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9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어떻게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가?
본문: 누가복음 12장 35-40절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대림절 마지막 주간이며 성탄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무엘 베케트의 희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20세기에 가장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간 상태에 대한 풍자극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고도 즉 하나님을 기다리는데 고도인 하나님은 오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극중의 유일한 소품은 죽은 나무로서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베케트와 같은 실존주의자들은 인생은 불합리하고,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을 구원하려고 메시야가 이 땅에 온다는 믿음은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런 믿음을 철폐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속았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오신다는 기대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이 오지 않을 때 우리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암시를 통해 베케트는 기다림의 싹을 잘라버리려고 합니다. 성경은 종말이 되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벧후 3:3-12).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하며 하나님 기다리는 것을 싫증내게 될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간절한 믿음이 없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깨달으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깨어서 준비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제일 먼저 주님을 기다리는 모습은 깨어서 준비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35절 말씀에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이 상태는 전체적으로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럼 이제 깨어서 준비하는 모습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깨어서 준비하는 첫 단계는 "허리에 띠를 띠고"입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있다는 의미는 언제든지 민첩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자세입니다. 그러나 민첩하게 일을 하더라도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주인의 뜻대로 하는 일과 자신의 뜻대로 하는 일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뜻대로 일을 해야지만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 가끔은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아니면,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지에 대하여 분별이 잘 되지 않아서 무거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깨어서 준비하는 둘째 단계는 "등불을 켜고“입니다. 종이 등불을 켜고 있으므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의 모습을 통하여 주님의 기다리는 모습을 증거하며 살아갑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죽을 목숨을 구원해 주셨다고 고백하지만 더 많은 재물과 소득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목숨이 주님의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자기 목숨은커녕 소유조차 포기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자기가 소유한 것들 중에서 작은 일부도 가난한 이웃과 나누지 못하면서 하늘의 면류관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등불을 켜고 주님을 기다리는 모습을 찾기가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깨어서 준비하는 세 번째 단계는 "서 있더라" 입니다. 낙심하여 지쳐 있는 모습이 아니라 서서 맞이 할 수 있도록 대기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36절 말씀에서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합니다. 열어 주려고 기다린다는 의미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더라도 앉아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삶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성도님들은 주님 만날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준비하고 살면 언제 주님을 만나도 "주님! 기다렸습니다.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고 하며 기쁘게 주님 품에 안길 수 있을 것입니다.
2.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모습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37절 말씀에서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고 합니다. 언제 오실 줄 모르는 주님을 오실 때까지 깨어 기다리는 종들을 복이 있다고 칭찬하십니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는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38절에서도 "주인이 혹 이경이나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고 합니다. 이경과 삼경은 가장 어두운 때입니다. 인생과 관련되어 말하면 이경과 삼경은 도저히 소망이 보이지 않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를 말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힘들 때에 살길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오히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너무나 세상 일이 잘되면 주님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세상 일만 보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에 앞길이 도저히 보이지 않을 때 주님을 기다림으로 만날 수 있다면 우리에게 가장 복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예전에 한국과 일본의 축구 경기가 열렸습니다. 그날 따라 국가 대표 경기와 청소년 대표 경기가 동시에 열렸습니다. 국가 대표 한일전은 일본에서, 청소년 대표 한일전은 한국에서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에서 열리는 한일전 청소년 경기에 응원 하였습니다. 한국의 팬들은 열심히 응원했지만 상대인 일본 청소년 대표에 기습공격으로 결국 한골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국 청소년 대표가 지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관중들의 응원과 박수갈채는 더욱 커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도 기가 죽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였습니다. 영문을 모르면 "사람들이 다 이상하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한일 국가 대표 경기에서 한국이 이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청소년 게임에서는 지고 있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게임인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이기고 있었기 때문에 즐겁고 기뻤던 것입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는 지고 있는 어려운 삶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에서 육적인 작은 일에 승리하려다 천국으로 인도함 받는 더 큰 승리를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인내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그 승리의 현장을 보게 될 것입니다.
3. 생각지 않는 때에 오시는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모습은 생각지 않는 때에 오시는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40절 말씀에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성도들이 예상한 때에 온다고 하지 않습니다. 39절에 도적이 어느 때 올 줄 모르는 것처럼 주님은 사람이 예측하지 못하도록 갑자기 오시는 것입니다. 내가 예측한 때에 오시든, 오지 않으시든 결국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 400년 동안 하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고 침묵하심으로 메시야를 기다리다가 지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는데 '고도'가 오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분노 가운데 일어선 무리들이 열심당원들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좋았지만 가는 길이 옳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테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생각지 않는 때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지난주 교회 전도사님 네 분과 함께 강화도 갈멜산 기도원에 함께 가서 11년도 목회 계획을 함께 세울 수 있었습니다. 혼자 그렇게 고민하여도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오픈하여 전도사님들과 함께 고민하니 어려운 일들이 해결되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년 계획을 세우기 전 서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디도서 1장 읽었는데 저는 7절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생각지 않는 때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제에게는 주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세부분이 레마가 되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느냐?” 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제 고집대로 하는 것은 없느냐?” 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급히 분내는 것은 없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세 부분 중에서도 특별히 마음이 찔림이 온 것은 두 번째 부분으로서 목회를 하면서 저의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지 아니하고 인격적으로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제 혼자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고집을 내려놓지 않는 성도님들이 있기 때문에 훨씬 더 힘들어진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주님이 저에게 주신 가장 큰 감동은 영적인 중심을 가지고 오직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고집 때문에 주님의 뜻을 몰라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유대인들처럼 자신들의 고집에 사로잡혀 생각지 않는 때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는 최대의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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