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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이 기도하는 집/ 마가복음 11장 15-18절/ 10월 31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0-10-31 추천 0 댓글 0 조회 670

2010년 10월 31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만민이 기도하는 집

설교 본문 : 마가복음 11장 15-18절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정문에 95개 조항을 공표함으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된 날입니다. 루터가 극도의 타락상을 보인 중세가톨릭세계에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를 선포하며 개혁을 시작한지 493년이 지났습니다. 만약 루터가 지금의 한국교회를 바라본다면 “어떤 마음을 가질까요?” 지금 한국교회는 물질과 도덕적 타락, 기복신앙과 교단의 분열이 심각하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수준을 보여준 사건이 지난주에 있었습니다. 일부 찬양인도자학교 청년들이 봉은사 대웅전에 들어가 기도와 찬양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더욱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저는 봉은사 찬양 논란에 대해서 무조건 찬양인도자학교 청년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교회 지도자들에게 더 큰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방나라의 우상숭배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신정국가인 이스라엘 안의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로 재해석을 하면은 불신자들의 우상숭배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종교의 우상숭배가 옳은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상을 파괴한다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반감만 더 커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들이 거룩한 삶으로 그들에게 본이 될 때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이 성전을 개혁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개혁이 무엇인지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누가 교회의 주인입니까?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성전을 개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종교 의식에는 열심인데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절기 때가 되면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전을 찾아와 희생 제사를 드립니다. 멀리서 성전을 찾아온 사람들은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짐승을 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전 제사를 무시하는 것처럼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신 이유는 성전에서 짐승을 잡아 바치는 종교 의식은 있는데 정작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배를 드리는 종교 의식은 있는데 마음속에 진심으로 주님을 모시지 못한다면 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종교의식은 화려했지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지 못한 중세교회를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카톨릭은 중세천년을 흥왕기라고 부릅니다. 중세기에 교회는 웅장하며 화려하게 지어졌고, 교황의 권세는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대단한 교회음악과 그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중세교회가 어느 시대보다도 화려했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중세교회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잘 지은 교회건물과 프로그램을 자랑하고, 대규모 집회와 웅장한 교회음악이 있는데 과연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비록 솔로몬 성전처럼 웅장하고 화려하여도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결코 성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화려한 중세교회 속에서 루터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할수록 교회현실과 너무나 큰 간격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루터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현실이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며 교회현실에 적당히 안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루터는 아무리 교회현실이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고난을 감수하면서 “오직 말씀으로”라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저도 루터만큼은 아니지만 “교회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안주하는 교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오직 말씀으로’ 교회를 바로 세울 것인가?” 사이에서 무척 고민하고 있습니다. 쉽게 결론은 내릴 수 없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교회에서 어떤 종교 의식을 하더라도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가 무슨 피로 죄 사함을 받습니까?

또 다른 의미에서 “왜 예수님은 성전에서 짐승들을 내 쫓으셨을까요?” 구약에서는 정결한 짐승들의 피 흘림으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짐승들의 피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림자였습니다. 이제는 친히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피로만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 받는 것은 세상의 어떠한 값으로도 계산할 수가 없기에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받은 죄사함에 값이 매겨진다면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성전에서 죄사함이 짐승 값으로 흥정되고 있었습니다. 중세에도 죄사함이 값으로 계산되었습니다. 루터의 <95개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항목은 이른바 면죄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중세교회에서 돈을 받고 죄를 면해 주는 교묘한 수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면죄부를 판매하여 교회의 부를 축적하고, 성전을 건축하는데 가장 편리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거대한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는데 엄청난 돈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면죄부를 파는 일은 더욱 심해졌던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이 면죄부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에서 직분을 받기 위해서 감사함으로 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요구하는 금액을 바쳐야 합니다. 그리고 직분에 따라서 요구하는 금액도 차이가 납니다. 교회를 건축하면서도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처럼 헌금의 액수에 따라서 교회 벽돌에 이름까지 새겨가면서 건축비용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루터는 중세교회의 타락한 현실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루터는 감히 누구도 도전할 수 없었던 교황과 교회의 막강한 권력에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치러야 할 희생의 대가는 막대한 것으로서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각오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루터가 조금도 흔들림 없이 개혁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믿음으로” 이었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도 믿음보다 더 앞서는 것이 있다면 겸손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를 다시 한 번 세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3. 교회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중세교회가 타락한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존재 목적을 바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개혁하시면서 교회의 존재 목적을 바르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에 대하여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합니다(17절). 우리는 여기서 중세교회가 “기도를 소홀히 했느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결코 아닙니다. 중세교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NIV 성경으로 보면 “a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라고 나옵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은 “모든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입니다. 중세교회는 기도를 많이 했지만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해결과 소원 성취만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세 교회는 기복적인 신앙으로 흘러서 부패하고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존재의 목적은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을 위해서만 기도하고, 사용한다면 주님의 경고처럼 강도의 소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17절). 2002년 화창한 봄날에 우리교회는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2002년 월드컵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그런지 여름이 무척 더웠지만 교회 에어컨을 설치할 비용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여름 국내선교 후원 2곳, 해외선교 후원 1곳을 시작하였습니다. 자립도 안 된 교회가 개척 2개월 만에 구제하고 선교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개척 당시 정말 어렵고 힘든 시기였지만 시작하면서부터 교회존재 목적을 바로 세우는 것이 주님께 순종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교회존재의 목적에 따라 순종해서 그런지 지금은 주님께서 구제와 선교의 지경을 놀랍게 넓혀 주셨습니다.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한신교회 비전을 선포합니다. 교회의 존재의 목적에 따라서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며 구제하며 선교하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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