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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생각의 차이/ 이사야 55장 6-11절/ 7월 10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1-07-22 추천 0 댓글 0 조회 809

2011년 7월 10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주님과 생각의 차이

설교 본문 : 이사야 55장 6-11절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0. 들어가는 글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플라세보 효과와 노세보 효과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 에 따라서 우리의 몸이 그대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두통 환자에게 즉효약이라고 하면서 각설탕을 주었는데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플라세보 효과라고 합니다. 또한 효과가 있는 약을 주면서 환자에게 ‘효과가 없다’고 하면 실제로 약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노세보 효과도 실험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에 따라서 믿음의 플라세보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고 불신의 노세보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의 차이가 우리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불신의 노세보의 생각보다는 믿음의 플라세보 생각을 많이 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들 안에도 긍정의 플라세보 생각과 부정의 노세보 생각이 차이가 있듯이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도 크나 큰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생각의 차이가 있는지를 깨닫고 주님의 생각으로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돌아오라

오늘 말씀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8절).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어느 정도 다르다고 말씀하십니까?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고 합니다(9절).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그 결과로 길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사야가 하나님과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일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7절). 구약의 “돌아오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회개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는 생각이고 또 하나는 길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신들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종종 전투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뉴스에서 접합니다. 추락하는 이유 가운데 중요한 것은 버티고 현상 때문입니다. 이것은 조종사들이 깜깜한 밤이나 바다나 구름 속에서 전투기가 뒤집어져서 날아가는지, 정상으로 날아가는지 생각에 혼동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비행착각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것과 내 생각에 의존하기보다 계기판을 믿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차를 운전하거나 지하철을 탈 때도 오른쪽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표지판은 왼쪽으로 가라고 표시한 것을 경험하는 생각의 착시현상이 나타납니다. 무엇을 따라가야 합니까? 생각의 느낌을 쫓아가야 합니까, 표지판을 쫓아가야 합니까? 당연히 내 생각의 느낌보다 표지판을 따라가야 합니다. 내 생각의 느낌을 따라가면 내가 원하는 방향의 반대로 가게 됩니다. 세상이 얼마나 숨 가쁘게 돌아가며 발전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신문을 볼 때마다 얼마나 세상이 혼란스러운지 모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에게 버티고 현상 즉 생각의 혼동을 가져다줍니다. 인생의 생각의 혼동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생각의 느낌을 기준을 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닮아가라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 이후로 주님과 생각의 차이를 좁히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주님을 닮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일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후로 천국에 이를 때까지 한 평생 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진정 주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주님을 더 닮아가기 위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남녀가 서로를 진정 사랑하게 되면 서로가 은연중에 닮아가게 됩니다. 서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효과 때문입니다. 남자는 여자라는 거울을 보며 그녀를 닮고, 여자는 남자라는 거울을 보며 그를 닮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주 밥만 같이 먹어도 입맛이 닮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터놓고 대화하는 시간이 많으면 생각도 닮고, 웃을 때 같이 웃고 울 때 같이 울다 보면 두 사람의 얼굴근육과 주름까지도 비슷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닮은 구석이 없다는 것은 한쪽이 울 때 한쪽은 웃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한 상에서 밥 먹는 일도 적고, 마음 주고받으며 대화할 시간이 너무 적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어느 새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서 그 사람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부부도 사랑하면서 닮아 가는데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면서 그분을 닮은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했다는 증거는 “주님을 얼마나 닮았느냐?” 라는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여 닮아 가면 갈수록 주님과의 생각의 차이는 좁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것 같은데 닮아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신앙에 있어서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혼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의 비슷한 단어로 흔히 ‘좋아한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하면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마음의 동기가 다릅니다. 고양이가 쥐를 좋아합니까, 사랑합니까? 고양이는 쥐를 사랑하지 않고 좋아합니다. 좋아하다는 의미에는 자기만족과 욕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과 희생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좋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좋아하면 내 만족을 추구하고 있고, 사랑하면 주님을 닮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3. 넓어져라

우리들이 주님의 생각과 간격이 좁아지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마음이 넓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9절 말씀에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에는 하늘이 땅보다 더 넓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최근에 저보다 젊은 목사님과 점심을 함께 먹은 적이 있습니다. 젊은 목사님의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을 보면서 건강이 많이 상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옆에 동석한 분이 젊은 목사님이 교회에서 너무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건강까지 해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나오면 밤이 깊도록 일만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식사하자는 말이 없으면 밥까지 걸러 가면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충성된 종입니까? 그런데 제 마음에는 충성된 종이라는 생각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예전의 저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앞만 보면서 너무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리고 김포에 개척을 하면서도 정말 목회 잘해서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제 또래의 목회 동기들보다 항상 앞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 마음 때문에 한 때는 새벽 2시나 3시부터 나와서 기도하고 하루 종일 전도와 심방 다니면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책이 손에서 떠나지 않는 적도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의 남편이 저와 산을 가본 적이 있었나 봅니다. 정상을 향해서 정신없이 올라갔다가 정상만 찍고 정신없이 다시 내려오더라는 것입니다. 산을 오르는 것까지도 즐기지 못하고 일이 되어서 여유없이 살아가는 저의 모습을 너무나 잘 지적해준 것 같습니다. 그 결과로 얻은 선물이 아래 혈압 130에 위에 혈압이 180까지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다 제 자신이 “큰일 나겠구나” 생각하면서 혈압 약을 두 알씩 먹게 되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저에게 지쳐서 쓰러질 수도 있다는 놀라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건강 때문에, 사업 때문에, 자녀들 때문에, 아무리 원하고 애를 써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을 실패나 좌절, 내가 뒤처지는 낙오의 시간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이것을 실패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 주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위로 높아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는 것입니다. 실패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잠시 쉬어가면서 “옆으로 넓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만 보고 달리며 위로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쉬어가면서 겪는 많은 경험들 속에 옆으로 넓어지면서 주님의 뜻을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정상만 보고 달리는 것은 내 욕심을 채우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나 이유로 쉬어가면서 옆으로 넓어지는 것들 속에 진정 주님과 가까워지며 생각을 좁힐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 위로만 오르려는 내 욕심을 내려놓고, 옆으로 넓어지면서 주님의 뜻을 깨닫고 주변을 돌아보려는 마음의 여유를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주님과의 생각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또한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분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위로만 높아지려는 인생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면서 옆으로도 넓어질 수 있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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