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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방법대로.../ 2월 12일 주일 설교 / 사무엘 하 6장 1-15절
조영식 2012-02-12 추천 1 댓글 0 조회 830

2012년 2월 12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하나님의 방법대로...

설교 본문 : 사무엘 하 6장 1-15절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0. 들어가는 글

이번 겨울처럼 한파가 심할수록 따듯한 봄날이 더욱 더 그리워집니다. 이와 같이 진정 믿음의 사람에게는 고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부활에 대한 소망은 더욱 더 커져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궤가 어떻게 해서 바알레유다에 머물고 있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2절). 사무엘상 4장에서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이스라엘은 블레셋 군대와 전투에서 패하자 사기를 높이기 위하여 법궤를 전쟁터에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전투에서 패하고 법궤까지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진영에 법궤가 7개월 머무는 동안에 다곤의 신상들이 크게 훼파되고 블레셋 백성들은 독종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러자 블레셋은 더 이상 법궤를 보관하지 못하고 수레로 보내어 도착한 곳이 벧세베스였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법궤를 들여다 본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자 법궤를 두려워하여 기랏여아림으로 보냈습니다(삼상6:19). 그렇게 해서 법궤는 기랏여아림의 옛날 이름인 바알레유다의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로 지키게 하였습니다(삼상7:1).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되어서 만군의 하나님이 함께 계심으로 점점 강성해져 갔습니다(삼하5:10).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항상 골칫거리였던 블레셋 군대와 전투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둡니다(삼하5:25). 이제 다윗은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고자 합니다.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나오는데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뛰었습니다(6절). 하나님의 궤를 붙잡았던 웃사가 죽습니다(7절). 다윗은 궤를 옮기는 일을 중단하게 됩니다(10절).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던 이유는 하나님의 궤는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하는데 수레로 운반을 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에서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4:15). 오늘 본문에서 웃사가 죽은 이유를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아서 죽었다고 하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성물들은 수레로 옮기는 것을 허락하셨는데 왜 언약궤만 어깨에 메어 옮기라고 하였는지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 앞에서 가장 필요한 준비는 무엇인가?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기 위하여 대단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가 법궤를 옮기기 위해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삼만 명을 뽑아서 바알레유다로 갔습니다. 또한 찬양팀도 대단한 규모로 준비를 하였습니다(5절). 다윗이 법궤를 처음 옮기려는 방법은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고” 하였습니다(2절). 그리고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는 올바른 신앙고백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비나답의 집에서 법궤를 옮기기 위해 준비한 새 수레의 분위기에 다윗이 휩쓸러 가고 맙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적으로는 열심을 다해 준비했지만 영적으로 준비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법궤를 메고 가는 것이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확신이 약하다보니 새 수레로 옮기는 그럴싸한 분위기에 현혹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준비할 때는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13절). 삼만명의 대단한 숫자를 준비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보혈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대규모의 찬양팀을 준비하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 것” 이 더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14절). 다윗처럼 준비도 잘하고 신앙고백이 훌륭했어도 먼저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예배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을 하지 아니하면 다른 분위기에 휩쓸려 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궤는 왜 어깨로 메어야 하는가?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왜 수레가 아니고 어깨에 메어야 합니까? 첫 번째는 편의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어깨에 짊어지고 수고하며 헌신하는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짊어지고 따르는 삶이 힘들고 어렵다하여 수레에 실고 편하게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합니다(눅9:23). 현대교회가 편의주의에 젖어가고 있습니다. 말씀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좁은 길 가는 것을 포기하고 쉽고 편하게 신앙 생활할 수 있는 넓은 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세속주의입니다. 법궤를 수레로 실어오는 방법은 20년 전 블레셋에서 쓴 방법입니다. 블레셋이 전쟁에 승리하고 뺏어온 법궤가 재앙을 일으키자 그들은 수레에 실어서 돌려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레를 사용하였을 때는 하나님이 진노하였습니다. 말씀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적인 방법을 따르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방법대로 살겠다는 고백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소유주의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라고 합니다(6절). 여기서 ‘붙잡다’란 의미로 사용된 히브리어 ‘아하즈’는 소유개념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물건에 ‘이건 내거야’라고 그 물건을 붙잡는 것이 ‘아하즈’입니다. 웃사는 언약궤를 자기 소유물처럼 여긴 것입니다. 웃사가 집에서 20여년 동안이나 관리해왔던 법궤는 더 이상 하나님의 것이 아닌 자신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웃사처럼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소유하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교회를 자신의 것처럼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물질을 자신의 것처럼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역은 그 누구도 독점하여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깨에 메고 힘들지만 섬기는 수고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오벧에돔 온 집에 복이 임한 이유?

이런 법궤를 옮기는 과정 속에서 웃사가 죽고 다윗은 두려워서 옮기는 것을 중단하였는데 복을 받은 가정이 등장합니다(11절). 오벧에돔의 온 집이 복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찌보면 복을 받더라도 20년 동안 법궤를 지켜온 아비나답의 가정이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법궤를 석 달밖에 모시지 않는 오벧에돔이 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아비나답은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뼈대가 있는 유다 지파입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렀던 블레셋의 가드사람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20년을 믿었느냐?, 석 달을 믿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좋은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난 모태신앙이냐?, 불신가정에서 태어나서 도중에 믿었느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오늘 본문에서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고 합니다(10절). 이것이 바로 오벧에돔 가정이 복을 받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다윗도 법궤를 옮기려는 목적과 신앙고백이 좋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을 때는 실패하였습니다. 아비나답의 가정도 법궤를 20년 동안 모시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소유물로 여겨서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을 때는 복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블레셋의 가드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방법을 따를 때 그의 온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목적과 계획이 좋다고 방법을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시실은 천하에 다윗도 아무리 목적과 계획이 훌륭해도 방법이 잘못되면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처음 계획은 좋았는데 아비나답의 화려한 새 수레의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책임전가하며 변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10절). 그는 즉시 멈추었습니다. 왕으로서 자신의 체면과 위신이 많이 깎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잘못된 방법이라고 깨달았을 때 멈출 줄 아는 용기 때문에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이방인 가드 사람에게 겸손히 배워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궤를 기쁘게 메고 왔습니다(12절). 믿음의 성패는 신앙의 대단한 목적, 훌륭한 신앙고백, 화려한 신앙경력, 신앙의 출신배경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김포한신교회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나아가야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따를 때 오밷에돔 집안처럼 복을 누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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