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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진리로 예배/ 요한복음 4장 14절 - 24절 / 7월 3일 맥추절 설교
조영식 2011-07-05 추천 0 댓글 0 조회 252

2011년 7월 3일 맥추절 설교

설교 제목 : 영과 진리로 예배

설교 본문 : 요한복음 4장 14절 - 24절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하반기를 시작하는 칠월 첫째 주일입니다. 또한 맥추 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상반기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하반기를 주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최근에 제가 목회를 하면서 예배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배를 잘 들여야 한다고 선포는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예배를 잘 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증거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였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하여 강조를 많이 합니다. 그러다보니 예배나 기도를 조금은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 교회가 위기일수록 더욱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참된 예배를 드리면 그 열매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를 통하여 주님과 만남이 없는 행함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드리는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인지 살펴보면서 은혜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영과 진리의 예배는 물을 마시는 것과 동일합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만남입니다. 저에게는 이런 설명이 추상적이지 아니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14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고민이 풀렸습니다. 물을 마시는 것과 영적인 예배가 연결이 되었습니다. 물을 마시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실제적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들이는 영적인 예배는 물을 마시는 것처럼 실제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예배를 들이면서 목마른 내 인생의 갈증이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예배를 통하여 인생의 갈증을 해결 받고 예수님의 충만한 생명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육신의 갈증 때문에 주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저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궁극적인 문제는 육신의 갈증이 아니라 영적인 갈증의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영적인 갈증을 해결 받지 못한 채로 육신의 갈증만 해결하려다보니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며 그 상황이 자꾸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영과 진리의 예배를 통하여 영적인 갈증을 해결 받지 못하고 육신의 갈증을 해결하려고 세상 것을 쫓는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부유해져도 그것들이 인생의 갈증을 궁극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제가 수요일 저녁 예배에 아모스를 강해하고 있습니다. 아모스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암8:11절)


머리로 아는 것과 물을 마시듯이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떻게 다릅니까?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이 겨울에 내리는 눈에 대하여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사진으로 눈의 모든 종류에 대하여 알게 됩니다. 그리고 눈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 까지도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눈에 대하여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사람이 겨울에 한국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인천 공항에 내리자 눈발이 휘날렸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자신의 얼굴에 내려앉자 “이것이 바로 눈이구나” 감탄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제적인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물이 무엇이냐?” 에 대해 알고만 가면 안 됩니다. 그 물을 직접 마심으로 “우리 인생의 갈증이 해결되는구나.” 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 예배의 때가 언제입니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예배에 관하여 대화를 나눕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하여 장소가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20절).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냐?”, 아니면 “예루살렘이냐?” 라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때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21,23절). 구약에서 예배는 장소가 제일 중요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 다른 곳에서 드리는 예배는 무효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처럼 절기가 되거나 자신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어느 곳에 있는지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와서 짐승의 제물을 바치며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온 이후로는 더 이상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때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배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깊은 영적교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몽골에 이용규 선교사님이 목축을 하는 처녀를 전도하였습니다. 주일 아침에 처녀는 먼저 소들을 풀밭에 매어놓은 다음에 예배를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소들을 끌고 나가는데 소 한마리가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 처녀는 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뛰어 가다 보니 땀과 먼지로 온통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소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처녀는 소를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교회로 달렸습니다. 교회로 왔을 때 얼굴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옷은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 이유를 묻자 그녀는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소보다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몽골에서 소한마리는 엄청난 재산이었지만 예배가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그녀가 너무 기특하여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교회 마당으로 나왔을 때였습니다. “음메” 그 잃어버린 소가 교회로 와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니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예배를 사모하여 가장 큰 재산인 소를 포기하고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몽골 처녀의 마음을 주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몽골처녀처럼 예배를 사모하고 주님을 깊게 만나는 예배의 때가 바로 이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23,24절).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우리의 영은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우리의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두 번 태어나는 것입니다. 한번은 육으로 태어나고 또 한번은 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대회에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요3:6).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영혼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요3;3). 거듭난 영혼들이 영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채널을 맞추고 교제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거듭난 영으로 만났을 때 의사소통이 필요합니다. 그 의사소통을 바로 진리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리가 되는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가 되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제일 먼저 가르쳐 준 것이 무엇입니까?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무화과 나뭇잎 엮어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창3:7).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뭇잎이 마름으로 자신들의 수고가 헛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아신 하나님이 가죽옷을 잎혀 주셨습니다(창3:21). 자신들이 수고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가죽옷을 입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제일 먼저 은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가인과 아벨의 제사와 연결시켜 보았습니다. 가인은 무화과처럼 과일 농사도 지었을 것입니다. 무화과 잎을 엮어서 옷을 만들었듯이 가인의 농사 제물 속에 “내가 했다”는 “자기 의”가 담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짐승의 제사는 하나님이 가죽옷 입혀준 것처럼 모든 것이 은혜라는 고백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내가 무엇을 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최근에 은혜 받았던 성찬식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길거리에 버려진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해 신앙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찬을 나눌 때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바라볼 때 사랑의 영성이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예맨의 나환자촌에서 테레사수녀를 초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제들이 함께 들어가지 아니하면 자신은 나환자들을 섬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테레사 수녀는 사제들이 집례 하는 예배를 통하여 성찬을 나누면서 희생이 영성과 사랑의 영성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성찬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성찬을 나누면서 예수님의 사랑의 영성이 흘러나옵니까? 희생의 헌신이 흘러나옵니까? 이렇게 받는 은혜가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질 때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목마름을 해결 받아야 합니다. 또한 지금 드리는 예배가 내 인생에 주님을 가장 사모하여 드리는 예배의 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는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어떤 은혜를 받아야 합니까? 예수님의 사랑의 생수가 내 마음에 흐르고, 헌신의 삶이 흘러나오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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