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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의 은혜 / 로마서 11장 1-10절/ 2월 5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02-05 추천 0 댓글 0 조회 336

2012년 2월 5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남은 자의 은혜

설교 본문 : 로마서 11장 1-10절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0. 들어가는 글

지난주 매서운 한파가 우리를 움츠려 들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따듯한 은혜가 우리의 마음을 녹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칼 마르크스는 “게으른 철학자들은 단지 세상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기만 한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문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세계를 해석의 차원에서 본 것이 아니라 변화의 차원에서 보았습니다. 해석하기만 하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가치 없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공산주의 사상과 그리스도의 복음은 근본적으로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세상을 단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진정한 복음의 능력은 변화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남은 자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먼저 복음의 능력은 변화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정 남은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으로 변화된 이후에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채 남은 자가 된다는 것은 더 위험스러운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죄인 된 상태에서 영원히 남아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새롭게 변화된 상태에서 남은 자의 은혜를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변화를 이야기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남은 자의 은혜를 이야기 하다 보면 자신이 변화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남은 자의 은혜를 깨달으면서 변화에 대한 도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통하여 남은 자의 은혜를 깨닫고 그런 삶을 누릴 수 있을 만큼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은혜 받은 자는 삶의 중심이 이동한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1절).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을 예로 들면서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와 같은 자신도 남은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 시대를 예를 들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나만 남았는데”라고 항변하였습니다(3절). 하나님의 답변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고 합니다(4절). 지금도 엘리야의 시대처럼 영적으로 타락한 시대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은 자의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는 정말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사실은 “어떻게 남은 자가 되느냐?”입니다. 그것은 바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5절).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 남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있어야만 끝가지 주님 안에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를 들어 사용하시고, 남은 자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은혜 받아 남은 자의 가장 큰 특징은 삶의 중심을 이동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핍박하는 자에서 믿음으로 남은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삶의 중심을 이동하였기 때문입니다. 삶의 중심이 이동하면 예전에 좋았던 것이 이제는 좋지 않게 보이고, 예전에 보잘 것 없이 보였던 것이 지금은 아주 귀하게 보입니다. 이렇게 중심이 바뀌는 것이 은혜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중심 이동이 되지 못한 사람은 항상 비본질적인 주변 것들 때문에 상처받고 좌절합니다. 반면에 중심 이동인 된 은혜 받은 사람은 참된 본질을 본줄 압니다. 지난주 수련회 기간 동안 시찰회 목사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교회가 부흥이 안 되는 이유와 잘되는 이유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경영을 잘해야 하고, 신도시가 입주하는 곳에 자리를 잘 잡아야 하고, 교회가 건물을 잘 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틀린 이야기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주변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모을 수는 있겠지만 영적인 부흥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습니다. 참된 은혜로 중심이 변화된 영혼들은 진정한 부흥에 대하여 “예배가 살아 있느냐?, 살아있지 못하느냐?”에 관심을 가집니다.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느냐?, 부으심이 없느냐?” 에 집중합니다. “교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애타게 사모하며 갈망하느냐?, 갈망하지 않느냐?” 를 직시합니다. 이런 본질 적인 것 때문에 심령이 애통하는 자는 그것들을 추구하여 영적인 부흥을 이루어 갑니다. 우리들이 은혜를 받은 자가 되어 주변 것에 대한 관심에서 본질 것인 것에 대한 관심으로 중심이 이동될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2. 은혜를 받은 자는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의 또 하나의 모습은 부분들만 보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부분만 보는 백성들에 대하여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고 합니다(8절). 이처럼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할 때는 다른 영혼들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율법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자는 부분만 보는 것에서 전체를 보는 눈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전체를 보는 눈이 있으면 다른 영혼들을 잘 이해함으로 품어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유혹에 잘 넘어가는 이유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보는 눈이 있으면 마귀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유혹의 미끼를 쉽게 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분만 보는 영혼은 쉽게 먹을 수 있는 유혹의 미끼에 빠져들게 됩니다. 마귀는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고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주님의 답변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은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4:4).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숨은 뜻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먹는 양식은 아무 수고 없이 거저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며 돌보는 수고를 통하여 먹어야하는 소중한 양식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볼 줄 알면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물고기의 눈에는 지렁이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물고기는 지렁이가 보이면 덥석 물어 버립니다. 만약 물고기가 지렁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렁이에게 걸려 있는 갈고리를 본다면 유혹의 미끼를 덥석 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새해가 되면은 세상 유혹과 시험을 이겨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 유혹과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은혜 받은 자가 되어서 부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3. 가슴에 은혜의 생수가 있을 때 남은 자가 될 수 있다.

오늘 말씀에서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7천명의 남은 자가 있었다고 합니다(4절).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었던 영적인 파워는 어디서 난 것입니까? 그들의 가슴에 은혜의 생수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 당시에 아합 왕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심하게 핍박했습니다. 그때는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천명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흘러넘치는 은혜를 받으니까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엘리야 때처럼 생명을 걸고 믿음을 지킬 일은 적지만, 대학이나 직장에서나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충만한 은혜의 생수가 흐르는 은혜가 있을 때 믿음으로 남은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장거리 경주 훈련을 받을 때 코치님들은 물을 먹고 싶지 않아도 일정 간격으로 수분을 섭취하라고 요구합니다. 어떤 선수가 “코치님, 목마르지 않아도 마셔야 돼요?” 코치가 대답하길 “내 말을 잘 들어, 목마를 때 물을 마시면 그때는 너무 늦어, 몸에서 이미 탈수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거니까. 그때가지 기다려서는 안 돼” 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영적인 탈수가 있으면 세상에서 믿음으로 남은 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메말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메마르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공급받아야 합니다. 은혜의 생수가 마르면 마음이 경직이 됩니다. 경직이 되다 보면 마음이 점점 더 굳어져 갑니다. 굳어진 마음은 끝까지 남은 자가 되지 못하고 부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에 은혜의 생수가 흐르면 부드러워집니다. 부드러움은 굳어져서 부러지지 않고 끝까지 견딜 수 있는 은혜가 됩니다. 또한 부드러움은 생명이 잘 잘아날 수 있는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생수가 흐르는 부드러운 마음이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자가 되어서 남은 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중심 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비본적인 것에서 본질적인 것으로 중심이 옮겨져 와야 합니다. 다음으로 부분적인 것에서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세상 유혹을 이기고 남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슴이 메마르지 않고 생수가 흘러야만 영적인 부드러움이 생겨서 끝까지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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