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4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믿음의 가문을 세우라
설교 본문 : 여호수아 24장 14-21절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20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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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호주의 닉 부이치는 팔다리가 없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서 여덟살 이후 3번이나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암울한 한 때를 보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하기 어려웠던 닉은 더 이상 부모님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열 살 때 물이 가득 찬 욕조에 고개를 담근 채 나오지 않으려 했습니다. 물속에서 정신을 잃기 직전, 닉의 눈앞에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짓궂은 아이들의 시달림에 서럽게 우는 자신을 끌어안고 “닉, 너는 누구보다도 가치있고 특별한 존재란다. 몇까지 사소한 신체 조직이 없을 뿐이야”라고 말해주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나씩 이뤄 나갔습니다. 닉의 부모님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닉과 함께 하며 그가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인지 늘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닉의 모습 앞에 전 세계의 수백만 명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희망과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닉에게도 어머니가 물려준 믿음이 그 인생을 변화시켰고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여호수아가 고백하고 있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가문을 세워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과거를 청산해야 합니다.
믿음의 가문을 세우기 위하여 제일먼저 과거를 청산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라고 합니다(14절). 과거에 대하여 치워 버리지 못한 것이 있다면 여호와만을 섬길 수 없습니다. 과거의 것들을 치워 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온 사람들은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우상숭배를 배운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을 보면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우상숭배로 죽어간 부모들의 잘못된 습관이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유전이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과거의 것들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온전함과 진실함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14절). 오늘 우리가 보는 개혁개정판의 온전함이 이전의 개혁한글판에는 성실함으로 나와 있습니다. 과거의 것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성실해야 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성실하지 못한 믿음은 과거의 것들이 남아서 주님을 향한 섬김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완벽해져서 온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성실함이 온전함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또한 진실함은 견고함, 확실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과거의 것들이 끓임없이 우리를 유혹에 올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이 있어야만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것을 청산하고 주님을 섬기는 우리의 삶의 자세가 성실하며 견고할 때 우리는 주님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섬기는 최소의 단위는 가정입니다.
여호수아가 고백하는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말은 우리 귀에 익은 말씀입니다(15절). 이 구절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섬기는 최소의 단위를 가정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가정이 합력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기 원하십니다. 오늘 여호수아가 한 말은 단순히 청중들을 감동시키기 위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한평생 그의 가정이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의 말에 엄청난 영적인 파워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오직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고백에 “나와 내 집”를 동등하게 놓고 있습니다. 한 집안이 주님만을 섬기기 위해서는 그 집안의 한 사람에게 믿음의 씨앗이 떨어져야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자신의 집안에 믿음의 씨앗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도 간수장이 바울에게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까?” 라고 물어보았을 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고 답변을 합니다(행16:31). 여기서도 “너와 네 집을” 동등하게 놓고 있습니다. 간수장이 믿음의 씨앗이 되어서 그 집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예배들 중에 저에게 기쁨을 주는 예배중의 하나는 자녀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예배가 그 어떤 예배보다 힘들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목회자로서 많은 예배를 드리다보니 집에서는 쉬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유혹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가정예배 시간에 자녀들을 혼내는 시간이 되어서 예배를 실패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세 번째 이유는 예배 시간에 주님만을 바라보지 못한 점입니다. 영어로 예배를 드리고, 성경 공부식으로 예배를 드리다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옛날 서대문 영천시장은 콩나물 장수가 많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새벽마다 콩나물 통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는 길에 교회에 들러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아주머니의 인생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자식들을 믿음으로 성장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아주머니는 아들을 훌륭한 사업가로 키워냈습니다. 아들은 훗날 큰 제약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그의 어머니가 매일 새벽에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던 일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의 자기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벽 교회 종소리가 연상되도록 자신의 제약회사 심벌마크를 종으로 정했습니다. 그 회사는 빠르게 급성장하여 이름만 대도 누구나 다 알만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근당제약회사입니다. 어머님의 믿음은 이렇게 자녀들에게 이어져 내려가며 믿음의 집안으로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심지어 믿음조차도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합니다(15절).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어 그분을 믿는 것까지도 우리 인간의 선택에 맡기셨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여 예배드리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최고의 선택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선택한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선택에 대하여 도전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인생도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가장 큰 선택은 가나안 정탐이후의 선택이었습니다. 10명의 정탐꾼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의 선택을 하였습니다. 이 선택이 여호수아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의 첫 성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기생 라합도 중요한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러 오는 이스라엘 족속이냐?”, “여리고성을 지켜야 하는 자신의 동족 가나안 거민이냐?” 이 사이에서 엄청난 고민을 하였을 것입니다.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 족속도 자신의 동족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기생 라합과 그의 가정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그의 이름은 예수님 족보에 올라가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사람 사이의 선택이 아닙니다.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선택인 것입니다.
히말라야에서 의료선교를 하는 78세의 강원희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강선교사님은 그의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선택이 주님을 섬기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1.4후퇴 때 그는 함경북도에서 믿음의 자유를 선택하여 월남하였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가 된 이후에 병원을 개업하고 가장 잘나가던 40대 중반에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됩니다. “생선의 머리나 꼬리가 아닌 가운데 토막이 가장 귀하듯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을 주님께 드리고 싶다”는 믿음을 가지고 선교사로 선택을 합니다. 세브란스 의료선교사 1호로 가난한 몇 나라를 순회하다가 최종적으로 네팔을 선택하여 정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간호사 출신 최화순 선교사님으로부터 어깨의 통증을 견디지 못하여 주사를 맞으면서도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믿음의 선택을 하는 삶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실과 견고함으로 과거를 청산하고 주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최소단위는 가정입니다. 가정의 제단을 통하여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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