혼자 못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미움을 이기고 살아가는 부부가 건강한 부부입니다.


의심이 있기에 믿음이 귀한 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으면서도 의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의심이 있으면서도 하나님 붙잡고 있는 것이 대단한 믿음인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믿음이 세상에 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의심이 전혀 없는 믿음이 대단한 믿음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작은 시험에도 쉽게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소희생의 원리입니다. 의심이 8이라면 그것을 이길 수 있는 9라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심이 1이라면 그것을 이길 수 있는 2라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시험과 유혹이 3만 닥쳐도 의심이 1인 믿음은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의심이 8인 믿음은 여유 있게 이겨내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진심으로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미움이나 의심이나 약점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격려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2. 고립된 신앙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자신의 약점이 많을수록 그 약점을 감추기 위하여 고립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모이는 것들에 대하여 필요 없다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예을 들면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소문이 난다” 등등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논리보다도 마음의 상처로 인한 감정의 문제가 더 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25절에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고립된 신앙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함께 모여 있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혼자 떨어져 나간 양은 맹수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모이는 모임은 서로를 돌아보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24절의 “서로 돌아보아”가 새번역에는 “서로 마음을 써서”로 나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지금보다 훨씬 힘들게 살았어도 일이 끝나고 저녁을 먹은 다음 동네 사랑방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며 서로 마음을 써주었기에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아갔습니다.


지난주에 들었던 어떤 불행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남으로 태어나 경기중과 경기고를 나온 이후에 서울대 물리학과를 다닐 때가지는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졸업 이후에 결혼을 했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부부싸움이 잦아지면서 이혼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모든 사람을 기피하면서 연락까지 두절하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싸우나에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지문검식으로 가족에게 연락되었습니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옮긴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날이 바로 자신의 아들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이처럼 최고를 달리다가 쓰러지면은 다시 일어서지를 못합니다. 서로 돌아볼 줄 아는 삶을 살지 아니하고 고립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입니까? 최고가 되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 아니라 서로 돌아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인 것입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의 주인공 안요한 목사를 존경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수술을 하면은 시력을 회복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술한 돈이 있다면 시작 장애인을 위해 내놓게 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시력을 찾으면 시각 장애인과 아픔을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목사님은 시력을 회복하는 것만이 응답이 아니라 시각 장애인과 서로 돌아보며 살아가는 것이 더 소중한 응답이라고 여겼습니다. 사탄을 우리를 고립시키고자 합니다. 우리는 고립된 신앙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돌아보며 마음을 써주며 정이 있게 살아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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