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8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
설교 본문 : 사도행전 13: 1-3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0. 들어가는 글
기록적인 9월 폭염에 전국이 헉헉되고 있습니다. 사상 최악의 정전사태를 부른 늦더위가 국민들의 진땀을 빼게 만든 한 주였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픈 일중의 하나가 정들었던 성도들과 헤어지는 일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중 가장 큰 스트레스들 중의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이사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떠날 때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과연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느냐?” 는 것입니다. 그 기도에 대한 성령님의 감동하심은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본받으라” 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보니 교회에서 가장 유능했던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있습니다. 정말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교회를 위해서 이 두 사람을 보내면은 안된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가장 유능했던 두 사람을 선택하여 선교사로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보다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묵상하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떠나는 성도님들을 잘 보내는 것도 귀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과 교회의 가장 우선적인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은혜 받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안디옥 교회가 왜 건강한 교회인가?
교회가 얼마나 건강한가를 알기 위해서는 많은 기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사람들이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교회의 구성원과 지도력은 세상의 기준과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보면은 교회 구성원들 중에 지도자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 사이에 세 명의 특별한 인물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나바 다음으로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나오고 있습니다. 니게르라는 뜻은 ‘피부가 까무잡잡한 흑인‘ 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인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을 지도자로 모시고 최대한도로 예우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구레네 사람 루기오가 소개됩니다. 역시 아프리카 출신입니다. 이 지도자는 스데반 순교로 예루살렘에서 피하여 안디옥에 가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보다 시므온과 루기오를 앞에다 내세우고 소개합니다. 귀족보다 흑인들을 더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세상의 신분이나 위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는 빈부귀천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오직 믿음만 보는 것이 건강한 신앙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 소개됩니다. 이 헤롯은 ‘헤롯 안디바‘입니다. 주전 4년부터 주후 39년까지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을 다스린 분봉왕이었습니다. ’젖동생’은 ‘함께 양육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마나엔의 어머니가 헤롯의 유모였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젖형제가 자라서 한사람은 세례 요한을 죽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은 악명 높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인 왕에 올랐지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 한사람은 귀족이라는 세상의 영광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고 안디옥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땅에 것은 포기하였지만 하늘 영광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느 길을 가시기를 원하십니까?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더 복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2. 교회는 무엇을 섬겨야 하는가?
안디옥 교회 형성 과정을 보면 피난민의 교회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고 흩어졌을 때 세워졌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지금의 시리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함으로 안디옥 교회가 이루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받아서 떠났기 때문에 안디옥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나그네였습니다. 집을 떠나 가진 것 없이 나그네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피난 온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박한 심정으로 오직 주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신앙을 견고하게 세우는 것은 좋은 삶을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생활환경이 좋아지면 신앙생활을 잘 할 것 같아도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생활이 불편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피난민 의식 속에는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참으로 건강한 이유는 피난 나온 그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의 유익만을 구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오늘 2절 말씀을 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께서 이르시되” 라고 나옵니다. 주를 섬기는 것이 안디옥 교회의 사명이자 비전이었습니다. 금식하는 이유, 기도하는 이유, 예배드리는 이유, 구제하며 봉사하는 이유가 모두 주를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들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예배를 드려도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주를 섬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구하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인들이 주를 섬기기 위하여 기도할 때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비전을 주신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는 교회에서 주님을 위해 보내는 교회로 성숙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저는 왜 이스라엘 땅에 갈릴리 바다와 사해 바다를 동시에 주었는지 묵상하게 됩니다. 갈릴리 바다는 각종 물고기가 살아있는 생명의 바다입니다. 그러나 사해바다는 어떤 생명도 살지 않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갈릴리 바다는 위에서 받는 물을 아래로 흘러 보내기 때문에 생명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해바다는 위해서 물을 받지만 흘러 보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죽음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주님으로부터 받으려고만 하고 나누려는 마음이 없다면 죽은 신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교회의 진정한 사명
안디옥 교회를 향한 주님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것입니다(2절).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함입니다. 안디옥 교회 입장에서는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가장 믿음이 좋은 두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순종하였습니다. 안디옥 교인들이 인간적인 마음을 버리고 주님을 위하여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1장 26절에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고 합니다. 안디옥 교인들이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을 받아서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선택 기준은 “자신의 유익보다도 어느 것이 주님을 위하느냐?” 입니다. 독일의 본회퍼 목사님이 이것을 한 마디로 “오직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오직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 거 하였습니다. 믿음은 오직 순종 속에서만 존재하고 순종 없는 믿음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도 순종이고 선교도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마지막 주님의 지상 명령을 남기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는 것입니다(마28:19). 우리는 주님의 지상 명령에 믿음을 가지고 순종을 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심한 박해가 있어서 교인들이 흩어졌습니다. 이런 박해가 한창이던 어느 날 빌립에게 주님은 “숨어 있으라”가 아니고 오히려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빌립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고 합니다(행8:6,7).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빌립은 내성적이어서 말도 어눌하고 기적을 행한 경험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전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마리아에 갔더니 그의 입에서 말씀이 나오며 귀신도 떠나고 병도 고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순종하며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전도를 마치고 숨도 고르기 전에 주님은 또다시 명령합니다.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고 합니다(행8:26).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가 되어서 순종할 수 있는 명령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자신의 판단을 접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광야로 갔을 때 주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계획이 있었습니다. 광야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길을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담당한 내시가 성경을 읽으면서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아프리카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할 때 빌립에게 이런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빌립을 전도의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모습 속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바나바와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움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는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기준으로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의 선택과 결정은 어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기 위한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