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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통한 회복/ 로마서 8장 24-28절/ 4월 23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04-23 추천 0 댓글 0 조회 495

2012년 4월 23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성령님을 통한 회복

설교 본문 : 로마서 8장 24-28절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0. 들어가는 글

화창한 봄날에 피어나는 꽃들이 만발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육 세대들도 피어나는 꽃처럼 생명들이 피어나야 하는데 피어나기도 전에 꺾여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주 월요일은 동급생들의 폭력에 시달리던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투신자살을 하였습니다. 화요일에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학업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수요일에는 가출한 뒤 집단생활을 하던 여자 친구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10대 6명 등 남녀 9명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10대들의 자살과 살인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에서 어린이들에게 달리기를 통하여 일등부터 들어오는 순서대로 선물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린이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손을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모습에 선교사님은 너무나 큰 감동과 함께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나친 경쟁 속에서 이제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가르쳐야 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교회에서만큼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을 잡고 갈 수 있는 공동체의 소망을 가져봅니다. 인간은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만 연약하여 소망을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연약한 인간이 어떻게 소망을 이룰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참음으로 기다려라.

달걀에 노른자가 있듯이 로마서에서 노른자는 8장입니다. 또한 노른자인 로마서 8장에서 핵심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하여 가르쳐 줍니다. 그 자세는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합니다(25절). 그러면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왜 기다려야 합니까? 인간은 복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만들어 내는 메이커가 아니라 받는 리시버라면 받는 자세가 아주 중요합니다. 장대비가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을 때 대접에 물을 받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물을 받는 자세입니다. 대접을 엎어놓으면 아무리 장대비가 쏟아져도 물 한 방울 담을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똑바로 놓고 기다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물은 가득 차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가 나쁘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주실지라도 아무것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들 수 있는 바른 자세를 가져야만 충만한 은혜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자세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 사람을 향하고 있는가?" 가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롯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죄악의 정도는 오십보백보입니다. 가롯 유다는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자 자살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이 전혀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세 번 부인을 하였지만 이후에 주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통곡을 하며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이 주님께로 향한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사울과 다윗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사울도 죄를 범했고 다윗도 죄를 범했습니다. 죄를 범한 내용을 보면 불순종한 사울보다도 간음에 살인까지 한 다윗의 죄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윤리적인 기준으로 보면 왜 다윗만 용서를 받았는지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자세를 보면 다윗의 마음은 언제나 주님께로 향하였습니다. 그는 죄를 범한 이후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 라는 고백을 합니다(시51:4). 그러나 사울의 마음은 항상 다른 사람의 시각을 의식하였습니다. 그는 늘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속에서 우리의 마음의 자세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매 순간 주님을 향할 수 있는 은혜로운 마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성령님은 마음을 회복시킨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하면 성령님이 도우십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마26:41). 오늘 말씀에서도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라고 합니다(26절). 우리가 연약하면은 하나님께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합니다. 자기의 진정한 마음의 소원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마음의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실 때도 마음의 소원을 물어보았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를 고쳐주실 때도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 라고 질문합니다. 소경에게 너무나 뻔한 질문인데 주님은 굳이 소원을 물으셨습니다. 바디매오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의 그 마음의 소원을 듣고 고쳐주셨습니다(막10:51,52). 예수님은 마음의 소원을 품은 자에게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의 출입구에는 "이곳은 소망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이처럼 절망만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반대로 소망이 충만한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은 천국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옥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신앙생활의 초신자들은 참된 소원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오래된 신자는 어느 순간 소원을 상실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우리 마음속에 성령님이 찾아오셔서 주님을 향한 소원을 회복시켜줍니다. 성령님이 소원을 회복시키시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소원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여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최고의 소원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마음을 회복시키시면 오히려 세상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는 소원을 회복하게 됩니다. 저를 보더라도 예전에는 수천명의 목회를 하여 유명한 목사가 되고픈 마음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을 더 닮고 싶고, 한 영혼에게라도 더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고 싶습니다. 성령님이 제 마음의 진정한 소원을 회복시켰기 때문입니다. 부디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찾아오셔서 주님을 향한 소원을 회복시킴으로 매일 매일 천국을 누리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3. 성령님은 삶을 회복시킨다.

성령님을 통하여 마음의 소원이 회복되면 우리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 다 좋게 보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합니다(28절). 예전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주변사람들과 합력하여 선을 만든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원뜻은 우리들의 지나온 인생 속에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그런 모든 일들이 지금의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지나온 모든 것들을 좋게 볼 수 있는 은혜의 마음을 주십니다. 성령님이 주는 은혜의 마음은 고난이 오더라도 고통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연단과 훈련을 통하여 믿음을 세우는 선으로 바라봅니다. 예전에 본 내용인데 “내가 웃으면 거울이 웃는다.”는 글이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상태에 따라서 거울과 같은 세상이 웃고 있을 수도 있고, 울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성령님을 통하여 웃음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삶의 변화는 언제 일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금식하고 고행한다고 삶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정말 좋아할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다음 주면 한신교회 창립 10주년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순탄하게 목회를 한다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개척 십년 세월동안 어찌 좋은 일만 있었겠습니까! 마음도 지치고 몸도 힘들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치고 힘든 일보다 예수님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기에 잘 감당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목회하는 일은 힘들지만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좋아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정말 좋다는 것입니다. 결혼 전에 우리 집사람에게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좋아서 한평생 웃으면서 목회의 길을 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철없이 한 말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가장 귀한 고백을 드렸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세상에서 주님을 가장 좋아하는 마음이 변치 않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을 좋아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그분을 조금씩이나마 닮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다 예수님을 좋아함으로 그분을 진심으로 닮아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면서 우리의 마음의 자세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에 성령님이 찾아오셔서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회복하기를 소원합니다. 성령으로 회복된 마음에 모든 것을 좋게 볼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그분을 더욱 더 닮아갈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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