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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복의 의미?/ 시편 16편 1-11절/ 6월 10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386

2012년 6월 10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참된 복의 의미?

설교 본문 : 시편 16편 1-11절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0. 들어가는 글

지난주 인천 노회 교직자 교육대회 기간 중에 군산에 있는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기념교회에서 하나님이 아펜젤러 선교사님을 한국의 사도 바울로 보내주셨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부인과 함께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날 아침 제물포 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가 한국 땅에 선교의 첫발을 딛고 드린 기도가 기념탑에 새겨져 있습니다. “주여 우리는 부활주일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에 주검의 철장을 부수신 주님께서 이 민족을 얽매고 있는 사슬들을 깨치시어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와 빛을 얻게 하소서!” 아펜젤러는 정동감리교회 창립, 배제학당을 세워 민족의 지도자 양성, 성서번역사업, 문서사업, 청년운동을 통한 민족계몽사업, 여러 번의 전도 여행을 통하여 복음전파에 힘을 다하였습니다.


1902년 아펜젤러는 성경번역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목포로 배를 타고 가는데 군산 앞바다에서 다른 배와 충돌하여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등석에 있었기 때문에 구조 받을 수 있었지만 3등석으로 내려가 자신의 비서와 이하학당의 소녀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순교하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한국인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고 떠난 사랑의 선교사였습니다. 아펜젤러는 한국에서의 17년의 세월을 불꽃같이 살다가 44세의 젊은 나이에 떠났지만 복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남김 없이, 후퇴 없이, 후회 없이 드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말씀을 통하여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땅에 있는 성도가 왜 존귀한 자인가?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라고 합니다(3절).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윗이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2절). 다윗은 하나님 자체를 진정한 복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고백에는 어떠한 조건도 결부되지 않는 참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건부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에는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기복적인 요소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를 넘어서서 주님 자체를 복으로 여기며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존귀한 성도는 모든 조건을 초월하여 오직 하나님 자체를 복으로 여기는 믿음을 가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존귀한 성도에게 모든 즐거움이 있다고 합니다(3절). 우리도 모든 즐거움이 오직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여러 애인 중의 한명입니까? 아니면 오직 하나뿐인 애인입니까? 여러 애인 중의 한명이면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있은데 그 중에 하나처럼 예수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뿐인 애인은 관심이 있는 어떤 것들 보다도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점거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힘들 때 어디서 위로를 얻습니까?”입니다. 내 삶이 고달플 때 무엇을 의지하는지를 보면 진심으로 따르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어느 때 가장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가?” 입니다. 과도한 짜증과 화속에 진짜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세상적인 것 때문에 하루를 망칠 정도라면 그것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셋째로 “어느 때 가장 신이 나는가?” 입니다. 우리를 지나치게 신나게 하는 대상도 예수님의 경쟁 상대일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면서 신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과는 그런 신나는 것이 없는 것에 더 문제가 있습니다. 넷째로 “무엇을 위해 소비하는가?” 입니다. 자신의 만족을 줄 수 있는 일에는 많은 시간과 돈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서는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존귀한 성도에게 모든 즐거움을 삼고 있는데 우리도 주님께 모든 즐거움을 삼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주님이 어떻게 교훈하는가?

하나님은 존귀한 성도를 교훈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라고 합니다(7절). 하나님은 존귀한 성도를 어떻게 교훈하십니까? 첫 째는 확신을 주시기 위해 교훈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라고 할 만큼 위기의 순간에 있습니다(1절).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결코 떠나지 아니하고 함께 계신다는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둘째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훈계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들처럼” 혼합신앙에 빠진 자들을 훈계하십니다(4절).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인생길을 어떻게 수정하셨는지, 치명적인 습관을 어떻게 고치시지, 이런 것들에 대한 훈계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길을 고집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길에 순종할 때 주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행동을 촉구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영적인 행동, 섬김의 행동, 재정적인 행동, 관계의 행동 등을 교훈하십니다.


양심을 통하여 교훈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교훈인가?”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교훈은 평안함이 있습니다. 둘째로 “성경적인가?” 입니다. 성경을 벗어나는 주님의 교훈은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지혜로운가?” 입니다. 하나님은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합니다. 지혜롭지 못하여 상처를 주고 갈등을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넷째는 “성격과 맞는가?” 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성격대로 사용하십니다. 다섯째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입니다. 신뢰하는 사람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부디 양심의 교훈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고 존귀한 성도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주님의 교훈을 받는 자가 누리는 하나님의 복?

존귀한 자가 주님의 교훈을 받으면 어떤 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첫째는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8절). 주변 환경에 따라서 흔들리는 믿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흔들릴지라도 믿음이 견고하여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둘째로 마음이 기쁘고 영이 즐거워하는 복을 누리게 합니다(9절). 주님의 빛이 비추면 마음의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마음에 어두움이 물러갈 갈 때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잔느 귀용은 우리 마음에 별빛과 같은 많은 죄악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태양 빛 같은 주님의 빛이 마음에 비추면 별빛 같은 죄악의 빛은 들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별빛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태양 빛에 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 주님의 빛이 비추면 죄악이 힘을 잃고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함을 받는 복을 누리게 합니다(11절). 하나님은 에덴동산 중심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심었습니다. 지금도 삶의 중심에 두 그루의 나무가 서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아담이 먹은 이후에 스스로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결정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 결과 이 세상은 죄악이 가득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나무를 먹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음으로 우리 안에 생명이 풍성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로 선악을 구별하는 율법적인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삶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저는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은혜로운 삶을 살아야지 생각하면서도 행동으로는 내 스스로 선악을 구분하는 율법적인 삶을 살 때가 많았습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의 복을 충만히 누리지 못한 삶을 산 것이 저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하였습니다. 제 마음에 말씀의 빛이 강렬하게 비췸으로 선악을 구분하는 죄악된 빛들이 힘을 잃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기쁨과 영이 즐거워져서 생명이신 주님 자체가 복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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