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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요한복음 11장 1-17절/ 1월 16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1-01-18 추천 0 댓글 0 조회 444

2011년 1월 16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설교 본문 : 요한복음 11장 1-17절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0. 들어가는 글

새해가 되면서부터 연일 매서운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서운 강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전국이 구제역으로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청지기로 세우고 모든 생물을 잘 돌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이 모든 생물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신종플루에 이어서 올해 구제역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인간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 선 한 가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세 남매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삶의 기쁨을 회복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는 큰 슬픔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가정의 유일한 대들보라 할 수 있는 남자 형제 나사로에게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닥쳐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죽음을 눈앞에 둔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새해에 어떤 절망이 닥쳐와도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승리 할 수 은혜가 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원망이나 불평을 넘어선 사랑의 관계

제일 먼저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나사로의 죽어가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향하여 어떤 원망이나 불평을 늘어놓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는 가정이 나사로의 가정이었습니다(5절). 왜냐하면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기간 동안 지치거나 피곤할 때 편히 쉬기 위하여 찾는 곳이 나사로의 가정이었습니다. 또한 오늘 분문에서 마리아의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을 만큼” 헌신된 사랑을 언급하고 있습니다(2절). 이런 나사로의 가정에 불행이 닥쳤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인간적인 의리로 생각하면 일찍 찾아가 병을 살펴본다든지, 어떤 치료의 방법도 찾으면서 고통을 나누어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님은 상당기간 지체하였습니다(6절). 이런 때 평범한 인간의 모습은 사랑이 증오로 바뀌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향하여 “달면 먹고 쓰면 뱉는다.”라는 인간적인 감정을 크게 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내려가기까지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을 향하여 그 어떤 원망이나 불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관계가 원망과 불평을 넘어선 진정한 사랑의 관계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며 따랐던 마리아와 마르다가 가장 힘들 때 예수님이 찾아와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여전히 신뢰하며 따르는 믿음이 변함이 없다는 것은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되었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해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숙한 사랑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먼저 원망하거나 불평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간다 선교사님이 심한 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심한 병에 시달리고 있을 때 본국에서 선교후원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약을 구하기는커녕 끼니도 잇기 힘들어 한 달을 거의 풀죽으로 연명하다 시피하였습니다. 마음에 얼마나 큰 원망이 생겼겠습니까?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교하다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데 거기에 선교후원까지 오지 않았으니.... 안식년이 되어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무료로 진료해주는 곳에 가서 건강 진단을 받다보니 병에 걸린 흔적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선교사님이 걸린 병이 한달 동안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미음으로 조절해야 낳을 수 있는 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교사님을 치료하시기 위하여 잠시 후원금을 중단하고 풀죽을 먹게 만들어서 살리셨던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주님의 오묘한 은혜를 깨닫고 조급하게 원망했던 자기중심의 얄팍한 신앙을 회개하였습니다.


2. 주님을 제일 먼저 찾아서 절망적인 현실을 고함(3절)

나사로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자 제일먼저 주님께 찾아가 자신들의 어려움을 맡기고 있습니다(3절). 어려울 때 생각나는 사람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그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한 사람이 자신이 죽을 때 진정으로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라는 고민에서 시작하여 남은 생애동안 최선을 다하며 베푸는 삶을 살아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와 마르다는 어려울 때 제일먼저 떠오르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의 생애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제일 먼저 주님을 떠올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마르다와 마리아는 절망적인 현실을 말할 때 어떠한 요청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예수님에게 백지위임을 한 것입니다. 많은 문제를 가지고 주님을 찾다보면 이렇게 해결하여 달라고 요청하기 일쑤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 어떠한 요청도 하지 아니하고 모든 처분을 주님께 맡기고 있습니다. 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할 때 내가 먼저 답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는 경우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 문제에 대하여 주님의 처방에 맡기면 내가 내린 결론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폭풍 앞에서 철칙은 배의 키를 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배의 키를 놓고 폭풍에 자신을 맡기라는 것입니다. 키를 잡고 움직이면 파도를 거슬려 배가 뒷집이지만 키를 놓고 폭풍의 파도를 타고 넘으면 배가 뒷집이지 않고 안전하게 표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에 대하여 내가 움직여보고자 하는 키를 놓고 주님께 간절히 맡겨 봅시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당장 오셔서 고쳐 주시기를 원하는 자신들의 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처방에 맡겼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자신의 방법으로 지체하여 시체가 무덤에 내려가기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보다 주님의 생각이 더 탁월하기 때문에 내가 답을 내리지 말고 주님의 처방에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신의 오빠가 죽었지만 예수님에 대하여 “주여”라는 고백으로 신성과 권위를 흔들림 없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자신의 삶에 엄청난 풍랑을 만나서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신앙고백과 자세는 한치의 흔들림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힘든 풍랑일찌라도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자세가 끝가지 흔들리지 않는다면 분명이 주님께서 최고의 방법으로 도움을 주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절망적인 상황에 있어도 영적 싸움에서 승리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리아 자매가 가장 큰 어려움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과 깊은 사랑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자매는 나사로의 상태에 대하여 예수님에게 보고할 때도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라고 합니다(3절). 예수님이 마리아 자매 가정을 향한 마음도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라고 합니다(6절).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사랑으로 맺어졌다면 세상에서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를 통하여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페루 어부들이 아마존 강을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스페인 국적의 거대한 배 한 척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부들이 급히 배 위에 올라갔습니다. 갑판에 수십명의 선원들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몸과 입술은 나뭇잎처럼 말라붙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입니까?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해적을 만났나요? 아니면 식량이 떨어졌나요?” 겨우 정신을 수습한 한 스페인 선원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해적이라뇨?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바다를 표류했어요. 마실 물이 모두 떨어졌어요. 제발 우리에게 물을 줘요.” 페루 어부들이 아마존 강에서 맑은 물을 퍼 올려 선원들에게 먹였습니다. 그때서야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바다를 표류하다가 아마존 강으로 밀려온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계속 바다 한가운데 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식수를 구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절망하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만 내밀면 식수가 넘쳐나는 아마존 강 복판에서 목이 말라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야기를 통하여 절망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절망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려운 상황은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다에 있는 어려운 상황이 아마존에 있는 좋은 상황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아무리 큰 사랑을 주더라도 떠먹을 수 있는 자만이 자신의 생명도 살리고 다른 사람의 생명도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나사로의 가정처럼 어떠한 절망도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승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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