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8일 주일 설교
설교 말씀 : 길을 내시는 하나님
설교 본문 : 이사야 43:14-21절 (p1020)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0. 들어가는 글
5월은 가정의 달이며 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역사가 중세기로 들어갈 무렵에 밀라노의 한 교회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교회당에 들어와 뒤편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통곡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십분, 이십분, 삼십분이 지나도 통곡소리는 멎지 않았습니다. 그 때 교회의 감독이었던 암브로우스가 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감독은 부인에게 아픈 사연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부인, 뭐 어려운 일이 있으십니까?” 물었습니다. 부인은 갑자기 감독을 보더니 “감독님, 내 아들이 이단에 빠졌어요. 어떡하면 좋아요”라며 다시 흐느꼈습니다. 그 때 감독은 부인에게 “걱정 마세요, 기도하는 자의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라는 위대한 말을 남겼습니다. 통곡하며 기도하던 부인은 바로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였습니다. 이 일을 통하여 “기도하는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기도로 어거스틴은 주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암브로우스 감독에게 세례와 양육을 받아서 교회 역사에 가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는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자녀들의 길을 여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이유는 어버이 되신 하나님이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막에서도 길을 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사막에서도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큰 은혜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사막에서도 길을 내시는 주님은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18절). 그 이유는 주님이 새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19절). 이전에도 자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신 주님이 앞으로 더 큰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단 빠졌던 어거스틴을 개종시키고 세례 베풀었던 암브로우스 감독에게 주님이 새로운 길을 내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암브로우스는 로마의 최고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갈릴리 지역의 총독으로서 로마제국의 가장 세력이 있는 정치가였습니다. 그런 부모님을 배경으로 암브로우스는 로마의 최고의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눈부시게 출세하여 30세에 북이탈리아 총독이라는 요직에 올랐습니다. 세상에서 거침없이 가장 잘나가던 암브로우스에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374년 아리우스파였던 밀라노교회의 감독이 죽었습니다. 당시 아리우스파와 니케아파간에 알력이 극심하여 새감독을 선출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암브로우스는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회의에 참석하는데 한 아이가 "암브로스를 감독으로 뽑읍시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어린아이의 말이 하나님의 선택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암브로우스를 감독으로 임명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성스럽고 고귀한 직분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감독직을 맡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또한 세례 준비반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세례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황제가 그의 선출을 인정함으로써 주님의 뜻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독에 취임한 그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과 교회에 모두 바쳤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연구하는 데 온 정열을 쏟았고, 그의 설교는 뜨거웠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도 그의 설교를 통해서였습니다. 또한 그는 감독에서 내려와서도 가난한 자들과 하나가 되어 평생을 금욕하며 살았습니다.
암브로우스 감독시절에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거칠고 성급하였습니다. 390년경에 데살로니가에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켜 로마 장군을 살해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그 도시 사람들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의 명령에 따라서 한 경기장에 사람들을 집결시켜 놓고 칠천 명을 학살하였습니다. 화가 풀린 황제는 명령을 취소했으나 그 명령이 도달하기 전에 상황이 끝났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암브로우스는 황제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는데 무반응이었습니다. 주일에 황제가 교회에 나왔을 때 그는 입구에서 공개적으로 황제가 회개할 것을 다시 청하며 교회 출입을 금했습니다. 그는 요지부동이었고 황제는 몇 달간 예배참석을 하지 못했습니다. 황제는 "교회가 노예와 거지들에게는 열려져 있으나 내게는 닫혀있다"고 불평했습니다. 마침내 황제는 대중이 보는 가운데 바닥에 엎드려 손발을 모두 뻗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죄를 구했습니다. 정치가로서 최고의 출세가도를 달리던 암브로우스에게 하나님은 새 길을 열어주었을 때 순종함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황제까지 회개시키는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새 길을 여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위기 때 막혀 있는 길이 오히려 열립니다.
주님이 길을 내시는 경우는 모두가 위기가운데 있을 때입니다. 주님이 바다를 가르시며 길을 내실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기가운데 있었습니다(16절). 위기가운데서 길을 내시는 주님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21절).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벅 여사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느 해 아버지가 먼 여행으로 집을 비웠을 때 마을에는 백인이었던 어머니가 신을 분노케 만들어 가뭄이 계속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분노로 변했고, 어느 날 밤 사람들은 몽둥이를 들고 펄벅의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따르게 하고 케이크와 과일을 접시에 담게 했습니다. 그리고 대문과 집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 두고는 마치 오늘을 준비한 것처럼 어린 펄벅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들었습니다. 잠시 뒤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단숨에 거실로 몰려왔습니다. 굳게 잠겨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문이 열려 있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방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때 펄벅의 어머니는 "정말 잘 오셨어요. 어서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드세요." 하며 정중히 차를 권했습니다. 그들은 멈칫거리다가 못 이기는 척 방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구석에서 놀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을 때 주님이 직접 길을 열어 주십니다.
3.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
우리 한신교회가 창립 9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 한신교회는 보이지도 않고 길도 없는 곳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라는 말씀이 우리 교회에서도 실제로 이루어지는 체험을 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19절). 우리교회는 하나님께서 사막에서 길을 내시듯이 놀라운 은혜를 주셨지만 저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최근에 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니 사막이 아닌 산으로 오르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된 계기는 세계 최대의 사막인 사하라 사막을 횡단했던 스티브 도나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란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스티브 도나휴는 인생을 산이 아닌 사막으로 볼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지도가 아니라 나침반을 따라가야 합니다. 수시로 지형이 바뀌는 사막에서는 지도보다 나침반이 훨씬 유용합니다. 우리의 나침반은 바로 성경입니다. 둘째,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야 합니다.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은 재충전의 기회입니다. 예배는 영혼의 오아시스입니다. 셋째, 모래에 빠지면 바퀴의 바람을 빼야 합니다. 차바퀴의 바람을 빼서 바퀴가 평평해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교만의 공기를 빼고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넷째, 필요할 때는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인생의 사막에서는 때때로 다른 차에 깃발을 흔들어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혼자 하려다 결국 구조를 받아야 할 상황에 처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멀어져야 합니다. 캠프파이어는 따뜻하고 안전하지만 거기 계속 머물면 사막을 건널 수 없습니다. 여섯째,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속 열정을 가로막는 두려움과 불안감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불가능을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산이 아닌 사막이 펼쳐질 때 당황합니다. 산을 오르는 자에게는 정상이라는 목표가 있기에 소요시간과 등정방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막은 이와 전혀 다릅니다. 목표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예측불가능하고 불확실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추구하려는 정상을 향해서만 우리를 인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계획과 준비가 별 소용이 없는 사막과 같은 곳에서 모든 것을 기꺼이 내려놓을 때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고 독특하게 인도해 가십니다. 산의 정상으로만 달리던 암브로우스를 하나님은 계획과 준비가 필요없는 사막으로 인도하셔서 그의 인생을 아름답게 사용하셨습니다. 제가 신앙의 여정이 산이 아니라 사막이라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아등바등 세월을 허송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라도 사막가운데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내 목표와 계획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맡기며 인도함을 구하고자 합니다.
지난 온 날도 은혜가운데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새 길을 열어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인생의 위기가 닥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 주님이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정상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산으로만 올라가는 인생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사막과 같은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닫고 광야에서도 길을 내시고 사막에서도 강들을 내시는 주님만을 의지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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