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1일 추수 감사 주일
설교 제목 : 삭개오의 감사
설교 복음 : 누가복음 19장 1-10절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청년시절에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책 중의 하나는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였습니다. 한반도의 오천년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역사가운데 우리 민족을 지켜온 힘은 씨알들인 백성들의 힘이었습니다. 세계 이백여개가 넘은 나라가운데 가장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합니다. 러시아, 중국, 일본에 둘려 쌓여 있고 그리고 미국은 우리나라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강대국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땅과 나라를 지키며, 자신들의 말을 쓰는 나라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민족의 저력은 정치 지도자들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 씨알들인 백성들의 힘을 통하여 나왔습니다.
올림픽과 월드컵 그리고 세계 육상 선수권을 유치한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여섯 나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위에 6.25의 전쟁의 아픔을 딛고 G20 의장국이 되어서 각국의 정상들을 불러들인 대단한 민족입니다. 이것도 북한은 남겨두고 절반인 남한만 가지고 해냈으니 얼마나 저력이 있는 민족입니까! 그래서 그런지 세계에서 일본을 가장 우습게 보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고 합니다. 왜국사람들이 놀래서 “한국 사람들은 무얼 믿고 일본을 우습게 보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OECD 국가 중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나라를 가장 비관적으로 보는 국민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민족이 지정학적 위치 속에 고난의 깊은 상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고난을 딛고 이 만큼의 국력을 가질 수 있었던 힘은 우리 씨알들인 백성들의 저력이었지만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국민들이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하나님께 가장 많은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삭개오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무엇인지 깨닫고 참된 감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예수님이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줌
오늘 말씀에서 삭개오를 만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사야 9장 6절에서는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라고 소개를 합니다. 새번역 성경을 보니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라고 조금은 쉽게 다가옵니다. 이 부분을 NIV 성경에서 보니 “he wi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or”라고 의미가 분명해 집니다.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은 놀라운 상담가였습니다. 예수님의 상담에 진면목을 삭개오와의 만남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상처가 많은 인생이었습니다. 자신의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돈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삭개오는 더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 속에서 심한 왕따 인생이 되어갔습니다. 요사이 학교에 자녀를 보낸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자신의 자녀가 왕따 당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왕따를 당한 자녀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심지어는 왕따를 견디지 못한 자녀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왕따를 당하며 외롭게 살아가는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신이 살고 있는 여리고를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만나보고 싶었습니다(3절). 그러나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아서 삭개오가 선택한 방법은 돌무화과 나무 위에 올라가서 보는 것이었습니다(4절). 돌무화과 나무위에는 당시에 가장 천대와 멸시를 받던 목자들이 돌무화과를 먹을 수 있도록 배양하기 위해서 올라갔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장 천한 목자로 낮추면서까지 예수님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 절박한 심정에 있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다는 것은 놀라운 치유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준 사건이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와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부분입니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무의미한 존재였지만 이름을 불러줌으로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무의미한 존재였지만 이름을 불러줌으로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무의미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심으로 가장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감사해야 할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2.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치유받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었습니다. 삭개오의 변화된 마음이 오늘 6절 말씀에서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삭개오가 즐거운 마음으로 변화된 이유는 예수님이 삭개오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삭개오의 이름을 부른 이후에 예수님은 “속히 내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5절). 왕따로 배척당한 삭개오를 예수님은 어떤한 조건을 달지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삭개오를 치유하며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이에 반하여 뭇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취급하고 있습니다(7절). 정죄하는 마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이 들게 합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원조를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욕을 얻어먹는 나라입니다. 그 이유는 원조를 하면서 미국식의 많은 조건을 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조를 받을 때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원조가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미국식의 조건에 반감을 가지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원조를 받은 나라 중에서 그래도 한국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민족이 정이 많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사랑을 조건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조건 때문에 교회 나오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조건 때문에 나온 영혼은 조건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 교회를 나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조건없이 주님을 만난 영혼이 마음에 부담없이 삭개오처럼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모든 조건을 초월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이것이 최고의 감사의 제목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머물음
예수님은 말로 상담하지 않았습니다. 삶으로 실천하는 상담이었습니다. 삭개오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겠다는 것입니다(5절).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삭개오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보다 더 좋은 치유의 방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의 삶의 치유 방법 안에는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왕따 당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함께 있어주는 필요를 채워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한신교회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줄 때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라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필요를 채워준 예수님 때문에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돈이 전부인줄 알았던 삭개오는 돈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붙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돈을 내려놓고 자신을 따르는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합니다(9절).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면 동일하게 구원이 우리의 가정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삭개오 가정처럼 우리 가정에 주님의 구원이 임한 것이 최고의 감사 제목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 아내와 영성치유 수련회를 함께 간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아내는 영성치유를 가서 서로의 상처를 나눌 때 자신에게는 상처가 많지 않는데 자꾸 끄집어내라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아내가 한번은 영성 프로그램을 마치고 만났는데 눈이 뚱뚱 부어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내는 “나는 나다”라고 외치는 영성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처음에서 어색해서 외치지 못하였는데 나중에는 용기를 내어서 외치다 보니 눈물이 그렇게 쏟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개척교회 사모로 살면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하셨듯이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리라 믿습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의 삶에 대하여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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