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1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더 앞서가는 마음
설교 본문 : 민수기 22장 21-30절
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2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24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25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26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27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29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0. 들어가는 글
지난주 많은 스케줄이 잡혔지만 모든 일정을 가능케 하시는 질서의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3월 첫 주를 시작하면서 크로스 웨이와 제자 훈련 개강이 있었습니다. 또한 어려운 환우들의 병원 심방과 미룰 수 없는 가정들의 심방까지 있었습니다. 여기에 안수집사님 가정의 부친 장례로 몇 번의 위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일정상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었고, 소홀히 할 수 없는 예배들이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도 겹치지 않고 잘 감당케 하시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많은 일들이 겹쳐서 어찌하지 못하여 마음도 무겁고, 몸도 피곤할 텐데 질서 있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하여 감사와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잠언에 나오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언16:3) 라는 말씀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많은 일들을 하려고 할 때는 혼란스럽고 복잡해지지만 주님께 행사를 맡길 때는 질서 있게 이루어주시는 은혜를 체험해본 한 주간 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전개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전진하면서 요단 동편의 막강한 아모리 두 족속들을 물리쳤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모압 왕 발락은 큰 두려움을 느끼고 미디안의 술사 발람에게 사절단과 재물을 보내면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날 밤 발람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발락의 초대에 응하지 말도록 지시합니다. 발람이 초대를 거절함으로 1차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발락은 더 높은 귀족과 더 많은 재물들을 보내 2차로 발람을 초대합니다. 이에 마음이 끌린 발람은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21절). 발람이 나귀를 타고 모압으로 가는 중에 나귀가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왜 나귀가 입을 열 수 밖에 없는지 전후 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마음의 동기가 중요하다.
오늘 말씀에서 발람의 행동을 통하여 겉모양만 보다도 마음속의 동기가 더 중요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라고 합니다(21절). 이런 동일한 장면이 아브라함에게도 있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가는 장면입니다(창22:3). 아침에 일어나서 나귀에 안장을 지우는 모습은 너무나 동일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순종의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자신의 유익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불순종의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겉모습이 똑같지만 속마음은 정반대로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할 때 마음속의 숨은 동기를 잘 살펴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이 더 앞서는 마음의 동기를 가질 때 다른 사람들을 속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까지도 속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겉으로의 행동은 주님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의 숨은 동기가 잘못된 경우가 너무 많이 있었습니다. 최근의 예를 들면 우리 교회가 이주민 노동자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외부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의 동기가 앞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부에 보여주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보이든 보이지 않던 이주민 노동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회개하고 마음의 동기를 바꾸자 하나님이 우리 교회 이주민 노동자 예배를 세워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목사로서 안수기도를 하면서 치유역사가 일어나서 내 자신이 들어나기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안수기도를 하면서도 내 자신이 들어나는 것과 상관없이 성령님이 역사하여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교회가 이주민 노동자 사역을 하고, 목사가 안수기도를 하는 것이 겉으로는 주님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의 동기는 얼마든지 자신을 들어내고자 하는 방편이 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들은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숨은 동기를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부디 우리 마음의 숨은 동기까지도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온전히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영적으로 눈을 뜬 나귀
오늘 본문에서 욕심 때문에 영적으로 눈이 감긴 발람 뿐 아니라 곁에 있던 두 종까지도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발람을 태우고 있는 나귀만이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있습니다(23절). 여호와의 사자를 본 나귀는 세 번의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귀의 첫 번째 행동은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가는 행동이었습니다. 주인이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발람은 나귀에게 채찍질을 하였습니다(23절). 나귀의 두 번째 행동은 발람의 발을 담에 짓눌렀습니다. 주인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함입니다.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발람은 다시 나귀에게 채찍질을 하였습니다(25절). 나귀의 세 번째 행동은 발람 밑에 엎드렸습니다. 주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행동입니다. 그 뜻을 알지 못하는 발람은 노하여 지팡이로 나귀를 때렸습니다(26절). 발람이 나귀의 세 번의 행동을 통하여서도 전혀 깨닫지 못하자 하나님은 결국 나귀의 입을 여십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는 말씀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영적인 소경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마음이 앞설 때 영적인 소경이 되어서 바르게 분별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보다도 말씀에 순종할 때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3. 나귀의 말에 담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나귀의 입을 열어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입니다(30절). 우리는 나귀의 답변을 통하여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는 상황이 우리의 마음대로 안 될 때 자신이 가는 길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도 아시아 대륙의 전도를 위하여 일 년 동안이나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시아로 가는 길이 세 차례나 막히면서 상항이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려던 길을 멈추고 기도 가운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만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멈추어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신학대학원 때부터 개척하려는 열정이 제 마음에 넘쳤습니다. 그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개척을 시도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개척의 길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그 길을 막았던 분은 바로 제가 섬기고 있던 이중표 목사님이었습니다. 10년을 섬기고 때가 되니 목사님이 저에게 개척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열정적인 마음이 앞서다 보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로 바르게 분별 할 수 있는 눈이 흐려지게 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는 책을 보니 열정이 나를 삼키면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열정은 자신이 잘 다스리고 관리할 수 있을 때 선한 에너지가 나오다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열정은 넘치는데 절 조절하지 못함으로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제는 열정을 잘 관리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또 다른 측면은 나귀의 지금까지 행동이 죽음의 길로 가는 주인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냥 길을 갔다면 발람이 죽었고 나귀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33절). 그러나 나귀는 채찍에 맞는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주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모든 희생을 하였습니다. 주인 옆에 두 종이 있었지만 그들이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두 종들도 영적인 소경이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하여 나귀는 영적으로 볼 수 있도록 깨어 있었습니다. 깨어있는 나귀는 주인을 살리기 위하여 고난까지 당하는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줍니다. 발람처럼 세상 욕심에 눈이 멀어서 잘못된 길을 가는 영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나귀처럼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잘못된 길로 가는 걸음들을 멈추게 할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얻기 위하여 멈추지 못하고 직선의 길을 가려고 했던 발람은 그 길이 사망의 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귀는 직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서도 가고 멈추기도 하면서 곡선의 길로 가려고 했을 때 생명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빠른 직선의 길이 항상 좋은 것만 아닙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곡선으로 갈 때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발람처럼 자신의 마음이 앞서서 빨리 가고자 한다면 마음의 여유를 가질 없고 바른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앞서가는 마음을 멈추고 여유를 가지며 기도할 때 그 틈으로 하나님의 뜻이 찾아오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동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더욱더 기도함으로 영적인 눈이 열리고 갈 길을 밝히 보이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로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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