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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힘을 더 의지하는가?/ 열왕기 하 1장 9-16절/ 5월 20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05-21 추천 0 댓글 0 조회 433

2012년 5월 20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어떤 힘을 더 의지하는가?

설교 본문 : 열왕기 하 1장 9-16절


9 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12 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3 왕이 세 번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이르러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그와 함께 내려와 왕에게 이르러/ 16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0. 들어가는 글

지난주 이어령 선생님의 글 중에서 감동을 받은 글입니다. “‘어제’라는 말은 토박이 한국말이지요. ‘오늘’이라는 말도 토박이 한국말이지요. 그런데 ‘내일’이라는 말은 웬일인지 한자에서 온 말입니다. 과거도 현재도 있는데 내일이란 우리말을 잃어버린 민족, 분명히 어제와 오늘처럼 순수한 우리말이 있었을 텐데.... 그러나 한숨을 쉬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왜냐하면 내일보다 더 먼 ‘모레’라는 말, ‘글피’라는 말 심지어 ‘그글피’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보면 우리나라는 미래 지향적인 민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나온 역사에서도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으로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다시 일어선 민족입니다. 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저력은 이 땅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무엘처럼 기도를 쉬지 않는 백성들이 있다면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보호해주리라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진정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의 싸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아하시야 왕은 삼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는 모압이 반역을 하였습니다(1절). 가정적으로 아버지 아합 왕이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었습니다(2절). 이런 총체적인 어려움 속에서 아하시야는 우상에게 사자를 보내어 자신의 병이 낫겠는지 물어보려 합니다(2절).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서 “하나님이 없어서 우상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하며(3절),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으리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합니다(4절). 아하시야의 삼중고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싸인 이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그에게는 희망이 있지만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의 아하시야 왕처럼 죽는다는 하나님의 싸인을 히스기야 왕도 동일하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두 왕은 반응을 정반대로 하였습니다. 아하시야 왕은 죽는다는 하나님의 싸인을 저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심판의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낮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 함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왕하20:2). 두 왕을 비교해보면 하나님의 싸인에 대하여 “우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부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싸인이 올지라도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기도함으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 왕의 힘이냐?, 하나님의 힘이냐?

아하시야 왕은 엘리야에게 오십 부장과 군사 오십 명을 보냅니다(9절). 그들은 왕의 말씀을 전한 후에 엘리야가 하늘에서 내린 불로 죽습니다(10절). 두 번째 오십 부장과 오십 명도 왕의 명령을 재촉하여 전한 후에 선지자가 하늘에서 내린 불로 죽고 맙니다(11,12절). 왜 아하시야는 오십 부장과 군사 오십 명을 산꼭대기에 있는 엘리야에게 보냈을까요? 그 이유가 애매모호합니다. 또한 오십 부장과 군사 오십 명씩 두팀이나 죽은 이유도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면 제일 먼저 아하시야가 사람을 보낸 방식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알세붑에게는 사자를 보내어 정중한 예의를 갖추었지만 엘리야에는 군대를 보내 체포하려는 것입니다(2,9절). 두 번째로 부르는 호칭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첫째와 둘째 오십 부장이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이여” 라고 부릅니다(9,11절). 이 호칭은 존중의 말이 아니라 조롱의 말입니다.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부릅니다(마4:3).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며 조롱하듯이 부른 것입니다. 엘리야는 조롱의 말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직접 증명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은 불을 내려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야가 아하시야 왕이 보낸 군대들에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두려워 말라”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15절).


이런 본문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아하시야 왕을 내세운 세상의 파워와 엘리야 선지자를 내세운 하나님의 파워가 영적 대결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에게는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갈멜산에서 불을 내려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왕비 이세벨이 세상의 힘으로 위협을 하자 두려워서 도망친 상처가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도망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이세벨 왕비의 힘과 비교해보니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결과 두려워서 도망을 친 것으로도 부족하여 자신을 죽여 달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아하시야 왕의 힘 앞에서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하시야 왕의 힘과 자신의 힘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엘리야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의 의미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10,12절). 엘리야를 통하여 영적 싸움의 승패는 “상대방의 힘이 얼마나 강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세 번째로 다시 오십 부장과 군사 오십 명을 보냈습니다(13절). 이렇게 군사들을 죽여가면서 계속 보내는 아하시야 왕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명령을 받은 오십 부장은 엄청난 고민에 빠졌을 것입니다. 엘리야를 찾아가면 자신의 부하들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왕의 명령을 거부해도 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셋째 오십 부장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나름대로 피할 해법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그가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찾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전의 오십 부장들과 셋째 오십 부장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이
전의 오십 부장들은 엘리야 선지자에게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9,11절). 그러나 셋째 오십 부장은 산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13절). 그는 자신의 중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중심으로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나에게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의 관계도 상대방이 나에게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두 번째로 셋째 오십 부장은 이전 오십 부장들과 다르게 무릎을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군대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아하시야 왕처럼 자신을 힘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힘을 내려놓고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로 셋째 오십 부장은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증거로 셋째 오십 부장은 오십 명이 자신의 부하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종”이라고 합니다(13절). 그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 되심을 고백합니다. 셋째 오십 부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의 탈출구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귀히 보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오십 부장이 저의 목회에 소중한 해답을 주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의견이 나뉘어서 목사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셋째 오십 부장처럼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어떠한 일보다도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마음을 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제일먼저 고통스러운 하나님의 싸인일지라도 “우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두 번째로 영적 싸움의 승패는 “상대방의 힘이 얼마나 강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의지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탈출구는 어는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해답이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부디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의지하여 영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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