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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속에 죽은 여인 라헬/ 창세기 35장 16-20절/ 1월 9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1-01-11 추천 0 댓글 0 조회 431

2011년 1월 9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상처 속에 죽은 여인 라헬

설교 본문 : 창세기 35장 16-20절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0. 들어가는 글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이명박 대통령이 출석했던 소망교회 폭력 사태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재산권을 놓고 비방전을 전개하는 추태를 보면서 이 땅에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는 대형교회들 때문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올해도 이렇게 실추되는 교회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더더욱 전도하기가 힘들겠다는 생각과 함께 “작은 연못”이라는 예전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깊은 산 속 작은 연못에 물고기 두 마리가 정답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두 물고기의 마음속엔 ‘나 혼자 이곳을 차지하면 왕이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다툼이 되어 둘 사이에 사사건건 시비가 생겼습니다. 다툼이 지속되면서 피차간에 미움이 증폭되어 둘은 생사를 걸고 싸움을 벌였습니다. 물고 뜯고 치고 박기를 계속하다 결국은 물고기 한 마리가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싸움에서 이긴 물고기는 “내가 이겼다. 내가 왕이다”라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이긴 물고기는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싸우는 동안 물리고 찢긴 까닭에 상처는 심각했고 좀처럼 아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죽은 물고기는 물 위에 둥둥 뜬 채 썩어가자 연못의 물도 함께 썩어갔습니다. 살아남은 물고기도 상처에 균이 감염되면서 얼마 후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낙원이던 연못이 저주의 현장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 민족이 작은 땅에 살면서 협력하지 못한다는 것을 풍자했던 작은 연못의 이야기가 요즘은 교회 안에서 그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 안이 세상보다 더 심하게 다투고, 물질의 욕심으로 분쟁하는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1. 상처을 극복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여인

그렇게 대형 교회를 이루기까지 얼마나 큰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겠습니까? 그러나 내면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하고 서로 싸우다 보면 결국 파멸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남편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많은 부를 이루었음에도 한평생 불행하게 산 라헬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자신의 마음이 치유 받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라헬이 상처가 많았으며,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았음은 마지막 임종 시에 여실히 드러납니다.


라헬은 야곱 가족이 벧엘을 떠나 이삭이 있는 헤브론에 가는 길에 에브랏(지금의 베들레헴)에 조금 못 미쳐 길가에서 해산하였습니다. 그때 낳은 아들이 야곱의 막내 베냐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에게 라헬이 붙여 준 이름은 ‘베노니’였습니다. ‘베노니’는 ‘고통의 아들’, ‘슬픔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직역을 하면 “어미를 죽게 한 나쁜 놈”이란 뜻입니다. 라헬은 죽어 가면서까지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아들에게 저주의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어떻게 아들 이름이 ‘어미를 죽게 한 나쁜 놈’이 될 수 있을까요? 야곱은 ‘베노니’라는 이름대신 ‘내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의 ‘베냐민’으로 고쳐 주었습니다. 라헬은 야곱의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죽는 순간까지 상처에 갇혀 살았던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라헬과 야곱의 사랑은 정말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얻기 위하여 라반의 집에서 7년을 섬기면서 단지 며칠같이 여겼다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라헬이 도대체 어떤 상처가 있어서 불행한 인생을 살았을까요?


2. 라헬이 한평생 극복하지 못한 상처는 무엇일까요?

라헬은 아버지 라반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처가 가장 컸습니다. 라헬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상처는 한평생 불안감에 시달리는 상처였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7년에 대한 품삯으로 라헬과의 결혼을 약속하였습니다. 야곱은 첫날 밤 사랑하는 라헬이 아니라 레아와 결혼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로 더 충격을 받았을 사람은 라헬입니다. 7년 후에 당연히 야곱의 부인이 될 줄 알고 기다렸는데 그 자리에 언니를 들여보내는 아버지를 보고 느꼈을 절망감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런 상처로 라헬은 누군가를 믿지 못하고 한평생 불안감에 시달리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불안감에 시달리는 상처는 부모와 신뢰관계가 깨어진 자녀들 속에 나타나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약속을 하였지만 그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거나 일관성이 없을 때 불안감이 내면이 자리를 잡습니다. 불안감이 내면에 자리 잡으면 다른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합니다. 관계형성을 잘 못하고 고립되어 살아갑니다. 귀가 얇아서 다른 사람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갑니다. 불안감으로 말도 잘 바꾸고, 행동도 잘 바꾸면서 일관성 없이 모순되게 살아갑니다.


