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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 10월 2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1-10-02 추천 0 댓글 0 조회 262

2011년 10월 2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

설교 본문 : 열왕기 상 19: 9-14절


0. 들어가는 글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0. 들어가는 글

가을이 더욱더 깊어지는 10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더욱 더 갈망하게 됩니다. 주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최근에 <다시 듣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제가 주님의 음성을 바르게 듣고 사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시 듣기>의 저자는 예수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라고 하셨을 때 여기에서 ‘듣는다’는 히어링이 아니라 ‘리스닝’이라고 합니다. 양이 다른 사람이 아닌 목장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들려오는 대로 다 듣는 ‘히어링’이 아닌 목자의 음성을 선별적으로 듣는 ‘리스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리스닝’ 이라고 한다면 훈련을 통한 발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훈련과 경험을 통해 더 뚜렷하게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목자의 음성을 더 잘들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의미?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분명한 사실은 청각적으로 듣는다는 범위를 넘어 성경, 환상, 환경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까?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엘리야가 우리들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혼자의 몸으로 갈렐산에서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 850명과 대결하여 승리를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이세벨에게 쫓겨서 광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낙심하여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하였습니다(왕상19:4).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대단한 권능을 행하였지만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낙심하여 죽기를 구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고자 하였을 때 도망치기에 급급하여 전혀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왕상19:2). 인생의 위기가 닥칠수록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더욱 더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죽고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습니다(5절).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처럼 주님의 위해 충성하고 봉사하면서도 주님의 뜻을 모르면 몸과 마음이 지쳐서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올 한해도 우리는 주님께 충성하여 결실의 계절에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모르면 열매는 고사하고 지치고 힘든 마음만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올 한해가 최근 몇 년 동안에 비하여 무척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무언가 열심히는 하는 것 같은데 열매는 잘 나타나지 않고 그러다 보니 다른 해 보다도 몸과 마음이 더 지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지친 몸과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휴식을 취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휴식을 취하여도 또 다시 반복되는 것입니다. 엘리야처럼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휴식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알 때만이 궁극적으로 해결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가장 큰 방해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가장 큰 방해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엘리야가 죽고 싶을 만큼 영적인 침체에 빠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오직 나만 남았거늘” 이라고 합니다(10절). 이처럼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지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가장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었을 때는 언제입니까? 아합 왕에게 가뭄을 예언하고 그릿 시냇가 숨었을 때였습니다(왕상17:3). 그릿 시냇가에서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릿 시내가 가물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사렙다 과부에게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세벨 왕비가 두려워서 광야로 도망친 것이 그릿 시냇가 상황과 비슷합니다(4절). 그러나 정반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죽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자는 엘리야가 갈멜산 사건 이후 교만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더 큰 이유는 바로 엘리야와 이세벨과의 관계 속에 있습니다. 엘리야의 마음속에 분노가 자리 잡자 하나님의 음성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왜 하나님을 대적하며 죄악을 범하는 이세벨은 남겨두고 하나님께 충성되게 살아가는 나는 광야까지 쫓겨 왔는가?” 입니다. 4절 후반부를 보면은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체험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분노, 원망, 미움 등 자신의 감정까지 모든 것을 비워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우지 못하면 자신의 입장에다 하나님의 뜻을 가져다 맞추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엉뚱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비우면 비울수록 하나님의 음성은 더 분명하게 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음성은 분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한 가지로 들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네 종류의 음성을 들려주었습니다. 처음엔 강한 바람소리였습니다(11절). 다음은 지진 같은 굉음이었습니다(11절). 다음에는 불이 타는 것 같은 소리였습니다(12절). 마지막에 세미하고 부드러운 소리였습니다(12절). 엘리야가 들었던 이 소리들은 하나님이 들려주는 음성의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은 다양한 방법으로 들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잘 알기 위해 제일 먼저 영적인 분별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지 도우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에서 분별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책 내용 중에 “사탄의 목소리는 강하고 급하며 강요한다. 사탄은 늘 어떤 위기 상항으로 우리를 몰고 가서는 우리로 어떤 행동을 급히 하게 만든다. 반면 하나님의 음성은 조용하지만 일관성 있고 우리에게 잠시 물러나 조용히 기다리면서 듣도록 권면하신다. 우리 목자 예수님은 이끄시지만 사탄은 쿡쿡 찌르며 몰아간다.” 고 합니다. 조지 도우슨의 글을 읽어보면 영적인 분별 중에 기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처럼 강요하는 성품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인도하시는 성품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두 번째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다시 듣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네 차례나 다시 듣도록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무엘, 예레미야, 기드온, 바울 등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올 때까지 겸손한 모습으로 반복해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기를 반복하는 것은 우리의 불온전함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원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서 가장 중요한 마무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영적으로 느끼는 강력한 확신과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확신은 있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에 자꾸 불안이 밀려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또한 마음이 평안하다고 하면서 영적인 확신이 없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또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두려움의 의미는 “하나님의 예상치 못한 인도하심에 과연 내가 순종할 수 있을까?”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는 원하고 있으나 제한된 마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들을 들여다보면서 아직도 제 인생의 핸들을 주님께 완전히 내어 드리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들 또한 주님 안에서 깨어지길 소망하며 더 친밀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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