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8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변화의 열매
설교 본문 : 창세기 33장 1-14절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0. 들어가는 글
2012년 새해 한주간이 지나고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새해에도 우리 사회에 변함없이 이어지는 가장 큰 문제들이 있습니다. 취업 전쟁으로 인한 청년 실업문제, 입시 전쟁으로 인한 과잉 교육의 문제,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의 문제, 생명 경시 풍조로 인한 자살률 증가의 문제로 한국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문제의 뿌리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 뿌리는 바로 세상의 지나친 경쟁으로 만들어낸 결과들입니다. 취업 경쟁에서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좋은 스펙을 필요로 합니다. 좋은 스펙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입시 경쟁이 사교육과 조기 유학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현상은 과도한 경제적 부담감으로 저출산과 기러기 아빠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결과는 가정의 근간을 흔들며 사회 붕괴를 초래하여 자살률 증가로 나타납니다. 교회는 지나친 경쟁 사회에서 숨이 막혀 허덕이는 세상풍조에 휩쓸려가지 아니하고 무언가 다른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 대안으로 오늘 말씀에서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갔던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속이고 도망치는 삶을 반복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던 그가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오직 경쟁만 하며 살았던 야곱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 살펴 볼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됨.
경쟁만 하며 살았던 야곱의 변화된 모습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를 변화시켰던 사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로부터 축복권을 받았지만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보내면서 가정을 이루고 많은 부를 축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여러번 속였던 외삼촌 라반을 그도 역시 속이고 밤에 몰래 도망을 칩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데 경쟁자였던 에서가 사백명의 군사를 데리고 온다는 소식에 심히 두렵고 답답했습니다(창32:7). 야곱은 얍복 나루터에서 모든 것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서 밤이 맞도록 축복해 달라고 천사와 씨름을 합니다. 그 씨름의 결과로 허벅지 관절이 부러져서 절게 되었지만 야곱은 그 곳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다는 브니엘의 신앙 고백을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마친 후에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고백에 있습니다(창32:30). 야곱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면서 생명의 주관자가 진정 하나님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 것입니다. 자신을 살릴 수도 죽일 수 도 있는 분은 사백명의 용사를 거느리고 오는 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변화된 야곱의 첫 번째 열매는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얍복 나루터의 체험 이후에 그의 입술에 은혜라는 고백이 떠나지 않습니다. 오늘 5절 말씀에서도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8절, 10절, 11절, 15절에서도 그의 입술의 고백은 오직 은혜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은혜를 알았다는 것은 축복의 개념이 달라진 것입니다. 자신이 경쟁하고 노력하여 성취하는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진정한 축복인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다는 것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자 야곱은 오히려 경쟁자인 에서에게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해에 우리들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되어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될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얼굴처럼 보임.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된 야곱은 자신의 경쟁자였던 에서와 드디어 화해를 합니다(4절). 정말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한 핏줄을 가진 남과 북이 화해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꿈꾸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화해의 장면에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라는 고백을 합니다(10절). 야곱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면을 한 브니엘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창32:30). 만약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없었다면 이 고백은 사람의 비위를 마치는 비굴한 고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겸손하게 화해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먼저 하나님을 대면하는 깊은 은혜의 체험이 있을 때 사람들과 화해와 용서가 가능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경쟁자의 얼굴을 하나님의 얼굴처럼 본 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까? 야곱이 경쟁자의 얼굴을 하나님의 얼굴로 볼 수 있을 만큼 은혜를 받아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이 은혜를 받아 변화될 때 상대방의 얼굴도 달라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딸이 가끔 저를 찔리게 하는 말을 합니다. 어느 날 아침에 딸에게 무엇을 시키니까 “자기에게 명령하듯이 말하지 말고 부탁하는 것처럼 말하세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딸의 말이 섭섭하여 위로받고 싶어서 아내에게 이 말을 전하니 “당신은 군대 체질로 딱 맞다”는 것입니다. 괜히 아내가 더 얄미워지더라고요. 그런데 다음날 딸과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또 다시 “아빠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먼저 변화되세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연타석으로 딸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이니 참으로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새해에는 제 자신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체험을 통해 더욱더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 모습에서 하나님의 얼굴 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바로 용서와 화해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나서 화해와 용서를 이루어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3. 자신보다 더 연약한자에게 맞추는 걸음(14절)
야곱은 에서가 함께 동행하자는 제안을 정중히 사양을 합니다(12절). 야곱은 에서와의 동행을 거절하면서 진정 경쟁에서 자유로운 몸이 됩니다. 야곱이 에서와 동행을 거절한 이유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기” 위함입니다(14절). 이 마음이 야곱의 가장 변화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하여 앞만 바라보며 질주하던 야곱이 자신보다 더 연약한 자를 배려하여 함께 갈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가장 크게 은혜를 받은 사람은 세상의 높은 곳만 바라보며 올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낮은 곳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눈높이와 걸음에 맞추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높이와 걸음에 맞추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배려입니다. 예수님은 죄인 된 인간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눈높이와 걸음을 맞추기 위하여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가장 위대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즐겁게 읽었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안타가운 마음이 듭니다. 이 책의 내용은 경쟁에서 승리하여 이겨야 한다는 것을 부추기는 내용입니다. 그것도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서 말입니다. 일본 교과서는 우리와 내용이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고 합니다. 늦게 가던 거북이가 잠자고 있는 토끼를 보자 깨워서 함께 달려가 골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이 한국보다 협동심이 높나 봅니다. 또한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도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여름철에 노느라고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지 않은 베짱이는 추위에 죽게 되고 열심히 준비한 개미는 추운 겨울이 와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책의 내용도 남보다 경쟁하여 더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개미가 고통을 당하는 베짱이를 도와주는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경쟁하여 이긴 승자의 논리입니다. 만약 성경적인 논리였다면 준비한 자가 준비하지 못한 자를 도와서 함께 겨울을 나게 되고 다음 해부터는 모두 열심히 준비하게 된다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들의 삶인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말씀의 증거로 요셉은 애굽의 노예로 팔렸지만 결국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풍년 칠년의 때에 준비하여 흉년의 칠년의 때에 자신만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곳간을 열어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요셉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세상은 경쟁을 통한 일등 제일주의가 만연합니다. 그러나 교회만큼은 나보다 더 연약한자와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갈 수 있는 은혜와 배려가 역사하는 곳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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