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31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감사와 영광
설교 본문 : 고린도전서 10장 23-33절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0. 들어가는 글
탈무드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합니다(31절). 저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데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속에서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을 시키면 실제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30절에서의 감사와 31절에서의 영광도 서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속에서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 주는 마음
고린도 교회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내부간의 갈등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부간의 갈등이 많을수록 감사하는 일에 제일 방해가 됩니다. 서로의 갈등 속에서 마음이 상하는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예수파등 여러 파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파당이 각종 문제를 놓고 많은 다툼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는 무엇입니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주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도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는 것에 대하여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그러나 교회생활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복음성가를 좋아할 수 있고, 어떤 분은 찬송가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통성기도를 좋아하고, 어떤 분은 조용한 기도를 좋아합니다. 어떤 분은 경건하고 엄숙한 예배를 좋아하고, 어떤 분은 기쁘고 활기찬 예배를 좋아합니다. 신앙의 성향에는 절대적인 선은 없습니다. 다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면 됩니다.
한국 교회는 단기간에 참으로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갈등과 분열로 인하여 가장 많은 교단과 교파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만이 구원의 진리라는 것을 인정하면 교단과 교파의 장벽을 넘어서고 싶은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진보냐? 보수냐? 라는 이념도 예수님보다 더 앞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지역, 학력, 인종, 국가도 예수님보다 더 앞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예수님보다 더 앞세우는 것이 있다면 신유대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요나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것보다 자신의 민족에 대한 감정을 더 앞세웠던 유대주의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유대주의가 되지 아니하기 위하여 관용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빌립보서에서도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합니다(빌4:5절). 관용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다르더라도 그 차이를 인정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관용적 태도는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나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있습니다. 이런 관용의 태도가 사람들의 증오와 폭력 그리고 완고함을 줄이고 친절한 태도와 이해심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통하여 영광을 돌릴 수 있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의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2. 덕을 세우는 믿음
오늘 23절 말씀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가하다” 라는 말은 합법적이다. 즉 합법적인 행동을 한다고 그 행동이 유익한 행동이요, 덕을 세우는 행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합법적인 것보다 덕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본문의 배경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에는 많은 우상 신전이 있었고, 우상에게 바치는 제물도 막대했습니다. 그 제물을 신전에서 다 소화하지 못해 결국 신전 뒷문을 통해 시장으로 나와 팔렸기 때문에 시장에서 고기를 사면 태반이 우상숭배에 쓰였던 제물의 고기였습니다. 그 고기를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우상숭배한 제물이니까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모든 식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문 25-26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후자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서 이 일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중에 어떤 약한 그리스도인이 특정한 음식이 제물이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면 성도는 그것을 알게 한 자와 자신의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28절). 만일 그 말을 듣고도 그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이 제물임을 가르쳐준 사람은 그 약한 믿음이 그 일로 인해 상처받아 실족할 것이며 그에 대한 책임은 제물을 먹는 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은 제물을 먹는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상과 교류해도 괜찮은 것이 아닌가?”, 혹은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우상 숭배자가 아닌가?” 하는 등의 오해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을 받으면 감사가 사라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개척교회를 하면서 성급하고 조급했던 제 자신이 기다림에 대해서 배워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청소년부 수련회를 참여하면서 너무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청소년부를 위해 기도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청소년부 학생들이 매년 매년 신앙이 아름답게 자라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찰 정도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처음에 우리 청소년부 학생들이 숫자도 적었고 믿음도 전혀 없는 아이들처럼 판단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매년 기다림 가운데 주님이 자라나게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운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 춘추전국시대에 천하를 주름잡았던 세 인물이 있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들입니다. 어느 날 현자가 그들에게 울지 않는 앵무새를 보여주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제일 먼저 오다는 “울지 않거든 죽여버리자”고 했으며, 다음으로 도요토미는 “울지 않거든 울게 만들자”고 했고, 마지막으로 도쿠가와는 “울지 않거든 울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그때 현자는 도쿠가와에게 언젠가 천하를 통일할 것이라 말하고는 그 앞에 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울지 않거든 죽여버리자”의 오다는 성급하고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로 실패할 것이며, “울지 않거든 울게 만들자”의 도요토미는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권모술수의 인물로 실패할 것이며, “울지 않거든 울 때까지 기다리자”의 도쿠가와는 인내를 가지고 때를 기다리는 인물로서 성공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자의 예측대로 도쿠와는 전국 시대를 평정하고 막부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기다리며 기도할 때 덕을 세울 수 있는 은혜로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3. 배려하는 믿음
오늘 32절 말씀에서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거치는 자는 거침돌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바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해서 모든 것이 가하나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하여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척하여 하나씩 하나씩 세워가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게 됩니다. 개척교회를 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픈 일이 있다면 우리 교회의 신앙을 판단하는 무례함입니다. 개척교회인 우리교회의 신앙수준이 떨어진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자신의 수준은 믿음이 높은데 우리교회 수준은 믿음이 낮아서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속에는 자신이 제일인줄 알며 다른 사람을 향하여 배려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바로 ‘배려’라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장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부분도 ‘배려’입니다. 진정한 배려는 내 생각대로가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관찰하며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배려는 나를 잘 배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의 말씀처럼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내 몸처럼 귀하게 여기며 배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려의 성품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진정한 리더가 되어 감사가 넘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지난주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막대한 피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배려하지 않은 결과들이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기 전에 배려의 성품으로 세상을 품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배려가 부족한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정말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배려를 배워가고 싶습니다. 배려의 마음을 배우기 위해서는 완벽을 추구하지 말고 인생을 80 퍼센트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팔분복의 원리라고 합니다. 즉 배를 8할 정도 채우는 복입니다. 인생을 80퍼센트만 채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진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남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으며 배려하는 마음으로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감사가 넘쳐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하여 제일먼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 주는 관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성급히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아니하고 기다리며 기도를 통하여 덕을 세우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팔분복의 원리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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