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2일 주일설교
설교 제목 :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설교 본문 : 창세기 50장 15-21절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0. 들어가는 글
우리는 설 명절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새해를 시작합니다. 한해가 가고, 한 해를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 오늘 분문을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50장 전체 구조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창세기 50장에는 두 사람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오늘 분문의 앞부분에는 야곱의 죽음이 나와 있습니다(1-14절). 그리고 오늘 본문의 후반부에는 요셉의 죽음이 나와 있습니다(22-26절).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의 세대가 죽고, 또한 우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사이에서 이 땅에 발을 붙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야곱과 요셉의 죽음을 다루는 사건 사이에 놓인 오늘 본문의 말씀이 죽음 사이에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죽음 사이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용서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오늘 말씀에서 요셉의 형들이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요셉이 형들을 다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형들이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죄책감으로 인한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15절).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은 이후에 그 두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 영혼들이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이미 용서를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들이 진심으로 주님의 용서하심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형들에게 야곱이 ‘내 아버지’가 아니라 ‘당신의 아버지’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16절). 우리들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바로 내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죄사함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용서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이미 용서를 했음에도 죄로 인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용서를 받기 위해 자신의 죄를 친히 직면하여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형들은 요셉을 직접 만나지 않고 전령을 통해서 말을 전하였습니다(16절). 그러나 그 이후에 형들이 요셉에게 친히 찾아와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18절). 형들이 전령자만을 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친히 찾아와서 엎드려 용서를 구했을 때 드디어 매듭이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컴퓨터 자판기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Delete(삭제) 기능입니다. 잘못된 것을 삭제하는 기능이 없다면 아무리 거창한 컴퓨터라고해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을 것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Delete(삭제)하면 자신들이 복구하지 않는 이상 다시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가장 은혜로운 필수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용서의 Delete(삭제) 입니다. 우리들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을 친히 대면하여 회개할 때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 Delete(삭제)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Delete(삭제)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영혼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을 통하여 가장 은혜를 받은 말씀이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입니다(19절). 형들 때문에 애굽의 노예로 팔렸지만 이제는 애굽의 총리가 되는 인생 역전을 이루었습니다. 예전에는 형들의 손에 노예로 팔려야만 하는 힘없는 동생이었지만 지금은 형들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였습니다. 자신은 형들을 용서할만한 자격도 없으며, 진정한 용서의 종결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세상에서 최고의 권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는 것이 신실한 믿음이었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인 노예의 신분에서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가장 높은 자리인 총리의 자리에서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변함없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셉과 같은 믿음을 보여준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나 도망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왕이 되어서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동일하였습니다. 다윗은 요셉처럼 하나님을 대신하지 아니하고 철저히 맡기는 믿음이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여러번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쫓겨 다니는 다윗에게 오히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였어도 정당방위가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대신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한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법궤를 가진 자가 왕의 정통성을 가지게 됩니다. 다윗은 피난을 가면서 자신에게 있는 법궤를 가져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택에 맡겼습니다. 다윗은 쫓겨 다니는 어려운 시절이나 가장 높은 왕이 되었을 때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대신하지 아니하고 겸손히 주님께 맡겼습니다.
어려울 때는 그 어려움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신으로 방법대로 갈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있을 때 애굽 군대 장관의 아내의 유혹을 통해 한순간 편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면서 더 어려운 길을 갔습니다. 다윗도 피난민 시절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살려줌으로 쫓겨 다니는 기간이 더욱 길어졌습니다.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자신의 방법으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기보다는 주님의 방법을 더욱더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방법을 구하다가 어려운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이 미래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이제 인생이 역전되어서 요셉처럼 총리가 되고 다윗처럼 왕이 될 때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세나 권력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위험성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높은 위치에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주님을 의지할 수 있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실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정 주님을 따르는 것은 낮을 자리에 있을 때나 높은 자리에 있을 때든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변함없이 신뢰하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참된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한신교회를 개척했을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교회가 점점 부흥하더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동일 할 때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요셉이나 다윗처럼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대신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한결같이 의지할 때 악을 선으로 바꾸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인생에서 악을 선으로 바꾸는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느 것에 더 초점을 맞추느냐?” 의 문제입니다. 요셉에게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실은 요셉의 형들이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다가 결국은 애굽의 노예로 팔았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요셉에게도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요셉 이 사실을 너무나 잘 기억하며 알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사실은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고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에 미리 보내셨다는 것입니다(20절).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대하여 깨닫고 고백한 말씀이 이미 창세기 45장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행한 일에 초점을 맞추어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더 초점을 맞추며 살았습니다. 형들에 행한 일은 그를 헤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앞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어 총리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하신 일의 목적을 알았기에 그의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향한 목적은 바로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20절). 이처럼 요셉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깨달았기에 자신을 헤아려 했던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어떤 일을 만나든지 사람들이 행한 일들과 하나님이 행한 일들이 교차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하나님이 행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행한 일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사람들이 행한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어 상처받고 고통 받는 삶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일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어 주님의 뜻과 목적을 깨달을 때 악이 선으로 바꾸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Delete(삭제)의 은혜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대신하지 아니하고 주님께 맡기는 겸손함과 모든 일들 속에 사람이 행한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신일에 초점을 맞추어서 악이 선으로 바꾸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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