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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를 메는 믿음/ 여호수아 3장 14-17절/ 10월 17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0-10-18 추천 0 댓글 0 조회 1035

2010년 10월 17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언약궤를 메는 믿음

설교 본문 : 여호수아 3장 14-17절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0. 들어가는 글

지난주 전 세계를 감동시켰던 각본 없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칠레 매몰 광부의 구조사건이었습니다. 지하 700m의 캄캄한 갱도 안에 33인이 69일간의 사투 끝에 전원구조를 받았습니다. 사랑과 용기, 희망과 연대감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전세계에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였습니다. 그러나 69일간 동안에 분명히 두 개의 다른 모습이 있었습니다. 구조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처음의 17일간과 구조를 통하여 살 수 있다는 그 이후의 52일간의 삶은 전혀 달랐습니다. 구조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처음의 17일간은 아사의 공포와 함께 갈등과 분열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매몰 초기 세 그룹으로 나뉘어 파벌싸움까지 벌였습니다, 그리고 특히 일부 동료들은 살기 위해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을 농담으로 거론하기까지도 했습니다. 그러나 17일 이후 지상과 연결이 되고 구조의 가능성이 열리자 지하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비밀로 하자는 혈맹의 서약을 하면서 단결을 모색한 뒤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이번 칠레 매몰 광부 구조 사건을 보면은 인간이 절망과 소망사이에서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절망의 상태에서는 공포 속에서 자신밖에 모르지만 소망의 상태에서는 고통을 서로 짊어지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에 제사장들이 법궤를 짊어지고 요단강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려고 하는 때는 우기 때로서 강물이 범람하여 도저히 걸어서 건널 수 없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담그자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 성벽을 이룸으로 마른 땅을 걸어서 건널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메었던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삶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언약궤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며, 말씀과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대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말씀을 대하고 있는지 돌아 볼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언약궤를 잘못 대하는 사람들의 자태

하나님이 주신 언약궤는 성막안의 지성소에 보관되었습니다. 성막은 고정되어 있는 성전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행군을 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성막을 이동할 때 모든 기구들은 소가 이끄는 수레를 통하여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언약궤에 관련된 것만은 어깨에 메고 이동을 하였습니다. 민수기 4장 15절을 보면은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고 합니다. 언약궤를 반드시 메어서 움직여야 하며 절대로 만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제 언약궤를 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다양한 태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일먼저 언약궤를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엘리가 대제사장으로 있던 시절에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불리하자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던 자들이었습니다(삼상2:17).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지만 언약궤를 이용하여 전쟁에 승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목숨을 잃어버리고 언약궤는 빼앗겼습니다(삼상4:11). 우리는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없이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면 하나님을 이용하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목회에 성공하려는 마음이 더 크면 하나님을 이용하는 목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욕망이 앞서다가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이용하는 신앙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언약궤를 구경하는 사람들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이용하려다 빼앗겼습니다. 블레셋은 언약궤를 자신들이 우상으로 섬기는 다곤 신당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과 함께할 수 없어서 다곤 신상을 넘어뜨려 목이 부러지게 하였습니다. 이런 일과 재앙이 반복되다 보니 블레셋은 언약궤를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언약궤가 이스라엘 땅에 돌아오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고 합니다(삼상6:19). 벧세메스 사람들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언약궤를 구경하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예배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흥미위주입니다. 예배가 흥미를 끌면 좋은 예배이고, 흥미를 끌지 못하면 지루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경하는 신앙은 전혀 삶에 대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가 흥미위주인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다 보니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쇼 중심으로 흐르기도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애통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언약궤에 무관심한 사람들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구경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자 언약궤를 기럇여아림 지역의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 놓았습니다(삼상7:1). 그리고 법궤가 20년 동안 무관심속에서 방치되었습니다(삼상7:2). 언약궤를 20년 동안 무관심하게 방치한 사람이 바로 사울 왕이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왕으로 있는 동안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언약궤에 대하여 완전히 무관심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에 무관심한 사울왕은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실패한 이유도 말씀과 함께하지 못함으로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에 가장 위험한 신앙은 말씀에 무관심한 신앙입니다. 사울 왕처럼 말씀에 무관심한 신앙은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서 하나님의 뜻과 멀어집니다.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이 봉사는 하는데 말씀에 대해 무관심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다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게 됩니다. 말씀을 메고 봉사를 할 때 진정한 섬김에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언약궤를 만지는 사람들입니다.
사울 왕이 전쟁터에서 죽고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제일먼저 언약궤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기고자 하였습니다. 언약궤를 메고 옮겨야 하는데 수레를 통하여 옮기다 보니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언약궤를 붙들었습니다(삼하6:6). 그리고 하나님이 진노함으로 웃사가 죽었습니다(삼하6:7). 우리는 웃사처럼 하나님 것을 만지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의역을 하면은 하나님 것을 만짐으로 자신의 것처럼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신앙은 하나님의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신앙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실패한 이유는 하나님의 것을 먹었습니다. 선악과는 하나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였습니다. 신앙의 성숙에 대한 잣대는 무엇입니까? 어린아이 신앙일수록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할수록 자신의 것보다 하나님의 것이 많아집니다.


2. 언약궤를 짊어짐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들

다윗은 웃사가 죽는 바람에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바로 옮기지 아니하고 오벧에돔의 집에 맡겼습니다. 여기서도 다윗의 성숙한 신앙을 보게 됩니다. 왕의 권세로 얼마든지 밀어붙일 수 있는데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면 멈출 줄 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과 방법이 아니면 멈출 줄 아는 신앙도 아주 귀한 순종의 신앙인 것입니다. 오벧에돔의 집에 언약궤가 머무는 동안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삼하6:12절). 그것은 바로 오벧에돔이 언약궤와 함께있는 동안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언약궤와 함께함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았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첫 번째 관심은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모셔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가정 우선이었고,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중심에 모시겠다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한 사람이 되었고,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내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흥미위주의 구경하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말씀에 무관심하여 자신의 생각대로 살거나, 하나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여겨서도 안 됩니다. 우리들의 삶속에 제사장들처럼 언약궤를 메는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메고 살아가는 믿음 속에 요단강이 갈라지고 길이 열리듯이 우리들의 삶속에 동일한 역사가 일어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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