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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손/ 마가복음 1장 40-42절/ 12월 5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0-12-06 추천 0 댓글 0 조회 588

12월 5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예수님의 손

설교 본문 : 마가복음 1장 40-42절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0. 들어가는 글

연평도 폭격사건 이후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의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습니다. 대림절을 맞이하여 주님의 평화가 이 땅에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주님의 말씀을 시작합니다. 과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저격수로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던 타스 사다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영화 ‘용서’와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1951년 태어난 그는 “왜 우리는 집이 없고 땅이 없을까”를 생각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현실이 괴로웠고, 이스라엘과 계속해서 지는 전쟁을 바라보면서 67년 전쟁 이후에는 아예 아라파트 밑으로 들어가 게릴라가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왔다는 교관은 그런 그가 저격수의 소질이 있음을 알고 살인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타스 사다는 17살 때 가출해 3년 반을 게릴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계기는 타스 사다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의 아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무슬림 아버지를 구원하고자 담임목사와 상담을 하였습니다. 그의 담임목사는 “가서 아버지를 더 사랑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둘은 함께 3개월 동안 무술림 아버지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무슬림 아버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후에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타스 사다 목사는 “PLO에 있을 때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 10대 청소년들에게 전투기술을 가르쳤던 일” 이라고 고백하고, “이제 회심한 후에는 똑같은 나이 청소년들을 위해 문화센터를 열었다”고 합니다. 타스 사다의 손은 무슬림 시절에는 저격수가 되어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로는 목사가 되어서 청소년들의 생명을 살리는 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손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하늘과 땅차이가 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보여준 진정한 “손”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닫고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예수님의 치유하는 손

오늘 말씀에서 마가는 예수님의 치유의 손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나병환자가 고침받기를 간청했을 때 주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셨습니다. 나병환자를 만지는 것은 위생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율법이 금하는 범법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병자의 몸에 손을 대신 이유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입니다. 주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치유의 손으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 예수님의 치유하는 손을 가장 많이 닮은 분이 손양원 목사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의 딸 손동희 권사는 나환자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의 손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버지는 환자들이 거부하는데도 그들의 손을 잡고 식사를 같이 하곤 했다. 아버지는 그들의 피고름 나는 손을 거침없이 부여잡고 장시간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병의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은 약이 된다며 입으로 피고름을 빨아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너무 자주 스스럼없이 나환자들과 어울리는 아버지였기에 결국 나병에 걸렸다는 헛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극구 사양하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피 검사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보통 사람보다 오히려 피가 더 맑다는 것이다. 검사 결과를 전해들은 아버지는 그저 담담한 어조로, ‘그래? 그러면 이번에도 틀린 건가?’ 할 뿐이었다. 자신의 나병 감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아버지였다.” 이 글이 제 가슴에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병 감염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의 손길은 진정 더 비우며 낮아지려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더 가지며 높아지려는 손길에 진정 주님의 사랑이 있는지 의심이 생깁니다. 더 비우며 낮아지는 손양원 목사님의 손길은 예수님의 치유의 손길을 가장 많이 닮으신 분이었습니다.


2. 예수님의 용서하는 손

요한이 포착한 예수님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한 여인이 현장에서 잡혀왔고 돌로 치고자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하여 간음한 여인의 판결을 맡깁니다. 간음한 여인을 죄인으로 판결하면 주님은 사랑이 없는 자가 됩니다. 또한 죄를 묻지 아니하고 풀어주면 율법을 어기는 자가 됩니다. 코에 걸며 코 거리요, 귀에 걸면 귀 거리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한 반응으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시고 난 이후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쓴 글이 무엇이냐에 대한 논란이 많았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무슨 글을 썼는지 침묵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땅에 쓴 글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용서를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은 허물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서 포도농사를 지은 후에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습니다(창9:21절). 하나님은 노아에 대한 책망보다도 세 아들의 반응에 대하여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아비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알립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수치를 들어냈던 함은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주었던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간음한 여인을 이용하였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이용할수록 그녀의 수치를 드러내는 인격적인 모독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의 수치를 덮어주는 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땅에 글을 썼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도 그녀에 대하여 말을 한다면 수치를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땅에 글을 쓰는 손길에는 상대방의 수치를 드러내지 않는 깊은 배려가 담겨져 있습니다. 셈과 야벳이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주는 배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치를 드러냄으로 인격적인 모욕을 주지 않는 용서의 손길이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용서의 손길이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섬기는 손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최고의 손은 요한복음 13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는 섬김이 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가 놀란 사실은 발 씻는 모든 과정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아니하시고 손수 혼자 묵묵히 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아! 이런 모습이 참된 섬김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라고 합니다. 베드로의 마음은 “선생님이 어찌 가장 천한 종들이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저는 선생님을 절대로 천한 종들이 하는 일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제자들의 발을 씻을 때는 그냥 있다가 자신의 차례에서 이런 말을 던지고 있습니까? 베드로 말 속에는 자신의 의가 담겨져 있습니다. 또한 다른 제자들을 추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 대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는 우월의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숨겨진 교만은 자신의 믿음이 “무언가 다르다”는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고, 사랑을 나눌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사랑받을 줄 모릅니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누군가 잘 해주면 또 내게 무슨 수를 쓰려고 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만큼 우리 마음이 병들어 있어서 경계하고 의심하며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최근에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는 그림을 본적이 있었는데 저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림과 말씀이 오버랩이 되면서 먼저는 예수님의 발을 씻는 손길에서 온전히 무릎을 꿇는 굴복이 진정한 섬김이라는 것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어서 상대방의 신체 중에 가장 멀리 있으며, 가장 더러운 부분을 감싸주는 것이 사랑의 손길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이 예수님의 얼굴이 베드로가 발을 담근 대야에 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의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며, 보여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섬김의 손을 사용하는 곳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며 또한 모든 영혼들에게 예수님의 얼굴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이켜 볼 가장 좋은 방법은 손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는 아담의 손이 될 수도 있고, 은 30냥에 예수님을 파는 유다의 부끄러운 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이 아멜렉을 물리친 모세의 기도의 손이 될 수 있으며, 태양을 멈추게 한 여호수아의 능력의 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손은 예수님이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섬김의 손입니다. 그리고 섬김의 손을 통하여 예수님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 성도님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하며 섬기는 손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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