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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려고 하느냐? / 마태복음 11장 7-12절/ 10월 30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1-11-03 추천 0 댓글 0 조회 793

2011년 10월 30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무엇을 보려고 하느냐?

설교 본문: 마태복음 11장 7-12절


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0. 들어가는 글

성도님들의 기도 가운데 중국 선교를 은혜롭게 잘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종교 개혁 주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주님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세례 요한이 옥에서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맞는지를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지금 되는 일들을 보고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자 예수님은 무리에게 “세례 요한에게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7절). 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 요한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 이후로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이 던진 질문 중 우리는 무엇을 보려고 하는지 살펴보고 진정 바라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무엇을 보려고 하는가?

1-1.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우리 주님은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라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실례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고 묻습니다. 여기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의미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이리 저리 자기의 소신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갈대처럼 이리 저리 소신을 바꾸는 이유는 오직 자신의 안위와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철새 정치인들이 많습니까! 세례 요한은 죽음 앞에서도 소신을 꺾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의 가문에서 태어난 자로 그저 그 시대의 흐름에 조용히 따르기만 해도 세상에서의 부귀와 명예가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삶을 버리고 광야로 나가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성공하기 위해 세상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소위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처럼 성공한 교회가 복 받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본질에 대해서까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화려하지 않더라도 말씀에 서 있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1-2.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두 번째 실례는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입니다(8절).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는 말씀을 통하여 부드러운 옷은 왕족이나 정치가, 귀족을 일컫는 말입니다. 뉴욕 월가에서 일어나는 1%대 99%의 저항을 보면은 상위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치와 허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은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부드러운 옷을 입고 사치와 허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눅3:11). 부드러운 옷을 입고 세상의 화려함으로 포장된 그 실체의 모습이 무엇인지 우리는 바르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1-3.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마지막 실례로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입니다(9절).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옳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흔들리는 갈대도 아니요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도 아닌 참된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선지자로서의 역할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며 백성들의 죄를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특별한 점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고 합니다(11절). 여자가 낳은 자는 구약시대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세례 요한이 구약시대의 인물들 중 가장 훌륭한 자라고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천국은 죽어서가는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운동입니다. 세례 요한이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자이지만 지금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대한 자라도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라도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한 자는 그보다 크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있는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절). 여기서 천국은 역시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적극적인 열망을 가지고 찾고 부르고 소망하는 자들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자들이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세상의 것을 얻기에 더 분주한 자들은 결단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침노하는 자들의 모델을 성경에서 직접 보여줍니다. 제일먼저 12년 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입니다. 혈루증이라는 부정한 병을 앓던 여인은 수많은 의원들을 찾아갔지만, 아무런 성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동안 많은 재산을 날리고 상처를 경험했습니다. 공동체의 소외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기 위해 지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을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옷만 붙들어도 병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혈루증은 부정하여 사람을 접촉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예수가 지날 때, 그녀는 몰래 그분 옷을 만졌습니다. 그녀는 천국을 침노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그녀의 피를 마르게 했습니다. 병이 치유되었습니다. 부정한 그녀는 천국을 빼앗았습니다.


두 번째 모델은 맹인거지 바디매오입니다. 여리고 지방에 살던 맹인거지였던 바디매오는 동료와 함께 구걸로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여리고에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맹인 거지로 살아오면서 춥고 배고픈 것은 둘째 치고, 자신을 죄인 취급하던 사람들의 경멸과 소외감. 그에게는 너무나 컸습니다. 그는 어디계신지도 모르는 예수를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의 욕이 쏟아졌습니다. '조용해라! 시끄럽다!' 군중들의 욕? 그것은 이미 안중에 없습니다. 이것은 천재일우의 기회이므로. 그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자신이 평생 질러보지 않은 가장 큰소리로 예수를 불렀습니다. 예수께서 멈춰 서서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는 천국을 침노했습니다. 그는 소리질러 천국을 침노했고 그것을 빼앗았습니다.


마지막 모델은 수로보니게 여인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이 귀신들려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두로 지방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녀는 예수를 찾아갔습니다. '주님 내 딸이 귀신들렸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자녀의 떡을 개들한테 던지는 것은 마땅치 않다'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넌 천국의 자격이 없잖아.. 그리고 난 마술사가 아냐'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놀랍도록 천국을 침노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여 그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자격 없음을 알았습니다. 또한 부스러기만큼의 작은 예수의 능력이라도 충분히 자신의 딸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그녀는 예수를 크게 보았기에 부스러기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천국을 침노하고 빼앗았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 청년으로부터 선물 받아서 읽었던 <둘로스> 라는 책을 보면 자동문 원리가 나옵니다. 비서구인으로 최초의 둘로스 선교하는 배의 단장이 되었던 최종상 선교사님의 신앙 고백입니다.
멀리서 보면 자동문은 닫혀 있습니다. 하지만 문이 닫혀 있어도 우리는 계속 걸어가야만 합니다. 그러다가 센서가 물체를 감지하는 지점에 이르면 그 문은 자동으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닫혀 있는 문을 멀리서 보고 그 자리에서 문이 닫혀 있다고 그냥 서 있기만 하면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닫힌 문을 향해 믿음으로 걸어갈 때 하나님 나라가 열리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을 침노하는 믿음은 주저앉아 있거나 서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갈 때 믿음의 센서가 작동하여 닫혀있는 천국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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