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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 시대 / 디모데 후서 4 : 1-8절/ 3월 18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03-18 추천 0 댓글 0 조회 423

2012년 3월 18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 시대

설교 본문 : 디모데 후서 4 : 1-8절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0. 들어가는 글

사순절 넷째 주일입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물러나려는 겨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 하지만 봄은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지금처럼 선거철이 되면 루머가 난무하게 됩니다. 하버드대 교수인 캐스 선스타인이 <루머>라는 책에서 루머가 쉽게 동조자를 확보하고 퍼져나가는 이유로 세 가지를 진단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사회적 폭포효과로서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어떤 루머를 믿으면 쉽게 편승하여 동조하는 경향입니다. 두 번째는 집단 극단화로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그 전보다 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경향입니다. 세 번째는 편향동화로 사람들이 믿고 싶은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의견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을 말합니다. 이것들의 합이 루머를 견고하고 빠르게 확산시킨다는 것입니다. 허황된 루머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이유는 그 루머에 동조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루머가 정치권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도록 만들지만 영적인 문제에서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허탄한 이야기와 같은 루머가 아니라 바른 교훈을 따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일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바른 복음을 견디지 못하는 이 시대의 마음들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가 이르면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한다’고 합니다(3절). 바른 교훈은 건전한 복음으로 십자가의 진리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받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복음을 견디지 못하여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는 줄 알고 강하게 교회를 훼방합니다. 마귀가 교회를 훼방하는 최고의 방법은 핍박이 아닙니다. 핍박을 가하면 교회가 오히려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교회를 훼방하는 최고의 방법은 미혹입니다. 사람이 미혹을 받으면 복음을 견디지 못하고 듣기조차 싫어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있습니다. 알곡 성도는 바른 교훈을 잘 받고 견디며, 환란과 핍박도 잘 참고 견디며, 권면의 말도 잘 듣고 견딥니다. 또한 말씀을 정직하게 읽으면 정말 지키기 힘든 말씀도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지키는 것이 힘든 말씀도 그대로 순종하려고 마음을 다합니다. 사람들이 설교를 듣기 싫어하는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먼저는 설교의 내용이 없어서, 너무 뻔한 말씀이라서 듣기 싫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설교가 관절과 골수를 찔려 쪼개듯이 너무 후벼 파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는 후자의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 목사가 설교를 통해서 자신을 때렸다는 반응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혹시 “내가 바른 교훈을 견디지 못하여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바른 교훈이라면 잘 받고 견딜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알곡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청소년 집회 강사로 간적이 있습니다. 저는 저녁집회에서만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오전에 어떤 목사님이 말씀을 선포하는데 학생들 틈에서 함께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차근차근 설명을 너무 잘하였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아멘, 아멘을 외치면서 듣고 있는데 어디선가 코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곳을 바라보니 몇몇 학생들이 앞 의자에 머리를 숙이고 자면서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조금 지나니 한 아이가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니까 주변에 몇 아이가 함께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말씀을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까?” 라는 고민 속에 참으로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단지 청소년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교회에 다니지만 바른 교훈을 받고 견디는 일을 참으로 힘들어합니다. 우리들은 마지막 때에 바른 교훈을 받고 견딜 수 있어야만 알곡 성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자신의 귀를 만족시키는 이 시대의 마음들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다”고 합니다(3절). 여기서 귀가 가렵다는 것은 자신의 귀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좋은 말씀, 좋은 찬양, 좋은 교회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자신의 귀에 좋게 들리고,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는 경우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귀를 만족시키려는 신앙의 위험성은 진리의 기준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치관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사람을 판별하는 것도 자신의 기준대로 내게 유익한 사람과 내게 무익한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기준이 자신의 만족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자신이 기준이 되어서 말씀을 자신에게 가져다 맞추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진정 거듭난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서 자신을 말씀에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보면은 한 사람이 동굴 속에서 태어나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고 평생을 지냈습니다. 그는 온 세상은 검은 색으로 돼 있으며 습기가 가득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평생 동굴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굴의 작은 틈새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 그 틈새로 바깥세상의 사람들이 지나가는 그림자를 보게 됐습니다. 그가 본 사람의 모습은 온통 검은 색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피부와 머리카락, 눈동자에 온갖 색깔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그림자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동굴 안에 갇혀있는 사람은 참된 진리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기준이 되는 동굴에서 나와 오직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5절). 우리 귀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우리의 기도 내용은 ‘고난을 벗어나게 해 달라’ 든지 ‘고난을 받지 않게 해 달라’ 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받으라’고 하면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입니까! 자신이 기준이 될수록 이런 말씀은 더욱 견디기 힘든 말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예수님이 기준이 된다면 주님을 위하여 고난도 견딜 수 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편해지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위하여 고난도 감수할 수 있을 때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허탄한 이야기들을 좇는 이 시대의 마음들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허탄한 이야기들을 좇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합니다(4절).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만이 진리입니다. 갈라디아서도 분명히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합니다(갈1:7). 교회가 복음이 아니라 허탄한 이야기들에 끌려가는 이유는 사람들의 귀가 진리에서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시대가 진리가 아니라 자신들의 행복만을 찾고 있습니다. 허탄한 이야기의 위험성은 듣는 순간은 좋지만 우리의 생명을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 허탄한 이야기는 복음으로 그럴듯하게 겉포장을 하였지만 속 알맹이는 유사복음을 넣어서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유사복음을 들으면 복음보다도 더 많은 감동과 용기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 예로 듣는 순간에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다음날 현실에 부딪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얼마나 허탄해지겠습니까! 복음이 허탄한 것이 아니라 유사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허탄한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유사복음 때문에 진짜 복음을 맛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등지는 사람들이 속출합니다. 때로는 유사복음이 지금 살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를 즐겁게도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과연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진리의 복음과 짝퉁인 유사복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첫 번째 기준은 유사 복음은 말씀을 듣고 견디지 못 하니까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만족을 시켜줍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음은 견디기 힘든 말씀이라도 있는 그대로 전하며 권면을 합니다. 두 번째 기준은 “유사복음의 자기중심이냐?, 참된 복음의 그리스도 중심이냐?” 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한평생 취해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을 준 예수님에게로 삶의 기준이 옮겨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유사복음은 현세적입니다. 현세에 즐겁고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참된 복음은 지금은 고난이 따를지라도 마지막 날에 우리의 생명이 구원받고 영생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자신의 만족을 위해 허탄한 삶을 따르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고난을 받을지라도 선한 싸움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킴으로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주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7,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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