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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된 병자/ 요한복음 5장 1-9절/ 12월 11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1-12-14 추천 0 댓글 0 조회 1594

2011년 12월 11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38년 된 병자

설교 본문 : 요한복음 5장 1-9절


1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요한복음에는 7가지 기적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기적은 세 번째 기적에 해당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요한복음에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표적이라고 합니다. 바로 앞장에서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두 번째 기적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은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고 합니다(요4:54). 요한복음에서 매우 일관성 있게 사용하는 표적은 영어로는 ‘SIGN’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천안이나 대전 같은 ‘사인’ 간판을 보게 됩니다. 그 사인 간판은 그 자체가 천안이나 대전이 아니라 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요한복음의 표적들은 표적 그 자체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얻게 하는 일에 더 큰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요20:30,31). 오늘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신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하시고자 하는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유대인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심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때는 명절 기간이었습니다. 1절을 보면은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하는 3대 명절이 있었습니다. 유월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명절은 칠칠절로 생각합니다. 본장의 마지막 45-47절을 보면은 모세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모세가 칠칠절에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런 큰 명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흩어져 살던 모든 곳에서 할 수 있으면 예루살렘으로 모여 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도성은 한 주간 동안 거대한 축제의 마당이 펼쳐집니다. 그리웠던 사람들과 만나서 풍성한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음악 속에 춤을 추면서 삶에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즐거운 잔치 마당에서 예수님의 눈은 외롭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3절을 보면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더니” 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관심이 어느 곳에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도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서 주님이 주목하는 사람들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 남지 않는 성탄절이 유대인의 명절보다 더 화려한 명절이 되었습니다. 이런 성탄 명절에 우리의 눈이 어느 곳으로 향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눈을 본받아 우리들보다 더 낮은 곳으로 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2. 예수님과 38년 된 병자와의 만남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 중 특히 한 사람을 주목하셨습니다. 바로 38년 된 병자였습니다(5절). 38년 된 병자는 양문 곁 베데스다 못에 있었습니다. 양문은 양을 제물을 바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들어 다니다보니 그렇게 불리게 되었습니다. 베데스다 못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병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간헐천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베데스다 못에서 물의 움직임을 기다렸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 전승에 “새해에 천사가 어떤 지역의 물을 동하기로 예정되어 있으며 이 때 제일 먼저 그 물속에 들어간 자는 병에서 놓임을 받게 된다” 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다른 간헐천에 비해 각종 질병에 매우 효험이 있었기에 이런 전승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38년 된 병자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제일먼저 38년 된 병자의 고통 받은 기간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 38년과 연결을 짓고 있습니다. 광야 생활이 40년이지만 서론과 결론을 빼면 정확히 본론은 38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생활은 어떤 기간입니까? 방황과 좌절과 절망의 기간이었습니다. 이처럼 38년 된 병자도 방황과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황과 좌절과 절망의 기간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오늘 말씀에서 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베데스다 못에서 그 이름의 뜻처럼 자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38년 된 병자가 그 많은 세월 속에서 포기하지 아니하고 병을 고치려는 끈기와 인내와 소망의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너무나 감동을 받은 부분입니다. 사실 십년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삽 십년 하고도 팔년을 더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사신 기간보다도 더 많은 기간입니다. 38년 동안 자신의 병을 고치려고 낙심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한 열정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결국 38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도함으로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 응답이 조금만 지체되어도 너무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지 돌아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천사가 전해준 것을 믿고 있습니다. 4절에서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의 의미는 천사가 전해준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는 천사가 물을 움직일 때 들어가고 싶으나 병이 깊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메시지를 통하여 우리들은 율법조차도 지킬 수 없는 죄악으로 병든 영혼들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자체에는 치유를 받거나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그 어떠한 능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3. 무엇으로 고침을 받을 수 있는가?

드디어 예수님과 38년 된 병자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성경의 놀라운 사건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일어났습니다. 다섯 번 결혼하였던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과 기도의 대화를 많이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질문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6절) 예수 그리스도는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시고 그가 병이 벌써 오래된 줄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환자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지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환자에게 병이 낫고자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고칠 능력이 있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병자가 대답합니다. 물이 동할 때 자신을 도와줄 자를 찾고 있습니다(7절). 마가복음 2장에서 나오는 중풍병자에게는 그가 치료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네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 절의 38년 된 병자에게는 병이 너무 오래된 상태라서 그런지 도와줄 가족, 친지, 친구들마저 없었습니다. 예수가 그에게 “낫고자 하느냐” 고 물었을 때 그는 예수가 그의 병을 고쳐주실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각은 온통 물이 동할 때 그 못 속으로 들어가는 일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단지 예수를 재빨리 못에 넣어줄 조력자요, 보조자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조력자나 보조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우리를 도와주는 조력자나 보조자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 되며,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고 말씀을 선포합니다(8절). 38년 된 병자가 오직 말씀의 권세와 능력을 통하여 일어나 걸어가고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에게 물이 동할 때 넣어주도록 도움을 바랬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권세와 능력으로 일어나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지 도움을 받는 것보다도 말씀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야 함을 너무나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C. V 게오르규는 ‘25시의 삶’ 에 대해 말했습니다. 25시의 삶은 24시간으로 끝나야 하는 일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삶입니다. 바로 38년 된 병자의 삶이 25시의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24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뭔가 끝나지 않아서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힘들게 하는 삶이 25시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25시의 삶이 끝나고 새날이 와야 합니다. 25시의 지친 삶을 끝내고 새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38년 된 병자에게 나타난 것처럼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도 여기에 와서 38년 된 병자처럼 도움만을 바라고 있다면 25시의 지친 삶을 끝낼 수가 없습니다. 말씀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야만 지친 삶을 끝내고 일어나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모든 성도님들이 끝나지 않는 25시의 지친 삶들을 말씀의 권세와 능력으로 끝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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