라헬에게 또 하나의 큰 상처의 원인은 언니 레아와 경쟁으로 한평생 심한 긴장속에 살았습니다. 라헬은 성장하면서 시작되었던 언니 레아와의 경쟁은 결혼 이후에도 변함없이 따라다녔습니다. 한 남자를 두고 언니와 동생이 다투어야 했으니 그 긴장감이 어떠했을까요? 긴장감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마음속에 여유가 없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남자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나 화내고, 심하면 폭언과 폭력이 나타납니다. 또한 긴장감에 대한 도피로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긴장감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은 쉽게 토라지고 시기심과 질투심이 심하게 나타납니다. 그럴 에너지조차 없으면 자포자기에 빠지거나, 심한 무력감에 시달리고, 우울증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불안감의 상처와 언니와의 경쟁 속에 심한 긴장감의 상처를 치유를 받지 못하므로 한 평생 불행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3. 상처에 대한 반응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내면에 걸림이 있어서 자신을 괴롭히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살아갑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제일먼저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마음의 벽을 쌓고 살아갑니다. 과거에 거절이나 배반당하거나 버림당한 경험 때문입니다. 그래서 긴밀한 관계 맺기를 무의식적으로 거부합니다. 어떤 모임에서 하나 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하나라도 같은 점을 찾아내서 함께 하기보다는 자신과 다른 점을 찾아내서 정죄하며 멀리합니다. 자신이 중심이 되지 못하거나 소외당하면 또 다시 버림받는다는 불안감 때문에 힘이 있다면 갈등을 유발시키고, 힘이 없으면 먼저 도망칩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습니다.
자존감은 자신을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부족한대로, 약한대로 인정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외부 상황에 상관없이 자족할 줄 알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남들이 좋지 않는 말을 하면 화살이 되어 마음에 꽂히고 그 말이 자신을 두고두고 괴롭힙니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며, 좋은 의도로 하는 말까지 자신을 공격하는 말로 들립니다. 자존감이 낮아 자신의 중심을 잡지 못하기 때문에 환경이나 사람들의 말에 흔들림으로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삶을 살아갑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책임 전가와 회피를 합니다.
정신적으로 가장 비겁한 행동이 책임전가와 회피입니다. 먼저 책임전가로 남 탓을 잘합니다. 지금 불행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상황 탓을 하고, 다른 사람 탓을 하며 책임을 전가합니다. 우리가 용서를 잘 못하는 것은 용서를 하면 탓할 대상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불행에 대해 책임을 전가할 대상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남 탓을 하면 도피는 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아서 악순환이 되풀이 됩니다. 또 하나 증상은 회피하는 것으로 지금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면하기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어떤 문제든 숨김없이 정직하게 직면하여 해결합니다. 하지만 상처가 있는 사람은 숨기고 감추면서 회피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책임전가나 회피는 서로 맞물려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만들며, 상처까지 치유받지 못하여 불행 속에 살아가는 삶이 됩니다. 해결되지 않는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자석처럼 끌어당겨 더욱 큰 덩어리를 만듭니다. 그래서 그것은 점차 그 사람의 성격이 되어 한 평생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면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새해에 주님이 저에게 주신 말씀이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였습니다(시편34:18절). 한 주간 동안 새해에 받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안에 치유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상한 것이 자신 안에 자리 잡으면 상처가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상함(brokenhearted)으로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면 오히려 주님을 가까이 만나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충심으로 통회한다는 것이 NIV 성경에서 “영적으로 깨어진다”는 “crushed in spirit”입니다. 우리 인생에 고통과 상처가 임할 때 가슴에 담아서 걸림이 되지 말고 주님 앞에서 영적으로 깨어지는 계기가 될 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여호와의 영을 내리셔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61:1). 라헬처럼 과거의 상처 때문에 현재의 사랑을 누리는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 받고 현재 주님의 주시는 사랑 속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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