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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따르는 삶/ 누가복음 9장 23-27절/ 11월 14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0-11-14 추천 0 댓글 0 조회 555

2010년 11월 14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주님을 따르는 삶

설교 본문 : 누가복음 9장 23-27절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0. 들어가는 글

지난주 G20이 한국에서 열렸습니다. 과거에는 군사력을 앞세운 제국이 세계를 통치했지만 이제는 자본력을 앞세운 G20과 같은 경제대국이 세계질서를 이끌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대회의 목적은 금융위기의 국제적 확산을 차단하는 데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어떤 관점으로 G20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세계 경영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공평한 저울과 눈금으로 모든 것을 계수하시는 경제 구조의 거룩에 있습니다. 이번 G20에서 무엇보다도 자국의 이익을 위한 신경전이 대단하였다고 합니다.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다 보면 어떤 조율도 만들어내기가 힘이 듭니다.


각자의 이익 때문에 조금씩 양보하기도 힘든데 오늘 말씀처럼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청년 때 한국으로 돌아와서 성경공부를 하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자기 부인”을 말하자 “목사님 와이프”로 이해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현재의 세상은 “자기 부인”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어떻게 자신을 띄울까?”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자신을 띄우기 위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자기를 부인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고 행할 수 있는 믿음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자기를 부인하는 영혼은 진심으로 회개하는 영혼입니다.

주님의 따르는 삶에서 첫 번째 조건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적인 체험은 회개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회개를 통하여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회개를 통하여 진정한 자기 부인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부인을 이룬 회개에 대하여 탕자의 비유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죽기도 전에 상속받아서 허랑방탕하게 다 허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돼지들이나 먹는 쥐엄 열매를 먹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탕자는 회개를 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에게 고백하는 것은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였습니다(눅15:21). 탕자는 회개하고 돌아와서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수 없다며 자신을 부인하였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회개는 자기를 부인함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첫째 아들은 집을 떠나지 아니하고 집안에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부인을 하지 못하고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의를 들어냄으로 실패한 영혼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자기 부인이 되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저에게 지난주 제 가슴을 터치하는 오래된 복음성가의 가사가 있었습니다. “지금껏 내가 한일이 주를 위한 일이었는지 지나간 세월 돌이켜 주님 앞에 아룁니다. 이한 몸 주를 위하여 목숨 버린다 했으나 주의 영광 뒤로하고 나의 자랑 앞세웠으니 내가 가는 이 길이 주를 위한 것보다 예수 이름을 파는 가롯 유다와 같습니다.” 제가 가는 목회의 길이 내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면 “주를 위한 것보다 예수 이름을 파는 가롯 유다” 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우리들의 회개가 참된 회개인지 값싼 회개인지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통하여 결정 되는 것입니다.


2.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은 왕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진심의 회개하여 자신을 부인하는 영혼은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왕이 되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존재인지를 알 수 있습니까?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서 말씀을 듣고 있으며, 은혜로운 찬양이 있는 곳에서 찬양을 함께 부르고 있으며, 뜨거운 기도 소리 있는 곳에 함께 기도하며 있을 때에 자신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찬양 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 홀로 내버려져 연약함 가운데 있을 때에 믿음을 모두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신앙적인 환경이 없는 곳에서는 주님과 무관한 삶을 산다면 신앙 환경이 좋은 곳에서 했던 열심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분위기를 사랑한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가끔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이사를 갔던 집사님들에게 연락이 옵니다. 저는 무엇보다 영적인 상태를 물어봅니다. 집사님의 대답은 이사 가서 믿음이 너무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한신교회가 그립다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은 한신교회 있을 때 참으로 찬양도 뜨겁게 부르고 기도를 열심히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 가서 가정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교회를 자주 빠지게 되는 상황이 여러번 반복되자 마치 믿음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경우가 주님을 사랑한 믿음이 아니라 신앙적인 환경을 좋아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비하여 교회안의 신앙적인 환경이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그러나 좋아진 신앙적인 환경이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과 연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신앙적인 환경이 열악했던 예전보다도 자기를 부인하는 예수님의 향기가 더 나지 않고 있습니다. 좋은 교회 환경을 찾아다니는 교인은 많지만 자기를 부인하며 왕이 되신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교인은 줄어들고 있어서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3.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신앙은 자신을 부인한 신앙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신앙의 증상은 자기 드러냄으로 나타납니다. 자기를 부인한 사람이 자기를 들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주 글을 읽으면서 특별히 만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겸손한 모습에 너무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해방 후 한 번은 서울 남대문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게시판에 “세계 성자 손양원 목사님”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는 그것을 보자마자 그 포스터를 떼지 않으면 설교를 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것을 떼어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 목사님들이 앞에다 자신을 띄우는 온갖 수식어를 가져다 붙이면서 얼마나 자신을 높이고 있습니까! 한국목사님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세계 최대’ 라는 수식어라고 합니다.


손양원 목사는 능력있는 목회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자기를 나타내는 것을 극히 싫어했습니다. 한 번은 부산 초량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빽빽이 들어선 성도들이 뜨겁게 찬송을 부르고 있는데 모퉁이에서 누군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목사님! 목사님이 내 눈에 보여요. 내가, 내가 눈을 떴어요.”라고 외쳤습니다. 찬송 부르다가 소경이 눈을 든 것입니다. 모인 교우들이 눈든 소경을 쳐다보며 감탄과 찬양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 손양원 목사가 소란을 잠재우면서 “여러 성도님들, 조용히 하십시요. 다들 앉으십시오. 저 사람이 눈 뜬 것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 사람은 자기의 믿음으로 눈을 뜬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런 일이 어떤 목사님에게 일어난다면 자신이 소경을 고친 능력의 종이라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알리려고 할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진심으로 자신을 부인하였기에 자신을 들어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자신을 들어내는 신앙은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신앙과 연결이 됩니다. 교회들이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만족을 추구하고 있기에 교회 재정의 90% 이상이 자신의 교회들을 위해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1%만이 자신들과 상관없는 지역의 영혼들의 선교를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신앙으로 흐르다 보면 반드시 우상 숭배로 변질되었습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신앙으로 흐르다 보면 반드시 기복적인 신앙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한국교회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기복신앙에 젖어 있는 것입니다. 제 자신이 이번에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도 못 행하는 것을 남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게 말 것”을 설교노트에 기록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말씀을 행하지 못하면서 성도님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말하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제 자신을 가책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여기에 모인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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