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 말씀및찬양 >
  • 주일예배
하나님의 기업/ 열왕기 상 21 : 1-10절/ 6월 5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1-06-08 추천 0 댓글 0 조회 275

2011년 6월 5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하나님의 기업

설교 본문 : 열왕기 상 21 : 1-10절 (553쪽)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0. 들어가는 글

6월의 호국의 달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더 많이 기도할 수 있는 한 달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보통 사람이 하룻밤 잠을 잘 때 50번 이상이나 뒤척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는데 어린아이는 종종 떨어지곤 합니다. 어른들은 뒤척일 때 한 번은 오른쪽, 다음엔 왼쪽으로 뒤척이지만 아이들은 한 방향으로 계속 뒤척여 침대에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해서 균형을 이루는데 비해 어린아이는 균형 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 성숙해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균형감각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흑백 논리라는 두 가지 입장만이 아니라 균형 감각을 가지고서 죄우를 살필 수 일 때 성숙한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말씀을 통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성숙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전혀 균형 감각을 가지고 못하여서 잘못된 것에 집착하는 성숙하지 못한 한 명의 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왕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이름 없는 백성이 등장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의 기업을 지키고자 하는 나봇

오늘 말씀에서 아합 왕은 나봇에게 포도원을 주면은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든지 아니면 그 값을 돈으로 보상하겠다는 합당한 제안을 합니다(2절). 한 나라의 왕이 농부에게 직접 찾아가서 이런 제안을 한 것을 보면은 그가 얼마나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고 싶어 했는지 그 심정을 알 수가 있습니다. 나봇의 입장을 생각해보아도 얻을 것은 많고, 잃을 것이 전혀 없는 좋은 조건의 거래였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좋은 포도원을 가질 수 있었고, 높은 가격을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왕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그 어떤 흥정도 없이 아합 왕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저도 한참 고민을 하였습니다. 왜 나봇이 아합 왕의 “이 좋은 제안을 거절하였을까?”에 대해서입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 나봇은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입니다(3절). 나봇은 여호와가 금하시는 명령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절대로 할 수 없다는 맹세를 합니다. 둘째는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라고 합니다(4절). 조상의 소중한 유산을 돈으로 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대의 왕정 사회에서 왕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러나 나봇의 포도원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하나님의 기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약속의 땅으로서 개인이 매매하거나 거래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대하여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 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고 합니다(레 25:23). 나봇은 좋은 거래를 통한 자신의 이익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하는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나봇의 하나님의 기업을 지키고자하는 믿음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당시 아합 왕은 아람 왕 벤하닷을 두 번씩이나 물리친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왕상20장). 상대적으로 나봇은 아무런 힘이 없는 무명의 농민이었습니다. 세상의 가장 강한 힘 앞에서 가장 힘이 없는 사람이 전혀 타협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믿음의 뚝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단순한 믿음의 뚝심 앞에서 우리 주님도 감동받아서 하늘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라는 묵상을 해보게 됩니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고 변질되는 세상에서 나봇처럼 오직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믿음의 뚝심을 가진 사람이 참으로 그리운 시대입니다.


2. 아합의 인격이 자라나지 못한 성인아이의 모습

아합 왕은 거래를 제안했을 때는 나름대로 합당한 제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제안이 거절을 당하자 마음속에 숨겨졌던 상처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합의 상처는 인격이 덜 자라난 성인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아합이 거절 이후에 보여주는 모습은 삐친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삐져가지고 집에 누워 밥도 먹지 않고 있는 영락없는 어린아이 모습입니다. 아합은 왕으로서 궁궐에서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누리고 있지만 그의 인격은 전혀 자라나지 못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합 왕 처럼 성인아이의 모습은
첫째로 거절을 당한 다든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바르게 바라보지 못합니다. 아합은 자신이 제안한 매매를 하나님이 금지했다는 말씀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미천한 백성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점만 강하게 기억합니다. 인격이 자라나지 못할수록 상대방 입장의 합당한 이유보다도 자신을 무시했다는 분노의 감정에 더 빠져들게 됩니다. 둘째로 성인아이는 모든 일을 자기중심적으로 처리하고자 합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이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라고 물어보자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꼭 엄마에게 일러바치는 아이의 모습이 나타납니다(5절). 일어 바치는 내용도 나봇의 입장은 전혀 무시한 채 자기중심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말하고 있는 어린아이 성향입니다(6절). 세 번째로 성인아이는 어떤 문제 앞에서 자신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합은 어려운 일만 생기면 쉽게 낙심하여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그의 아내 이세벨에게 유난히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넷째로 성인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지 못하면 불안에서 견디질 못합니다. 그것을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고 자신의 욕구를 절제할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런 성인아이의 아합은 아내의 권모술수에 기대어 나봇을 죽이고 자신이 원하는 욕구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취하고 있습니다(16절).


아합은 자라나지 못한 성인아이 욕구 때문에 바르게 선택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간 것입니다. 그는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라는 나봇의 말(3절)과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라는 이세벨의 말(7절) 사이에 바른 선택을 했어야 합니다. 나봇의 말은 하나님의 음성이요, 이세벨의 말은 마귀의 속사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봇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욕구을 채우기 위하여 마귀의 속사임에 끌림으로 심판의 길로 갔습니다. 우리의 인격이 성숙하여 욕구를 조절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과 마귀의 속사임 속에서 바르게 선택할 수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3. 나봇의 죽음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저는 이 말씀을 마무리 하면서 나봇이 포도원을 지키기 위하여 과연 목숨까지 잃은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의문을 가져 보았습니다. 이름도 없는 농부 한명이 말씀을 지키다가 죽는다고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왕으로부터 더 좋은 포도원을 받고난 이후에 얼마든지 하나님께 열광 돌리며 살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정말 나봇에게 “이것이 최선이었습니까?” 라고 묻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봇의 모습이 주님에게 최선이 되었습니다. 바로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계기가 되었던 우상을 섬겼던 아합 왕조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아합 왕조는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수백명을 갈멜산에서 죽인 후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농부 한명의 죽음이 아합 왕조의 멸망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17-26절).


고대 왕정사회에서 왕이 평민의 포도원 하나 빼앗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성경 기록에 남을 정도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봇을 통하여 전하려는 분명한 메세시가 있습니다. 나봇은 왕정시대의 가장 심하게 우상을 섬겼던 아합 왕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가장 어두웠던 우상의 시대에 한 줄기의 소망의 빛을 비추었던 순결한 영혼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가장 강한 권력 앞에서도, 세상의 달콤한 물질의 유혹 앞에서도 하나님의 기업을 지켜낸 새벽이슬 같은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다 순교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며, 의인중의 의인이며, 믿음으로 남는 자가 되었습니다. 진정 이 시대에도 오직 말씀만을 따르려는 믿음의 한 사람이 있으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도 세상에 타협하지 아니하고 나봇처럼 말씀의 법을 따를 수 있는 사람들이 세워지길 소망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고난과 위로/ 마태복음 14장 22-27절/ 6월 12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1.06.12 0 477
다음글 사랑과 동행 / 아가 4 : 7-16절/ 5월 29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1.05.31 0 445

415809 경기 김포시 승가로 87-51 TEL : 031-985-4941 지도보기

Copyright © 김포한신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4
  • Total230,529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